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경은 지쳤다. 몸도 마음도. 그녀는 3년을 내리 달렸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하이킥2>)이 3년의 시작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신세경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수줍은 표정을 짓는 ‘청순 글래머’의 등장에 모두 열광했다. CF와 화보가 홍수처럼 밀려왔고 영화 <푸른소금> <알투비>,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패션왕>까지, 신세경은 늘 카메라 앞에 있었다. “못 쉰 지 오래됐어요. 다음 작품을 하기 전까지 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 같아요.”
‘타인의 삶’을 사는 팍팍함 속에서도 “진짜 편하고, 맘에 든” 감색 점프슈트를 입은 전투기 정비사 유세영 중사를 연기한 <알투비>의 촬영은 신세경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군부대에서 촬영하는 게 흔한 경험이 아니잖아요. 지훈(정지훈) 오빠는 입대를 앞두고 짜증이 났겠지만요. (웃음)” 독특한 환경 때문에 <알투비> 촬영장이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알투비>의 세영은 신세경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캐릭터였다. “간혹 연기를 하면서도 캐릭터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데 그때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푸른소금>이나 <패션왕> 캐릭터의 감정은 미묘하고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표현하는 데 애먹었다면 <알투비>의 세영은 편했던 것 같아요.” 단적인 비교를 하자면 <알투비>의 세영은 <패션왕>의 가영처럼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 않는다. F15K 조종사 정태훈(정지훈)과만 “알콩달콩하면” 된다. 조종사가 되지 못한 열등감이 있지만 삐뚤어지게 표현하지도 않는다. 신세경은 단순하고 당찬 성격의 세영을 부담없이 연기했다.
연기의 부담보다 신세경을 더 지치게 만든 건 “외부적인 일”이다. “아직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 여자 연예인에게 바라는 수많은 덕목을 들이댈 때 정말 숨이 막혀요.” <하이킥2>가 만들어낸 엄청난 신드롬은 어린 배우에게 시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세경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올라만 갈 뿐 낮아지는 법이 없었다. <하이킥2> 이후 신세경이 내딛은 본격적인 성인 연기자로서의 첫걸음은 성공이라고 하기도, 실패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단, 모두가 동의할 만한 것이 하나 있다면 신세경이 훌륭하게 연기를 해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세경의 연기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신세경은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고 털어놓는다. “사실 <뿌리 깊은 나무> 촬영할 때 자신감을 많이 상실했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부족한 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나아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 연기를 잘하는 건 정말 어려운 거잖아요. 연기에 대한 욕심은 생기는데 외부적인 일들 때문에 힘들어서 이 직업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게 좀 억울해요.”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신세경에게 “외부”가 아닌 “핵”은 연기 그 자체다. 신세경은 지난 3년을 지나오면서 그 핵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지금은 너무 지쳐서 일에 대한 욕심을 부릴 수 없게 되어버린 거죠. 어느 순간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제가 제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제 삶을 살아야 연기를 하죠.” 연예인도 배우도 아닌 삶을 살기 위해 신세경이 내놓은 한 가지 해법은 여행이다.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만 있으면 되니까 연말에 시간이 나면 친한 친구랑 어디든 가려고 해요.” 그 여행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에너지가 채워진다면 “아직 나오지 않은 (신세경의) 대표작”을 기대해도 좋겠다. 신세경은 이런 기대가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자꾸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