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결국 시나리오, 결국 메시지 - 극장산업의 미래와 배우들의 세대교체
2025-02-14
글 : 김소미

바야흐로 “과거의 데이터가 소용없는 춘추전국시대”다. 업계 관계자들은 극장에서의 성패를 가늠할 때 무엇보다 기존 관행에서의 탈피가 필요한 시점임을 한목소리로 말한다. “감독, 배우가 주는 기대감으로 만족되는 시대는 끝났고 관객의 허용을 바라는 장르적 컨벤션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음”이 증명됐다. “예측 가능한 감동, 틀에 짜인 이야기 흐름, 스타 캐스팅에 의존한 작품”은 “세대 변화를 반영하지 않아 영화 주요 소비층인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나리오와 메시지가 흥행을 좌우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는 체감은, 달리 말해 작품성이라는 오래된 정답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막 지나온 2024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척도로 볼 때 도대체 ‘작품성’이란 무엇일까. 관계자들은 주로 마니악함, 명확한 타깃층 상정, 젊은 소비자들의 입소문에 부응하는 작품을 다수 거론했다. 한편 “시나리오와 대본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자칫 현실적으로 마케팅이 편하고 리스크가 작다고 느껴지는 작품의 양산은 또 다른 시장의 어려움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따랐다.

심화되는 양극화현상, 중급 영화의 운명은?

“관람객들은 확실한 재미나 의미를 제공하는 영화에만 지갑을 열고, 그렇지 않은 영화는 외면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는 업계의 지배적인 우려는 최근 “일부 메가 히트작과 <서브스턴스> 같은 타깃형 해외 수입작이 관심을 독차지하는” 현상으로 가시화됐다. “관람객들이 압도적인 스케일의 블록버스터나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은 예술영화에 더 집중하는 양극화현상”으로 인해 “200만~500만 관객을 동원하는 허리급 영화의 입지가 더욱 축소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투자 방식의 변화에 있어서도 “극단적 부익부 빈익빈”이 언급됐다. “누가 보더라도 천만인 영화 또는 소수가 열광할 만한 날카로운 저비용 기획”으로 흐르는 가운데, “대규모 콘텐츠 하나 제작할 금액이면 최소 저예산 3개 정도는 제작이 가능하다는 투자상의 궁여지책을 좇다보면 오히려 탄탄한 중급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도 예견된다. “유통 배급 문제(독과점, 티켓 가격)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스케일, 기술, 장르 등)만 살아남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블록버스터든 독립·예술영화든 “검증된 작품(젊은 영상문화 소비의 고관여층이 만들어낸 팬덤, 입소문 또는 수상 이력 등)과 그렇지 못한 작품으로 구분되어 흥행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수익성의 양극화로 여전히 펀딩과 투자 환경이 위축되어 2025~26년은 제작 편수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탈주> <파일럿> <소방관> 등 손익분기를 돌파한 중급 작품들을 지켜보며 “‘도저히 흥행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오히려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기회”라고 말한다. “극장에만 의존하던 1차 윈도 매출의 약 75%를 미국, 일본, 프랑스 유럽 등과 같은 50% 수준으로 만드는 방안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100만 손익분기점의 영화가 많이 제작되어 극장 기준 50만명을 넘으면 손익구간에 들어가는 사업 구조를 만들어야 신진 감독과 작가, 다양한 소재, 신인배우의 기용 등 영화산업의 다양성이 확대될 것”이란 제언도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30억~80억원 구간 영화 10편 지원책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기대”한다는 목소리도 이에 호응했다. 배급 측면에서는 전통적으로 와이드한 배급 기능보다는 “영화 본연의 특별함(소재, 스토리, 컨셉, 완성도 등에서의 차별점)과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의 고안이 더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며, “바이럴 광고(SNS 및 알고리즘을 타고 끊임없이 노출 가능한 광고 집행)의 컬래버레이션”이 더욱 중요해졌다.

