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이미지의, 이미지에 의한, 이미지를 위한
2013-01-17
글 : 송경원
일인다역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영화가 끝나도 바로 자리를 뜨진 말라는 신신당부를 듣고 영화를 봤다. 크레딧과 함께 공개되는 분장쇼를 꼭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쇼스키 감독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가장 빛나는 아이디어는 특수분장을 통해 배우들이 일인다역을 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할리 베리, 짐 스터지스, 휴 그랜트, 짐 브로드벤트, 벤 위쇼, 배두나 등등 쟁쟁한 배우들이 각기 다른 시대에서 어떻게 다른 인물들로 변장하여 등장하는지를 매끄럽게 연결하기 위해 장면의 절반 이상을 할애한다. 그렇기에 유명 배우들의 분장을 통한 일인다역은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본질을 짚어나가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배우들의 경우엔 충분히 알아볼 수도 있고, 몇몇은 너무 감쪽같아 놀랄 것이며, 몇몇은 노골적으로 분장이라 불편하기도 하다(최근 동양인 비하논란을 낳고 있는 라텍스 분장은 비록 악의가 없더라도 그 무지함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톰 행크스가 1894년 돈에 눈이 먼 비열한 의사, 1931년 수전노 호텔 매니저, 1973년 음모를 고발하는 핵발전소 연구원, 2012년 다혈질 삼류 소설가, 2144년 영화 속 배우, 2321년 황폐화된 지구 외딴섬에서 살아가는 원주민으로 등장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관객은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게 훈련받아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관객이 기대하는 방식의 서사적 절정 없이 막을 내린다. 6개의 장르가 모인 6중주는 완벽할 정도로 따로 놀고, 배우들은 각기 자신이 속한 시간대를 넘어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굳이 톰 행크스가(그 밖의 모든 배우들이, 심지어 전혀 닮지 않는 동양인과 서양인 분장을 해가며) 6명의 각기 다른 이야기 속에 꼭 등장해야 하는가. 그렇다. 이것은 단지 쇼다. 다만 영화사상 최고의 분장쇼이자 이야기쇼다.

입장에 따라 의미없는 쇼에 불과할 수도 있고, 혹자는 새로운 연출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시도라 평하기도 한다. 익숙한 서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메시지는 참으로 소박하다. 그런데 그것을 참으로 웅장하게 풀어나간다. 여기서 ‘웅장함’을 담당하는 것이 다름 아닌 이야기의 연결점, 그리고 배우들의 분장을 통한 일인다역이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영화가 끝난 뒤에 등장하는 분장쇼라 할 수 있다. 서사적 관습에서 보자면 좋은 이야기란 반드시 주제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어야 하며 분리된 에피소드에서 그 연결점을 담당하는 것은 주로 배우 또는 영화의 주제였다. 하지만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1894년의 남태평양, 2144년의 네오서울, 2346년의 하와이가 그마나 주제적으로 유사할 뿐 나머지 세개는 아예 따로 돌아간다. 서사적 유기성이 없는 이 스토리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오직 배우들의 요란한 분장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이미 영화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를테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 관한 재미있는 게임이다. 이야기를 보지 말고 그것이 이어지는 방식을 보라. 이야기 블록을 쌓아가는 이 새로운 놀이는 이제 새로운 룰을 적용한다. 철저히 도상의 유사함에 기초한 연결들. 미스터리, 로맨스, 스릴러, 코미디, SF, 판타지의 6가지 이야기는 퍼즐 조각으로 잘게 나눠져 있으며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그 연결지점을 일인다역, 장면의 유사성, 이미지의 연결 등 이야기 바깥의 도상적 요소들에서 찾는다. 상징과 의미, 지표적인 연결을 찾는 대신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들이 단지 이미지만으로 연결되는 방식 내지는 그 과정 자체를 보는 것,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관객에게 던지는 놀이는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TV화면을 돌리는 것과 유사한 감각. 딱히 이어지지 않지만 지루하지도 않은 놀이. 적어도 3시간에 달하는 이 영화가 그리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완벽하게 매치되는 이미지들의 깔끔한 이음매 덕분이다. 말하자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에 관한 거대한 장난질이다. 당신이 기꺼이 이 익살 속으로 뛰어들 용의가 있다면 이것은 영화적으로 의미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아마도 두번은 안 통할 엄청나게 비싼 깜짝쇼. 그렇다고 쇼 자체의 의미마저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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