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낯설고 무시무시한 세계 <퍼시픽 림>
2013-07-17
글 : 김태훈 (영화평론가)

2025년, 태평양 심해에 큰 균열이 일어나고 이 구멍을 통해 외계에서 온 거대한 괴물 ‘카이주’가 침범한다. 세계 각국은 연합군을 결성하고 초대형 로봇인 예거를 만든다. 최고의 예거 조종사 롤리(찰리 허냄)는 전투 도중 파트너였던 형을 잃고 예거 군단을 떠난다. 이후 각국의 지도자들은 다른 방어책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예거 프로그램을 점차 종료시키기로 한다. 저항군의 사령관 스탁커(이드리스 엘바)는 남아 있는 예거들을 이끌고 롤리를 다시 데려온다.

<퍼시픽 림>은 서사보다는 감독이 만들어낸 이미지와 세계, 그리고 그 스케일을 중심으로 봐야 하는 영화다. 서사는 있지만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일부러 이야기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캐릭터와 서사 구조는 지극히 정형화되어 있으며 인간이 로봇의 머리에 타고 인간의 움직임 그대로 기계가 움직이는, 많이 보아왔던 익숙한 설정을 가지고 온다. 인물들간의 갈등은 영화 분량상으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지는 다르다. 익숙하지 않다.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보다 10배 이상 큰 로봇과 괴물이 벌이는 싸움은 둔탁하지만 육중하고 강한 울림으로 시각을 지배한다. 흔히 보아온 빠르고 날렵하게 적의 허점을 공격하는 그런 싸움이 아니다. 두 거대한 몸이 육탄전을 벌여 팔을 뜯어내고 머리를 박살낸다. 외계에서 온 괴물과 인간이 만든 괴물은 우리가 근접할 수 없는 높은 빌딩 위에서 싸우며 인간이 만든 구조물들을 하찮은 듯이 부숴버린다.

괴물에 달라붙어 사는 기생충이 그나마 인간이 다룰 수 있는 크기이며 인간은 그 괴물의 장기를 떼어서 팔아 돈을 번다. <트랜스포머>에서 로봇은 친구였다. <퍼시픽 림>에서 괴물은 인간의 눈에서 바라본 타자, 인간에게 맞춰진 타자가 아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그 낯설고 무시무시한 타자의 세계를 이미지들의 향연으로 가득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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