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홍 감독 영화 촬영의 간소함, 신속함, 능란함이 꿈만 같아”
2012-06-0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다른나라에서> 이자벨 위페르 인터뷰

<다른나라에서>의 해변 모항에는 프랑스 여인 안느가 있지만 칸의 해변에는 위대한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있다. 영화제 내내 홍상수와 이자벨 위페르의 협연은 큰 화제가 됐고 그녀의 모험심은 칭송의 대상이었다. 우연과 계산의 조화를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체질부터가 홍상수 배우다.

-출연 제안을 받은 자리에서 그 즉시 승낙했다.
=홍상수 감독에 대한 신뢰는 이미 있었다. 그리고 그와는 그런 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촬영이 언제인지 어떻게 되는지 등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댄다면 이 작품을 같이 할 수 없을 거라는 것 말이다. 내가 혼자서 세 인물을 연기하게 될 거라는 것 정도를 알았고 몇 가지 의상을 준비해 갔다.

-촬영 전 준비를 하는 편인가.
=많이 하지 않는다. 연기란 준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의상은 준비할 수 있지만 연기는 그럴 수 없다. 요리를 만들기 위한 레시피가 될 수 없다. 촬영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을 믿나.
=그렇다. 동시에 우연을 발생시키는 것도 믿는다. 홍상수 감독과 함께한 건 우연이기도 하지만 그 우연은 내가 얼마간 발생시킨 것이기도 하다. 그런 건 캐스팅 디렉터가 ‘아, 이자벨 위페르에게 이 역을 맡기자’ 하는 식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 해변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이 어땠나.
=무척 귀엽고 예쁜 곳이었다. 거의 아무 것도 없고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그런 곳. 보자마자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이 배경으로 나의 이질성을 어떻게 포착해내려 하는지 말이다. 내가 그런 장소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어떤 외국인도, 관광객도 없는, 매우 한국적인 장소에 말이다.

-영화 속 세명의 안느를 연기할 때 당신은 어떤 차이점을 염두에 두었나.
=아주 섬세한 차이가 있다. 일단 머리 스타일이 다르다. 각 역할에 부합하는 의상도 따로 선택했다. 동작할 때의 리듬, 대사를 말할 때의 톤, 그리고 걸음걸이에도 약간의 차이를 주었다. 그런 아주 작은 터치들로 차이를 만들어냈다.

-어떤 장면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나.
=바다를 보고 있는 내 뒷모습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매우 감동적이다. 그 장면이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거기에는 어떤 기다림이라는 감정이 느껴진다. 그녀가 가진 많은 질문들, 답을 모르는 많은 질문들도 느껴진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도 느껴진다. 그녀는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가.

-문성근의 뺨을 때리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도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약간 희극적인, 꿈과 현실 사이에 있는 장면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사랑하는 마음과 뺨을 때리고 싶은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을 연기할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그게 라스트 신이 될 줄 알았나.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다. 특히 다른 에피소드의 안느가 숨겨둔 우산을 마지막 에피소드의 안느가 찾아낸다는 건 훌륭한 아이디어다. 이게 라스트 신이 될 줄 얼마간 알고 있었고 나 또한 그러기를 희망했다. 내게도 그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배우 인생에서 <다른나라에서>는 어떤 영화로 남게 될 것 같나.
=이 영화를 작업할 때의 그 간소함, 신속함, 능란함을 생각하면 마치 꿈을 꾼 것만 같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영화를 찍을 때 아주 작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하는데, 홍상수는 아주 큰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최소한의 것을 할 줄 아는 감독이다. 나는 그러한 방식이 영화를 만드는 최고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 감독들은 그 때문에라도 많은 보조 장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내 연기 인생에서 <다른나라에서>는 매우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아주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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