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딱 떠오르는 이름은 아닌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근히 실속 차리는 학생.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그렇다.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가 개별 작품당 수억달러의 제작비를 쏟아부으며 휘황찬란하게 신작을 공개할 때, 소니는 적은 예산으로 양질의 작품을 제작해왔으며 여태껏 극장가에서 큰 실패를 겪은 적도 없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자 존 힐이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했던 글을 상기해 볼 만하다.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첸버그가 <가디언즈>의 흥행 참패로 350명의 직원을 해고한 뒤 2014년부터는 제작비를 1억2천만달러 정도로 낮춰줄 신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라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드림웍스가 허리띠를 조여매는 심정으로 감축할 이 예산은, 소니가 <몬스터 호텔>을 8년 동안 개발하고 제작하는 과정에 소요한 비용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가을 북미 개봉한 <몬스터 호텔>은 제작비(8500만달러)의 4배(3억4600만달러)가 되는 수익을 극장가에서 벌여들였다. 2011년에도 소니는 애니메이션 업계의 조용한 승자였다. 픽사의 <카2>와 블루스카이의 <리오>가 떠들썩하게 개봉했는데도, 이들보다 박스오피스 성적이 좋았던 건 소니의 <개구쟁이 스머프>니까.
지난 2012년에야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소니의 성공 전략은 무엇일까. 엄청나게 고루한 말이지만, “개별 작품에 집중”하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다른 스튜디오들과 달리 소니표 애니메이션에는 그들 특유의 인장이랄 것이 없다.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의 창립작 <부그와 엘리엇>부터 올해 8월1일 개봉한 <개구쟁이 스머프2>까지, 지난 10년간 소니가 제작해온 여덟편의 작품에서 공통적인 개성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CG애니메이션(<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2009)), 클레이애니메이션(<허당 해적단>),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작품(<개구쟁이 스머프>) 등 형식과 스타일, 작품의 정서가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하지만 스튜디오의 특성을 규정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소니의 방식은 업계의 후발주자인 그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줬다. 픽사의 스토리 작가(애시 브래넌)와 디즈니의 수석 애니메이터(크리스 벅)를 영입해 만든 <서핑 업>(2007)은 리얼리티쇼의 형식을 결합한 재기 넘치는 펭귄 영화로 주목받았고, 아드만 스튜디오와 협업으로 완성한 <아더 크리스마스>(2011)는 영국 애니메이션 명가의 솜씨다운 섬세함과 유려함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소니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한 음식재난영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은 주로 TV시리즈를 연출해온 두명의 감독(필 로드, 크리스 밀러)을 기용해 실사영화에 맞먹는 스펙터클을 표현해냈다. 다시 말해 소니에게는 외부의 재능있는 실력자와 그들의 기술력을, 필요하다면 주저없이 흡수하는 장점이 있다. 소니 관계자들은 각종 인터뷰와 워크숍 때마다 “우리에겐 고유의 스타일이 없다. 이야기가 비주얼의 방향을 결정하며, 소니의 철학은 감독들이 이야기와 영화의 스타일을 이끌어내도록 돕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픽사의 존 래세터나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첸버그처럼 전면에 나서 스튜디오 고유의 개성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 감독과 애니메이터들 뒤로 한발 물러나 작품의 만듦새를 손질하는 것이 ‘소니 스타일’ 제작 방식이다. 반드시 자기 색깔이 있어야만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살아남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소니의 차분한 성취는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