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재현이 아니라 발명
2013-05-21
글 : 장영엽 (편집장)
프로덕션 디자인-개츠비의 저택 vs 데이지의 저택

개츠비의 저택

제작진이 “어른의 디즈니랜드”라 명명한 개츠비의 저택. 고딕 스타일의 뾰족한 탑들은 후반작업에서 CG의 힘을 빌려 완성됐다. 이곳의 비현실적인 화려함은 몽상가이자 자신의 존재를 데이지에게 절박하게 드러내길 원하는 개츠비의 내면을 닮았다. 그의 과시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카메라가 저택 바닥에 새겨진 개츠비의 이니셜을 비출 때다.

“내 평생 그런 광경은 처음 봤다.”

<위대한 개츠비>의 파티장 세트에 들어선 캐리 멀리건의 소회다. 1920년대 의상을 입은 400여명의 보조 출연자들,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달처럼 공중에 떠 있는 풍선들, 곳곳에서 흘러넘치는 샴페인…. <물랑루즈>를 만든 감독 아니랄까봐, 바즈 루어만이 구현해낸 1920년대 뉴욕 상류사회의 위용은 과연 보는 이를 단숨에 압도할 만큼 화려하고 찬란하다. <위대한 개츠비>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구상하던 제작진은 원작 소설의 한 부분을 떠올렸다. 작품의 화자 닉 캐러웨이가 뉴욕의 밤을 “만화경 같은 축제”라고 묘사한 대목이다. 이 말에서 프로덕션 디자인 컨셉의 힌트를 얻은 제작진은 1920년대 미국의 황금기를 그대로 재구성하기보다 그 시대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흥분과 활기를 되살리는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년대의 매력을 21세기 관객이 충분히 실감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느낌과 고전적인 요소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위대한 개츠비>의 프로덕션 디자인에 있어 중요했다”고 바즈 루어만의 아내이자 <위대한 개츠비>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캐서린 마틴은 말한다.

제이-지의 음악(59쪽 참조)이 영화의 정서를 결정한다면, 프로덕션 디자인팀이 창조해낸 <위대한 개츠비>의 세트는 주요 등장인물의 개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데 한몫한다. 예를 들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배경인 개츠비와 데이지가 사는 저택은 두곳 모두 미국 상류층의 공간임에도 느낌이 판이하게 다르다. 웨스트에그에 자리한 개츠비의 저택은 외관과 그 내부를 채우는 요소들이 웅장하고 과시적으로 보이는 반면, 이스트에그에 있는 데이지의 저택은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그 기품이 느껴진다.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는 완전히 다르다. 이스트에그에 사는 사람들은 상류층 중에서도 정말로 부유한 자들이다. 그들은 웨스트에그에 사는 사람들을 천민 취급하며 배척한다. 갑자기 돈을 벌게 된 신흥 부자라고 말하며.” 바즈 루어만의 말처럼 시대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상류층과 경제 부흥에 힘입어 새롭게 진입한 신흥 부호의 대비를 보여줄 데이지와 개츠비의 저택은 디자인 컨셉과 롤모델 또한 다르다. 캐서린 마틴에 따르면 매일 밤 성대한 파티가 열리는 개츠비의 집은 “어른의 디즈니랜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고안되었으며, 네오 고딕 건축물인 시드니의 성 패트릭 신학대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소설에서 “거대한 빨간 벽돌집”이라고 묘사된 데이지의 저택은 롱아일랜드의 올드 웨스트버리 가든을 모델 삼아 황금기의 할리우드와 유럽의 건축 양식을 고루 조합해 만든 공간이며, 보수적인 외관을 통해 결혼에 속박당한 데이지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이처럼 1920년대 뉴욕 상류사회의 두 얼굴이 <위대한 개츠비>의 세트에 담겨 있다. 어느 쪽이건 보는 이들에게 시각적 쾌감을 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데이지의 저택

데이지와 남편 톰 뷰캐넌이 살고 있는 이스트에그의 빨간 벽돌 저택. 프로덕션 디자이너 캐서린 마틴은 “300여년 동안 계승된 가문의 집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기품있는 앤티크 가구와 당시 유럽의 새로운 유행을 적절히 조화시킨, 전통적인 미국 상류층의 집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닉의 집

“한달에 80달러 하는 가짜 같은 방갈로.” 개츠비의 유일한 벗이자 소설 속 화자 닉 캐러웨이의 집에 대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묘사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대저택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서민의 공간이지만 작은 화단으로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돌담길이 현관으로 이어지는 닉의 집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캐서린 마틴에 따르면 이는 닉의 순수한 본성을 상징한다고. 닉의 집은 롱아일랜드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주택의 모습으로, 시드니에 위치한 윌슨마운틴에 세트를 짓고 촬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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