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장르의 종착역에서
2013-01-17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워쇼스키, 티크베어 감독이 윤회의 이야기에 매혹되고도 성취하지 못한 것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일견 재미있고 매혹적이다. 서로 다른 6개의 시대를 서로 다른 6개의 장르로 근 3시간 가까이 풀어내며 시공간을 복잡하게 오가지만 구조적으로 산만한 인상이 없다. 각각의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뉘앙스도 깔끔하게 전달된다. 감성의 창출, 이야기의 전달 측면에서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같은 규모의 영화에 있어서 이례적으로 성공적이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완전히 닫히지 않으면서 주는 아련함의 뉘앙스가 결말까지 이어지고 나면 무언가 허전한 인상이 남는다. 다시 말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흥미롭지만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 영화’는 아니다. 1조2천억원의 제작비, 워쇼스키 남매와 톰 티크베어 감독의 협업, 톰 행크스와 배두나를 위시로 한 성별과 연령을 두루 포괄할 수 있는 멋진 배우들, 미스터리-로맨스-스릴러-코미디-SF-판타지를 넘나드는 장르 하이브리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여섯개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연결되어 구성되었다. 원작 소설에서처럼 연대기순(혹은 역연대기순)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모자이크 퍼즐처럼 연결되어 있다. 서로 다른 시대 분위기와 강한 캐릭터를 지닌 배우들로 인해 이야기의 경계가 비교적 뚜렷해 보인다. 데이비드 미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본 영화의 감독은 앤디, 라나 워쇼스키 남매와 톰 티크베어이다. 워쇼스키들은 <매트릭스> 시리즈와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 독창적 세계관과 화려한 비주얼을 선보인 바 있다. <스피드 레이서>는 할리우드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의 아드레날린 치솟는 스펙터클을 제공했으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화려한 게임을 하기를 원하지 극장에 앉아 관람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애니 매트릭스>에서처럼 서로 다른 스타일과 시공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비해 훨씬 매력적이지 않았나 싶다. 한편 톰 티크베어 감독은 <롤라 런>과 <향수> <더 인터내셔널> 등을 통해 유럽 감독으로서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기법으로 감성적인 영화를 만들어왔다. 관객으로서는 세계관과 비주얼을 워쇼스키들에게, 감성적 연출을 톰 티크베어에게 기대해볼 만했다. 이들은 “시각적으로는 관객이 이전에 본 적 없는 것을 선사하고, 감정적으로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객 내면의 동심을 자극하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라나 워쇼스키는 앤디 워쇼스키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브이 포 벤데타> 촬영장에서 내털리 포트먼이 소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읽는 것을 보고, 원작이 그리고 있는 윤회사상에 끌렸다고 한다. 현재의 삶이란 유한한 것이 아니며 이 삶의 모든 선택과 행동은 과거-현재-미래로 연관되는 거대한 서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서사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러한 선택과 우연에 관한 성찰은 감독 각각의 초기 작품인 <매트릭스>와 <롤라 런>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각각의 영화에서 네오가 선택하는 알약의 색깔과 롤라가 선택하는 타이밍은 그들의 인생, 나아가 세계를 바꾸게 된다. <매트릭스>는 주체가 선택하는 실제(라고 여겨지는)를 무대화하나, <롤라 런>은 주체가 실제 결과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환상적 대가를 무대화한다. 이들의 초기영화들에서 우리는 대안현실 판본들의 가능성에 대한 암시를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들은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세기와 문명을 가로지르는 대서사적 장르 하이브리드로 발전되었다.

더 큰 운명에 대한 ‘자각’의 순간, 그것이 애덤 어윙(존 스터지스)에게는 다른 인종과의 우정과 환대의 경험이고, 손미-451(배두나)에게는 ‘상승’에 따른 혁명으로의 동참이며, 루이자 레이에게는 공동체를 위한 진실의 구현이고, 로버트 프로비셔에게는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의 선율로 떠오른다. 우리 삶에서 우연이란 사실은 영겁의 윤회 속에서 일어난다는 세계관은 사색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여섯 시대의 삶이 윤회의 사슬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거대 서사가 수렴되는 지점이 모호하기에 영화의 결말은 힘없이, 좋지 않은 뒷맛을 보여주며 끝난다. 그래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지금의 영화가 품은 최대치의 가능성은 아니다. 달리 말해 장르의 미래가 아니라 지난 100년의 영화가 선보였던 장르의 종착역이며, 이미 관객은 ‘다른’ 장르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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