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이미 어둑어둑한 밤, 약속된 장소로 나가자 누군가 다가왔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나의 손을 잡고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택’(이 용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역정보’ 정도로 해두자)이라고 했다. 차를 타고 십여분 거리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처음 만난 곳은 관덕정 부근의 중앙성당이었고 이동한 곳은 삼성혈 근처의 광양성당이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니 지하실 같은 공간이 이미 200여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머뭇머뭇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자마자 곧 불이 꺼졌다. 그렇게 <레드 헌트>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공식(?)상영되었다. 공안당국은 <레드 헌트>를 이적표현물로 규정했고, 나에겐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있던 시절이었다. 상영만으로도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니 성당이나 대학 학생회가 아니면 상영할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4.3 항쟁 50주년을 맞아 전북대, 우석대, 원광대 등 3개 대학의 ‘학생연대회의’가 <레드 헌트>를 상영하기로 하자 경찰은 완주경찰서장 명의로 아래의 ‘경고문’을 보냈다. ✽귀 대학교에서 상영예정인 <레드 헌트>는 이적표현물로 감정된 영상물로 국가보안법 제7조 5항에 저촉됩니다. ✽지난해에도 동 영화를 방영하여 사법 처리된 사례가 있습니다. ✽냉철히 판단하여 상영을 취소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동 영화를 방영할 경우 관련자 전원을 사법처리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합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정권이 세번 바뀌는 사이 제주 4.3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3만명에 이르는 무고한 죽음이 국가에 의한 범죄행위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죄했다. 4.3의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4.3 평화공원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4.3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이었고 그 모든 희생과 죽음은 빨갱이였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는 생각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슬프지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4.3 특별법은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법일 뿐이다.
2011년, 푸른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봄날이었다. 제주섬에서도 가장 남쪽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초대장이 날아왔다.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레드 헌트>를 상영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마을에 있는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상영의 대가였다. 그렇게 <레드 헌트>가 4.3을 직접 몸으로 겪은 사람들과 공식적(?)으로 처음 만나게 된 날이었다. 4월3일이었다. 제작된 지 15년이 지난 날이었다. 그리고 난 그날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정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아마도 지금 강정마을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군기지 문제 말이다. 2007년 강정마을이 느닷없이 해군기지 예정지역으로 확정된 이후 벌써 7년째 반대투쟁을 해오고 있다. 물론 찬성하는 마을 사람들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4.3 때보다 더 비참하다고. 4.3 때 이 작은 해안마을에서도 100여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때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외부로부터의 ‘적’을 막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지금은 마을 공동체 자체가 내부로부터 무너져버렸다. 이 상처는 극복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늘 이방인이기만 한 내가, 나 하나의 조그만 상처조차도 어쩌지 못해 버둥거리는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함께 분노해야 할 땐 분노하고 웃을 땐 웃으며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 시간들을 기록해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안보와 경제논리가 만나 벌이는 거대한 사기극, 이름하여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어린아이까지 포함해 1천명 남짓한 이 작은 마을에 1400명의 육지기동대까지 파견해가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발가벗은 국가폭력의 현장.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재벌이 만나 벌이는 안보를 가장한 제 밥그릇 챙기기. 그로 인해 지금까지 500여명의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연행 구속되었다. 지금도 영화평론가 양윤모는 옥중에서 43일째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누군가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고 했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난 지금 그 희극의 현장에 있는 것이다.
봄이다. 봄이 왔다. 제주의 봄은 바람신인 영등할망과 함께 온다. 지금 제주의 해안마을들은 ‘영등굿’ 시즌이다. 마을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비는 굿이다. <지슬>에도 영등할망의 봄바람이 훈훈하게 불어 많은 관객이 함께할 수 있기를 빈다. 적어도 제주 출신인 오멸 감독은 이런 질문을 받을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제주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제주 4.3 영화를 만들게 되었나요?” 늘 웃고 말았지만 이제야 답한다. ‘영등할망’ 때문이었다. 바람신이 날 제주로 데려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