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배 대표는 강풀 작가와 인연이 깊다. <26년>의 제작자인 그는 앞서 강풀 원작의 <순정만화> <아파트> <타이밍> 등을 투자배급했다. <당신의 모든 순간>은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이 좀비로 변한 뒤 살아남은 청년이 앞집 여자를 지켜주는 아주 희한한 사랑 이야기다. 종말과 좀비, 지고지순한 멜로와 청춘물을 포괄한 이 독특한 원작은 이윤기 감독의 손을 거쳐, 12월 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강풀 작가의 작품은 충무로 시나리오 공급소라 할 만큼 100% 영화화된다. 그만큼 판권 경쟁도 치열했을 것 같다.
=다행히 지금처럼 판권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다. (웃음) 강풀 작가는 자기 기준이 있다. 인기도와 비례하지 않고 적정선의 기준만큼만 받는 원칙이 있다. 영화화되고 잘되면 더 가져가더라도 말이다.
-영화 제작자로서 보는 강풀 원작의 장점은 무엇인가.
=매 작품 새롭고 기발하고 충격적이면서도 내러티브가 잘 짜여 있다.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시나리오가 갖춰야 할 좋은 요소들이 다 있다. 강풀 작가의 작업방식이 시나리오작가와 비슷하더라. 전체 이야기를 대본 형식으로 다 쓰고, 회별로 그걸 다 쪼개서 연재한다. 배경이 현실성이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당신의 모든 순간>은 어떤 지점이 매력적이었나.
=과거 영화나 문학에서 본 기시감을 느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 너와 나만이 살아남은 상황에서의 사랑. 지금 젊은이들은 경험하기 어려운 사랑이다. 작품 속 좀비와 재난이라는 극한의 설정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다. 클래식한 사랑이 바탕이지만, 지금 한국 젊은이들의 고민과 희망의 정서도 놓치지 않고 있다.
-장르 자체는 명백한 좀비물이다. 대중적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종말과 좀비, 이런 것들은 한국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은 부분이다. 그래서 모험이자 기회라고 판단했다. 어떻게 좀비를 묘사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독특한 영화로 인식될 수 있다고 본다. 흥미롭고 새로운 영화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좀비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윤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도 다소 의외다.
=선입견과 달리 이윤기 감독은 자신있어 한다. <여자, 정혜>의 감독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렇지 이윤기 감독이 원래 이런 장르에 관심이 많더라.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원작에 충실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과 달리 <26년>은 원작과의 괴리감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결국 각색이 관건이다.
=연재 형식의 웹툰을 두 시간 분량의 영화로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26년>은 원작의 절반이 과거, 절반이 현재였는데 그걸 영화적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현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강풀 작가의 원작 중 가장 성공적인 각색이라고 보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원작을 그대로 살리는 게 좋겠다는 해법을 찾은 것 같다. <당신의 모든 순간>도 원작이 워낙 극적인 구조라 그대로 가도 충분히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리얼해야 할 것 같다. 좀비라기보다 어떤 증상이 있는 자들, 이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은 자들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할 거다. 감독과 함께 그들이 가진 속성과 형태, 움직임 등을 깊게 고민하고 있다. 원작은 스펙터클을 다소 절제했다면 영화는 매체가 가진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좀더 장르적인 규모를 보여줄 예정이다.
-웹툰의 영화화가 점차 활발해지는 추세다.
=웹툰은 소재 면에서 엄청난 자유를 가지고 있다. <미생>의 바둑도 영화로 시작했다면 절대 나오지 못했을 마이너한 소재인데 웹툰으로 인해 환기가 된 경우다. 영화 시나리오가 제작비, 기술력, 선입관 때문에 시도하지 않았던 걸 웹툰은 표현해낸다. 한국영화 상승세와 맞물려 원작으로서의 역할도 더 커질 것 같고, 웹툰 시장도 커질 것 같다. 선순환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