체험형 공간으로의 진화, 극장의 생존 전략

극장은 이제 단순한 영화 상영 공간을 넘어 새로운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극장이 단순 영화 상영보다는 다양한 콘텐츠의 특색 있는 상영 기획”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 다수였다. 영화관은 이제 공연 실황이나 뮤지컬영화를 중심으로 “대규모 이벤트와 체험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되며 차별화된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실질적인 계획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극장업의 특징인 공간 구조를 변경하여 “스포츠/체험 공간으로의 변화”도 꾀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두드러지는 전략에는 프리미엄화도 있다. “특정 영화들은 테마형 상영관, 4DX, 돌비, 애트모스 등 극장 전용 경험을 강조하며 더욱 프리미엄화한다”는 전략이 멀티플렉스들의 중론을 이뤘다. “꼭 아이맥스로 봐야 하거나 4DX로 봐야 하는 특별관 영화는 예매가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높고, 일반 상영관은 관객수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는 극장 관계자들의 고충이 이를 뒷받침했다. 전반적으로 “극장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특성을 살린 OTT나 TV에서 경험할 수 없는 콘텐츠”를 제공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가성비보다는 가심비”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의 변화와 맞물려 “OTT 플랫폼이 제공하지 못하는 몰입감, 사회적 경험, 커뮤니티 형성 등이 극장의 강점으로 재발견”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특정 관객층을 겨냥한 작품들이 일정한 성공을 거두는 시장 상황과 함께 극장의 틈새시장 역할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달라진 투자·캐스팅 기준, 글로벌 시장이 이끄는 세대교체

달라진 주연배우들의 면면에서 “20~30대 여성들이 문화소비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해”였다. “해외 판매가 수익성의 핵심 지표가 되면서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의 캐스팅이 중요”해졌고 특히 “아시아권에서의 절대적인 인지도와 두터운 팬층으로 부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배우 차은우, 송강, 변우석 등이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평가다. “여자배우들은 투자와 직접 연결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아이유와 송혜교는 예외적인 사례”로 꼽힌다는 답변도 있었다.

드라마 시장의 트렌드와 달리 영화계는 다소 정체되어 있다. “레거시 투자사들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도 “기존에 검증된 배우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안정성을 이유로 티켓파워가 보장될 거라 기대하는 배우들에 대한 의존도는 꾸준히 높아 보이고 이에 대한 관객들의 피로감은 쌓여만 갈 것”이라고 답답함을 비치는 목소리도 있다. 관계자들은 <1승> <대가족> <아마존 활명수> 등 “송강호, 김윤석, 하정우, 류승룡 등의 배우들 신작이 흥행에 참패”한 올해의 흐름에서 적신호를 읽었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소비자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배우와 시리즈 배우를 묻는 질문에서 영화배우 순위로 이병헌이 최다 언급(15표)됐다. 마동석(8표), 황정민(7표), 조정석(5표), 김고은(4표)이 뒤를 이었다. 영화 주연급 배우로 현재로선 투자를 이끌어올 만한 강력한 이름이 없다는 답변에 5표가 나왔다. 시리즈 배우 순위로는 김수현(11표), 변우석(10표), 아이유(6표), 송강(5표), 차은우(4표) 순으로 이름을 올렸다. 극장의 문턱은 높아졌고 수익성 문제로 드라마 시장의 불황도 거세진 상황. “더이상 배우의 이름값만으로는 흥행할 수 없다”는 산업 관계자들의 고민의 한편에는 다양한 작품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배우들의 갈증도 뚜렷하다. 이번 설문에서 복수의 답변들이 “과거의 영광만큼 산업이 회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진단하는 동시에 “오히려 신선한 시도를 한 작품들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더 열릴 거라는” 희망도 내비쳤다. 2025년은 젊은 배우들에겐 새로운 기회를, 스타들에겐 변신의 가능성을 쥐어주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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