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는 중론에 피하고 싶었다. <경계도시2>를 끌어안고 보낸 세월의 여파가 여전히 남은 터라, 참혹한 현실은 물론이고 현실보다 잔인한 텍스트 역시 외면하고 싶었다. 지독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인간이 별 소리를 다 한다는 타박이 들리는 듯하지만, 모자란 인간이니 사실이 그렇다.
<남영동1985>와의 대면은 가을비 내리는 강남에서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잠룡들이 시사회에 총출동한 덕분에, 극장은 스릴 넘치는 대한민국 정치의 현장이 되었고, 관객은 졸지에 ‘유권자’로 격상하여 후보들과 손을 잡는 흥미진진한 풍경이 벌어졌다. 초단위 전략으로 움직이는 잠룡들이 꼼짝없이 두 시간을 공들이게 만든 영화 <남영동1985>. 궁금증이 더했다.
영화는 직격탄이다. 차(車), 포(包) 떼고 직진이다. 러닝타임 106분 중, 길어야 10분 정도를 제외한 시간은 고문 그 자체에 몰두한다.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 이곳에서 일하는 회사원(수사관)들이 관심있는 것은 오직 김종태(박원상)의 ‘머릿속’이다. 회사원들은 즉시 그의 머리를 뒤지는 ‘공사’(고문)에 착수한다. 야구방망이를 김종태의 다리에 끼운 채 무릎을 짓이기며 끊임없이 “무슨 생각을 했나?”를 묻고,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덮은 채 의식을 잃을 때까지 물을 부어대며 “나는 빨갱이다!”를 되뇌게 만든다.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김종태의 의식을 완벽하게 거세하기 위해, 고문전문가(일명 ‘장의사’ 역에 배우 이경영은 빙의했다)가 등장하면서 고통이 절정에 이르고, 회사원들은 강호의 고수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끔찍한 22일이 지나고, 드디어 날조된 또 하나의 조직표가 완성된다.
감독의 의도대로 <남영동1985>의 극장은 여지없는 고문실이다. 공포에 휩싸여 온몸의 세포들이 바짝 선다. 더구나 공포는 매 순간 현실의 무게로 덮쳐오고, 인간에 대한 연민에서부터 잔인한 국가의 폭력 앞에 선 개인의 무기력에 이르기까지 생각은 꼬리를 문다. 그러다 김종태의 환상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아내의 말에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당신 차례가 온 것뿐이야. 무모하게 버티지 마.” 그렇게 김종태와 함께 기진맥진 바닥까지 떨어지는 순간, 날카롭게 반짝이는 무엇인가 스쳐간다. 바늘끝처럼 가늘고 여리지만 날선 그것의 정체, 영화가 주는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하는 그것은 한줄기 ‘분노’였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때로 질문하게 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현실은 어찌하여 이토록 반복적인가?’다. 부단한 반복은 퇴행이다. 퇴행이 구축되는 지름길에는 무기력과 무관심에 둥지를 튼 ‘외면’이라는 안전한 갓길이 놓여 있다. 늘 칼날을 벼리고 살 것 같은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한 환상을 깨서 송구하지만, 나 역시 그 갓길을 부지런히 오가며 산다. 그나마 다큐멘터리 덕분에 찬바람 부는 현실에서 정신을 가다듬을 순간도 만나고, 부분적 ‘진실’이니 한줌의 ‘분노’니 읊조리며 사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2009년 93살의 레지스탕스 투사인 슈테판 에셀은 어느 강연에서 프랑스 청년들에게 ‘참여로 이어지는 진정한 분노’를 화두로 던졌다. 다음 세대를 향한 백전노장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책 <분노하라>에 전세계가 감전된 것은, 비록 갓길을 오가더라도 방향을 잃지 말라는 인생 선배의 깊은 통찰에 대한 경외 때문이리라.
극장을 나서자, 정지영 감독과 문성근, 명계남 선배들이 배웅을 위해 서 있었다. 2012년 한국 정치의 아이콘들에게 서늘한 경고장을 날린 주역들이다. 감독님과 포옹을 한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힘들게 해서….” 갑자기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남영동1985>와 영화보다 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주역들과 나 사이에 무엇이 놓여 있을까? 각설하고 디데이는 코앞인데, 도대체 성에 차는 자가 없다. 참여로 이어지는 고품격 분노는 첩첩산중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갓길을 오가며 ‘쌍용’에 대한 다큐멘터리 기획서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