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웨인과 베인은 대극의 합일을 이룰 수 있을까?
2012-07-31
글 : 김서영 (광운대학교 교수, 정신분석학 박사)
3인3색 영화 수다- 정신분석학자가 본 <다크 나이트 라이즈>

<씨네21> 665호에서 안시환은 배트맨, 조커, 하비 투 페이스가 모두 다크 나이트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웅과 악당 사이에 놓인 거울 때문에 그들이 대극적 역할을 맡은 듯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이 분석심리학적 비평에 동의한다. 우리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경우에도 웨인과 베인이라는 두 중심인물들을 통해 동일한 분석을 제시할 수 있다. 분석심리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 영화에서 베인은 웨인의 그림자다. 그림자란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대극적 모습으로서, 주위에서 그림자의 모습을 마주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증오하게 된다. 융은 진정한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그림자와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림자와의 합일이란 대극과 대면해 그것의 특성을 동화하고 그것이 더이상 두렵고 불편한 존재가 아닌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을 뜻한다. 그렇다면 웨인은 베인과의 대극의 합일에 성공했을까?

적어도 <배트맨 비긴즈>에서 웨인은 대극의 합일에 이르는 개성화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영화는, 우물에 빠져 박쥐의 공격을 받은 뒤 박쥐 공포증에 시달리던 웨인이 자신의 공포를 감싸안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배트맨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려운 존재를 피하거나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끌어안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이야기는 대극의 합일이라는 분석심리학의 중심 주제로 설명할 수 있는 치유적 서사다. 성인이 된 웨인이 동굴에서 박쥐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영웅의 자태로 의연히 일어나는 장면에서 우리는 프로이트와 라캉이 주장했던 “그것이 있던 곳에 설 수 있는 주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의 자리에 서게 된 주체는 더이상 두려움을 피해 도망치지 않는다.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웨인과 베인의 목숨을 건 사투를 펼치고 있지만, 동시에 베인과 웨인은 마치 샴쌍둥이와 같이 한몸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의 빚을 갚는 아들들은 영웅적 의지로써 아버지의 이름을 떠받들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그들이 아버지의 법 안에 머무는 이상 그들은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웨인과 베인은 서로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하 감옥에서 탈출해야만 한다. 한 사람의 목적은 도시를 파괴하는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의 목적은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고담시 자체를 웨인의 마음속 공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베인의 의지가 배트맨의 의지를 압도한다는 사실이 당연해 보인다. 과거로의 추락에 힘을 싣는 이가 웨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웨인은 현재를 포기한 채 과거에 갇혀 있으며 어느 때보다도 더욱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경우, 우물은 더이상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웨인의 비참을 표현해내는 적절한 장치가 아니다. 이제 우물 대신 그를 가두는 공간은 지하 감옥이다. 그것이 탈출 불가능한 지옥인 이유는 이 감옥이 웨인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방어막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웨인은 자신의 그림자인 베인과 대극의 합일을 이루었을까? 만약 웨인이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고담시의 법을 지탱하는 도시 이면의 거짓이 드러나고 도시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될 수 있을 것이며, 이와 함께 웨인은 아버지의 빚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경찰 무전기를 버리고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는 웨인의 모습을 보게 될까? 확실한 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욕망을 부정하는 모든 순간 우리가 베인이라는 그림자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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