“독재정권 치하에서 겪는 혼란에 대해선 한국도 잘 알 거다.” 60대의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은 확신에 찬 투사 같은 자세로 인터뷰에 응했다. 2011년 2월11일, 이집트인들은 장기독재집권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며 피의 시위를 벌였다. <애프터 더 배틀>은 바로 이날의 기록을 토대로 한, 이집트 사회의 사회, 종교, 파벌, 계급의 관계를 그린다. 변화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이 혼재해 있지만, 영화는 투쟁의 중심에 한 순진한 마부와 NGO단체에서 근무하는 여성의 로맨스를 대입시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매끄럽지 않은 연출과 엇나가는 리듬 같은 흠잡을 만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배우, 스탭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정치적 소신은 이 영화를 살아 있게 한다. 주로 이슬람근본주의자, 좌파, 망명의 문제를 다루는 나스랄라 감독은 이집트 감독 유세프 샤힌의 연출부 출신으로 최근 이란의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구속되자 그에 대항하는 투쟁을 벌이다 수감되기도 했다. <게이트 오브 더 선>(2004)의 경쟁부문 상영 뒤 이번이 두 번째 칸 진출. 나스랄라 감독은 5월23, 24일 이집트 선거를 앞두고, 영화제쪽에 상영일이 가능한 한 선거일과 차이가 나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애프터 더 배틀>은 개막작 이후 두 번째로 상영됐고, 이집트 선거와 일주일의 차이가 생겼다.
-시민운동이 일어난 타히리르 광장에 대한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작인 <18일>(이집트 민주화혁명을 그린 옴니버스영화)을 찍고 나서의 희열이 컸다.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떤 욕망이 분명 존재한다. 할 수 있는 건 저항뿐이지만, 그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거다. 당시 난 다른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국내 정세가 굉장히 불안했다. 생각이나 감정이 온통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야말로 내가 만들어야 할 영화라고 다짐했다. 무바라크 독재정권의 붕괴를 지켜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우들을 설득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실제 모델이 있었을 것 같다.
=마부 무하마드 역을 맡았던 배우가 실제 그 지역에 산다. 마부에 대해서 처음 알려준 것도 그였다. 영화에 출연하는 마을 사람들은 연기자가 아니라 실제 마을 사람들이었다. 무하마드와 그 지역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의 스토리가 구체화됐다. 왜 미디어가 선량한 마부를 공격하는지 물었다. 미디어는 그들이 마치 이집트의 적인 것처럼 보도했지만, 이건 모두 진짜 적을 숨기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마부들의 진짜 모습을 찾아야 했고, 그게 바로 혁명의 실제 모습을 보는 길이었다.
-혁명 도중 촬영을 했다. 프로덕션의 어려움이 상당했을 텐데.
=프랑스와 공동제작을 택했다. 75% 이상의 제작비가 해외에서 온 거다. 게다가 이집트에서는 사운드 에디팅 같은 후반작업 환경도 쉽지 않다.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집트 정부의 검열 때문이었다. 내 나름대로 머리를 쓴 거다. 내가 벌써 60살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두개의 원본을 가지고 있는 게 안전하다. 이 영화가 아직도 이집트에서 상영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집트에서 영화를 자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만약 이집트에서 장면을 삭제한다면 어떤 장면이 문제가 될 것 같나.
=많은 장면이 문제가 될 거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군대가 시위대와 부딪히는 장면을 허락할지 알 수 없다. 특히 NGO에서 일하는 영화 속 사람들이 마을 사람의 의식을 깨우는 장면들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계속 나아가야 한다. 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좋은 영화건 나쁜 영화건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한다. 난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영화는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고 상영을 통해 그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 마치 영화 속 무하마드처럼. 그게 이 영화의 주제이고, 여기가 내가 현재 있는 자리다. 이제 막 시작했다. 물론 걱정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