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윤제문] 못 말리는 막무가내
2013-04-22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전설의 주먹> 재석 역의 윤제문

어릴 때 재석과 달리 되게 평범했다. 조용하고. 나중에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고민의 결론이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다. 한대 맞았다고 남의 학교 복도에 쳐들어가 자신을 때린 사람 나오라고 외치질 않나, 그마저도 성이 안 찼는지 소풍 가는 데까지 쫓아가 맞은 거 되갚으려고 하질 않나. ‘남서울고 독종 미친개’라는 별명답게 <전설의 주먹>의 재석(박두식. 윤제문의 아역)은 앞뒤 안 가리는 친구이자 빚지고는 못 사는 친구다. 대개 이런 부류의 친구들 중에 의리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친구가 많다. 덕규(박정민. 황정민의 아역)와 상훈(구원. 유준상의 아역)이 으르릉거릴 때마다 재석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영웅본색>의 주윤발과 적룡이 싸우는 거 봤냐”며 화해를 종용하는데, 단순무식한 그 모습이 전혀 얄밉지가 않다.

윤제문은 원작인 동명 웹툰을 읽자마자 자신이 재석을 연기하게 될 거라 직감했다. “강우석 감독님이 출연 제안을 하면서 (황)정민이, (유)준상이 형이 함께한다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웹툰을 봤는데 내가 재석, 정민이가 덕규, 준상이 형이 상훈이라는 그림이 딱 그려지더라.” 배역도 배역이지만 그에겐 강우석 감독과의 첫 작업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평소 강우석 감독님과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역할에 대한 욕심보다는 출연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아역 박두식이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 재석을 연기했다면 윤제문은 “세상의 모든 쓴맛을 본 삼류 건달, 어른 재석을 연기”한다. 살아온 과정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주인공 덕규와 달리 재석의 삶은 학생에서 중년 건달로 곧바로 점프한다. 윤제문은 자신의 몇몇 대사를 통해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재석의 삶을 채워넣었다. 영화의 초반부, 프로그램 <전설의 주먹>에서 만난 덕규와의 평범한 대화 신. ‘어머니 장례식에 못 가서 미안하다’는 덕규의 말에 재석은 ‘나 같은 아들 뒀는데 오래 사셨겠냐’라고 대답한다. “영화 속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재석은 본의 아니게 건달이 됐을 것 같다. 철없던 시절, 누가 옆에서 잡아주지 않았다면 모를까. 건달은 그가 원했던 길이 분명 아닐 것이다.”

몇 마디 대사보다 재석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건 따로 있다. 사각의 링 위에 선 그의 모습이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그의 몸을 뒤덮은 문신은 그래서 더욱 초라해 보였다. “촬영 전 몸을 만들까 해서 감독님께 ‘살도 뺄까요?’라고 여쭤봤다. 감독님께서 ‘재석이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고 하시더라. 하긴 만날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데 조폭이 몸 관리를 제대로 했겠나.” 복싱 기술을 선보이는 덕규나 긴팔과 다리를 활용하는 상훈과 달리 재석이 링 위에서 상대 선수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개인적으로 동네 복싱 체육관에 등록해 기본 기술을 연습하고, 서울액션스쿨에서 합도 맞췄지만, 기본적으로 재석은 링 위에서 막무가내 싸움을 하는 캐릭터다.” 맞아야 한다는 공포감은 분명 있었지만 어금니가 부러질 정도로 열심히 맞고 나면 통쾌하고, 시원했다고 한다. “부러진 어금니는 산업재해 신청 안 했냐고? 에이, 마침 오래돼서 임플란트할 때였는데 잘됐지 뭐. (황정민이 옆을 지나가며 ‘산업재해 신청하면 받아줄지도 몰라’라고 하자) 뭘 또, 각박하게 그런 얘기하고 그래. (웃음)” 혼자 고생한 것도 아니고, 일을 하다 생긴 일이고, 임플란트를 통해 어금니를 새로 교체했으니 유난 떨 필요가 없다는 쿨한 대답이다.

현재 그는 JTBC 드라마 <세계의 끝>(연출 안판석)에 출연하고 있다. 영화 <고령화가족>(감독 송해성)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세계의 끝>의 ‘강주헌’이나 <고령화가족>의 대책없는 남자 ‘한모’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는 답변하기를 꺼려했다. “<전설의 주먹> 얘기하고 있는데, 다른 영화와 드라마는 왜 얘기해. 그건 다음 기회에 하자고.” <전설의 주먹>으로 만난 인터뷰에서는 그 영화 얘기만 하겠다는 게 ‘윤제문식’ 의리였다. 재석이 딴 길로 새지 않고 영화배우가 되었다면 윤제문 같은 성격의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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