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녀석들’도 울고갈 용감한 화법이다. 이종석은 힘들면 힘들다,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할 줄 아는’ 신인배우다. 자신의 첫 상업영화인 <알투비> 개봉을 앞둔 심정도 두근두근해야 마땅한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까먹고 있었어요. 촬영한 지 너무 오래돼서.” 영화 홍보를 위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당연히 적성에 맞지 않는다. “연기하는 건 참 좋고 재밌거든요. 그런데 그외의 부수적인 것들이 너무 힘들어요.” 인터뷰 당일에도 그는 <알투비> 홍보팀장에게 자신이 꼭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하느냐고 재차 물었다. “아직은 어딜 나가도 떳떳하지 못한 거예요. ‘안녕하세요. 배우 이종석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작아지는 것 같아요.” 엄살도 아니고 겸손도 아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예쁜 스물네살 청년의 솔직한 속마음일 뿐이다.
열여섯살에 모델 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이종석은 아이돌 그룹이 될 뻔하는 등 배우로 데뷔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출연한 뒤부터 그의 앞길은 뻥 뚫렸다. 그에겐 작품 운이 따랐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의 뿌잉뿌잉 안종석, 영화 <코리아>의 북한 탁구대표팀 선수 최경섭을 거치며 그는 누구나 손꼽는 라이징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즐겁게 받아들여도 좋을 이 상황을 이종석은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시크릿 가든>이나 <하이킥3>나 제가 잘해서 작품이 잘된 건 아니잖아요.” 그는 스스로 떳떳한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촬영과 후반작업이 길어져서 그렇지 <알투비>는 <코리아>와 <하이킥3>보다 먼저 촬영에 들어간 작품이다. 이번 영화에서 이종석은 까칠하고 숫기없는 모습 대신 발랄하고 귀여운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가 맡은 지석현은 비행훈련 때마다 기절하기 일쑤인 21전투비행단 소속 신참 조종사다. “이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방방 뛰는 캐릭터였어요. 감독님은 어리바리한 이미지가 저와 잘 매치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 난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캐릭터의 성격을 구축하는 건 두 번째 문제였다. 전투기 조종사 흉내라도 내려면 먼저 험준한 산을 몇개나 넘어야 했다. 각종 비행훈련이 그 앞에 놓인 산이었다. 중력훈련을 받을 땐 난생처음 기절을 했고, 화약이 터지는 산속을 내달리다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게다가 성격 급한 감독과 주연배우(정지훈)는 신인배우에게 느긋하게 연기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알투비> 촬영은 이종석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배울 게 많은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유준상은 자신의 뮤지컬 공연이 있는 날까지도 이종석의 연기 파트너를 자처했다. 이종석이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밝힌 정지훈과는 배우 대 배우로 어깨를 겨뤘다. 한살 어린 신세경과는 합숙을 하는 동안 자주 맥주를 마셨는데, 그는 “세경이가 차라리 누나였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이 가정법의 문장엔 연기 잘하는 또래 배우를 향한 칭찬과 자신을 향한 채찍이 담겨 있다.
강동원, 정지훈, 조인성 같은 배우를 보며 연기자의 꿈을 키운 이종석은 요즘 “그들이 내 나이에 보여준 무게감을 왜 나는 지금 갖지 못할까” 생각한다고 했다. 배우로서 존재감을 깊이 고민하던 그는 그래서 최근 단막극을 경험하기로 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30대 유부녀와 대학생의 사랑 이야기란다. “단막극을 하면 연기 공부가 많이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무척 어려워요. 요즘 계속 감독님을 찾아가서 ‘저랑 대본 읽어요’ 그래요.” 인기가 아닌 연기에 집중하는 이 배우가 왠지 믿음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