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배우들이 너무 날씬해서 문제다
2013-10-08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네온비/캐러멜 원작, 문현성 감독의 <다이어터>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클라우디아 쉬퍼의 전신운동을 따라하다 5분 만에 쓰러져본 사람이라면, 숀 리의 지옥다이어트를 시도하다 진짜 지옥 문턱을 밟아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챙겨볼 것. ‘살의 올가미! 살의 덫! 살의 감옥!’에 갇힌 의지박약의 영혼들이여 네온비/캐러멜 작가의 <다이어터>를 영접하라. 25살 은행원 신수지는 몸무게 93kg의 초고도비만이다. 변기에 앉을 때마다 허벅지가 반쪽이 되는 걸 상상하는 그녀는 야심차게 마련한 고가의 운동기구마저 3일 만에 빨래 건조대로 만들어버리는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다. 그런 그녀가 외모만 훤칠할 뿐 반은 진상이요, 반은 사기꾼인 가짜 트레이너 서찬희의 꾐에 넘어가 인생을 건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다.

문현성 감독은 <다이어터>를 “수지와 찬희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김종욱 찾기>의 이경의 작가와 의기투합해 각색을 시작했다. 각색 포인트는 캐릭터영화로서의 재미와 두 인물 사이의 드라마다. 캐릭터가 끌고 가는 작품인 만큼 캐스팅이 관건일 터다. “‘모배우가 요즘 살이 쪘다던데…’ 하는 소리가 들리면 귀가 쫑긋 선다. 배우들이 다들 너무 날씬해서 문제다. (웃음)” 감독이 원작에서 찾아낸 “의미 있는 단서”는 “여자의 마음”이다. “변기에 앉은 수지의 허벅지 클로즈업 컷에서 많은 여성 독자들이 울컥했다 하더라. 나는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쳤는데. 여자와 남자의 관점 차이를 확 느꼈고 그런 디테일들이 신선했다. 내가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게 될 것 같아 여성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다.”

문현성 감독.

레퍼런스로 삼은 재료들도 여성 캐릭터의 성장을 담은 작품들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봤는데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라면 묘사하지 않았을 것 같은 상황이 꽤 많이 들어 있었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살아 있으니 삼순이에게 애정이 생기고, 응원하고 싶어지더라. 그 마음을 <다이어터>에도 가져오고 싶다.” 지방과 근육들이 살고 있는 수지 몸속의 가상공간인 ‘수지나라’의 이야기도 빠져선 안된다. 지극히 만화적인 이 설정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지만 “TV프로그램이나 수지의 속마음 혹은 꿈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원작에 없던 낭만도 수지에게 선물하고 싶단다. “수지는 살 때문에 못해본 일이 참 많을 것 같다. 날씬해진 뒤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에 가볼 수도 있고, 멋진 남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거기서 또 새로운 사건들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겠나.”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도 원작은 밝고 아기자기한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 영화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살을 빼 예쁜 옷을 입게 된 수지처럼, 감독도 “수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영화 속 수지에게 꼭 맞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주고 싶단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다이어트에 비유해볼 수도 있겠다. “내년 봄엔 워밍업(프리 프로덕션)을 마치고, 본격적인 운동(촬영)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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