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상실과 피로 누적. <지슬>로 인해 오멸 감독이 얻은 것들이다. “최근엔 내게 <지슬>밖에 없는 것 같다. 사생활 없이 몇달을 살다보니 자아를 상실하게 됐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슬>이 공개된 뒤부터, 아니 <지슬>의 제작에 돌입한 순간부터 오멸 감독은 쉴 틈이 없었다. 게다가 몇년째 계속돼온 “트렁크 인생” . <지슬>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멸 감독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던 자신의 숙소이자 자파리연구소 합숙소의 보증금을 뺐다. “큰돈도 아니었다. 말이 보증금이지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였다. 이젠 트렁크 인생에 꽤 익숙해졌다.” 오멸 감독은 제주도에서도, 서울에서도 모텔을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지슬>이 제주도에서 개봉한 다음날인 3월2일 오멸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가 끝난 뒤 저녁으로 제주산 돼지고기를 구워먹는데 오멸 감독이 말했다. “이제야 좀 웃을 수 있게 됐다” 고. 여유가 생기자 이야기도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시골에 사는 예술가에게 어떻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오멸 감독에게 들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지슬>을 어떻게 볼까 신경 쓰이겠다.
=엄청 신경 쓰였다. <지슬>이 그분들이 원하는 방식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안다. 역사를 학습시키거나 선동하는 영화가 아니지 않나. 제주도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원한이나 분노를 담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긴장도 풀어주고 싶었고 웃게 하고도 싶었다.
-대중적인 화법과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 사이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한테 잘 찍으면 영웅인데 못 찍으면 역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사람들이 강렬한 이야기를 원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선동하는 작업이 되길 원하는 분들은 4.3을 역사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역사에 분노를 느끼는 분들인 거다. 나는 그렇지 않은 분들한테 말을 건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업영화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면 또 왜곡될 여지가 생긴다. 들인 돈 만큼 수익을 내야 하니까.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그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그냥 ‘영화로 제사 지내자’였다. 4.3으로 희생된 분들이 편하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을 영화에 담고 싶었고, 관객도 영화를 통해 제사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었으면 했다.
-미술과 연극을 하던 당시에는 4.3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나.
=전혀. <이어도>를 통해서 4.3을 은유적으로 처음 다뤘다. 20대 때는 그 주제를 계속 피해다녔다. 그때는 역사를 알고자 하는 것보다 나를 찾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30대 넘어가면서 역사나 뿌리를 찾는 게 나를 찾는 작업이랑 만나는 거구나 싶더라.
-<지슬>의 총제작지휘로 이름을 올린 김경률 감독이 <끝나지 않은 세월>(2005) 작업 도중 돌아가셨다. 그 일이 <지슬>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나.
=<끝나지 않은 세월> 작업할 때 의견 충돌이 있어서 나는 끝까지 동참하지 않았다. 남겨진 사람들에겐 그게 큰 그림자다. 그런 상황에서 이걸 내가 넘어서야 경률이 형에 대한 부채감을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김경률 감독과는 어떤 점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나.
=4.3을 다루면서 지역에서 후원금을 모집하는 데에 나는 반대했었다. 이 사람들의 아픔을 잘 찍겠다고 돈을 받는 거잖나. 그 부담은 누가 감당할 건가. 우리가 영화를 잘 못 만들면 그 여파는 후배들한테 간다. 후배들은 앞으로 후원을 못 받을 테니까. 형님은 결국 후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 <지슬>에 경률이 형의 이름을 총제작지휘에 올린 건 결국 우리가 형님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 작품을 만드는 동안 제작발표회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슬>은 제작발표회도 하고, 언론에도 알리고, 후원금 모집도 했다.
-<지슬>을 만들기 직전에 <이어도>에서 4.3을 다뤘다.
=스탭들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어도>는 내가 보려고 만든 영화다. 4.3 당시 제주도에 영화감독이 있었다면 어떤 영화를 찍었을까, 그게 궁금했다. 만약 제주도 영상박물관이라는 게 있다면 영상자료 목록의 맨 앞자리에 놓여 있을 것만 같은 작품을 찾아서 보고, 그걸 다시 돌려놓는다는 마음으로 작업한 게 <이어도>다. 원래는 개봉할 생각도 없었다.
-<어이그, 저 귓것>과 <뽕똘>이 영화라는 장르로 한판 재밌게 놀아본다는 느낌이었다면, <지슬>은 영화적으로 한 단계 성숙한 느낌을 준다. 변성찬 평론가는 “<지슬>은 오멸 감독 필모그래피의 종합”이란 표현을 하기도 했다.
