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하나를 특정한 이미지의 배우로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TV드라마 <연애시대>의 지호와 <메리대구 공방전>의 메리, 영화 <페어러브>의 남은은 그동안의 이하나를 대표하는 캐릭터였다. 판타지 속에 사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현실에 발붙인 청춘. 혹은 다 채워지지 못하고 늘 조금씩 비어 있는 이십대. 그게 이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이하나가 연기하는 캐릭터엔 관계망 안에 온전히 녹아들지 않는 분명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하나가 분한 <알투비>의 유진은 그간 연기해온 인물들과는 사뭇 다르게 드라마적인 전형 안에 머무는 캐릭터다. 유진은 싱글 대디인 대서(김성수)를 짝사랑하는 유능한 조종사이자 튀지 않고 극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인물이다. 의외다. 이하나가 유진을 선택한 이유는 뭐였을까. “발랄한 로맨틱코미디 작품이 많이 들어오긴 한다. 삶 자체가 좀 변했다. 갖고 있던 이미지는 가져가되 그것만 가져가는 건 안된다고 생각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도전을 안 하는 건 성격상 안됐다. 이전엔 경주마처럼 나 자신만 보고 달렸다면 지금은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소중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경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그저 청춘이자 젊음 그 자체였던 이하나가 어느새 ‘여자’가 되어 있었다. 유진은 유능한 파일럿이기보다 한 남자를 오래 지켜보는 ‘여자’에 더 가깝다. 적은 분량과 제한된 인물 설정 안에서 이하나는 ‘여자’이면서 ‘프로’인 유진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무척 고심한 듯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엮이는 인물이다 보니 한컷이라도 그 사람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촬영 중에 김성수씨의 제안으로 즉석에서 세게 욕을 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나중에는 아주 리얼해져서 감독님이 진정하라고 하실 정도였다.” 드라마 <연애시대> <메리대구 공방전> <태양의 여자> <트리플>을 거쳐 영화 <페어러브>과 <알투비>에 이르기까지 이하나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있자니 문득 드는 생각. 정작 이하나는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풋풋하고 간질간질한 감성에 굳이 연연하는 것 같지 않다. 배우로서 이하나가 그리고 있을 궤적이 궁금해진다. 이하나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지금까지도 코믹한 캐릭터는 많이 해왔지만, <행오버> 시리즈의 배우 켄 정처럼 극단적이고 이색적인 연기도 해보고 싶다. 최근에 <카페 드 플로르>와 <토리노의 말>을 보고 나니 과감하게 나를 던지는 연기에도 욕심이 난다. 관객이 보기에 저 사람이 정말 전문 배우인가 싶을 정도로 극 안에 그대로 던져진 인물이 되어보고 싶다. 유럽 아트하우스영화의 깊은 표현에도 로망이 있다.”
<알투비> 이후엔 아마도 올해가 다 지나기 전에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이 아닌 데서 이하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하나가 음반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천재성이 없어서 내 안에 이미 잘된 것들을 더 많이 쏟아부어야 한다”는 이하나는 자신이 그간 보여주었던 것 이상으로 대중이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을 더 내주고 싶기에 손수 공들여 음반을 만드는 거란다. “그게 음악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업은 엎고, 다시 하고, 또 엎고 다시 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점점 더 완성도에 만족하게 된다. 부담감도 있지만 나 자신이 하는 작업이니까 안돼도 억울하진 않겠지 싶다.” 역시 이하나에게는 어떤 지점으로 발을 옮길지 무척 궁금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그녀의 다음 행보는 연기가 될까, 음악이 될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될까. “지금까지는 과도기였다고 생각한다. 삶을 돌아보면 대학 입시를 빼고는 목표를 정해서 이룬 게 없다. 전부 우연이었다. 친구 중에 아주 전투적이고 똑똑한 친구가 있는데 의외로 그 친구는 꿈이 없다고 하더라. 꿈이 없다는 말에 의아했는데 이젠 그 친구가 아주 현명한 걸 수도 있겠다 싶다. 나도 열린 미래를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