=영화의 형식은 그 대상에 달려 있다고 본다. <어이그, 저 귓것> <뽕똘> <이어도>는 각각 그에 맞는 예산이 있었다. <뽕똘>은 500만원 정도 들었는데, 그게 <뽕똘>에 맞는 예산이었다. <이어도>는 색보정까지 300만원쯤 썼다. <지슬>은 2억5천만원이 들었다. 돈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잘 찍었다고 생각지도 않고, 작품을 많이 찍어서 그렇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에 맞는 그림을 그렸던 것뿐이다. <지슬>이 종합일지 모르겠으나, <어이그, 저 귓것> 찍을 땐 그게 나한텐 종합이었다.
-<지슬>도 단지 감독님이 가진 그릇에 잘 담아낸 작품일 뿐이라는 얘긴가.
=그렇게 얘기하면 또 건방져 보이는데. (웃음) 2억5천만원이라는 돈은 우리에게 엄청 큰돈이다. <지슬>의 고혁진 PD나 나나 빚으로 영화 찍었다.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 영화의 방식을 찾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첫 앵글 찍으면서 고혁진 PD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또 옆길로 새고 있다고. 편한 호흡, 편한 앵글이 안 나오더라. 그런데 2억원으로 10억원을 벌려고 했다면 <지슬>이란 영화를 못 찍었을 거다. 이 돈으로, 이 내용으로 어떤 형식을 취할까 고민하다가 제의적인 방식을 택하게 됐다. 이번엔 화면에도 진짜 신경을 많이 썼다. <지슬>을 제대로 못 찍으면 제주도의 역사가 못난 역사가 되는 거다. 대중은 그렇게 판단하니까.
-연출 방식이 궁금하다. 시나리오대로 찍지 않는 것 같은데.
=시나리오 없이 빈손으로 촬영장에 간다. A4지랑 볼펜만 가지고. 촬영날 영화 찍을 장소에 제일 먼저 가서 공간을 슥 훑어보고 촬영감독, 조명감독과 얘기 나누면서 그 자리에서 콘티를 짠다. 배우들에게도 상황이나 감정을 숙지하고 다니라고 한다. 텍스트에 의지하는 촬영이 되면 공간이나 상황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때그때의 상황을 잘 반영하려는 의도인가.
=공간을 해석하는 것, 상황을 이해하는 것, 나를 이겨내는 것, 이렇게 세 가지가 영화를 찍을 때 내가 나에게 주는 큰 숙제다. 현장에선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그에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슬> 찍을 때 내가 상황을 제어하지 못한 날이 딱 하루 있었다. 동굴에서의 첫 촬영 때였다. 조명기도 겨우겨우 운반했고, 스탭들도 누워서 카메라를 옮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촛불 들고 아슬아슬하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주민들이 고추 연기를 피우는 장면이었는데, 동굴 안 공간이 여의치 않아서 카메라 앵글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날 숙소에 들어갔는데 화가 나서 못 견디겠더라.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다음날 그 장면을 다시 찍었다. 스탭과 배우들을 엄청 고생시켰지. (웃음) 결국 그들도 의욕이 생겼는지 ‘스모그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고추 연기 피웁시다’ 해서 실제로 고추 연기를 피웠다.
-전작들에서부터 부감숏, 풀숏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지슬> 촬영에서 중요한 점은 뭐였나.
=<뽕똘> 찍을 때 내가 너무 풍경 위주의 그림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고민을 좀 했다. 그래서 <뽕똘> 땐 앵글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이어도>는 캐논 5D Mark II로 찍었다. DSLR이라 사진 앵글로 찍으려 했다. <지슬>은 레드원 카메라로 찍었다. 레드원은 색채가 섬세하고 좋지 않나. 그런데 흑백영화라서 조명에 예민하게 신경을 썼다. 또 그전까진 영화 찍으면서 크레인을 써본 적이 없다. 2m30cm 정도 올라가는 돌리(dolly)가 제주도영상위원회에 있는데 그걸 크레인처럼 썼다. 이번엔 전문 스탭들을 섭외했기 때문에 크레인을 이용한 앵글이 간혹 쓰였다. 핸드헬드는 이번 영화에서 딱 한 장면 사용했다. 군인들이 초가집을 드나들며 주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핸드헬드로, 원신 원컷으로 찍었다.
-차기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다. 세워둔 계획이 있나.
=가벼운 작업을 다시 해보고 싶다. 주변에서 갑자기 큰 그릇을 내미니까 내가 그 그릇을 채워줘야 하나 하는 부담이 생기더라. 그런데 <지슬>로 생긴 기대치만큼 다음 작품에선 욕도 먹고 매도 좀 맞아야 될 것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