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보고]
[현지보고] 정치 스릴러에 뛰어든 액션히어로
2014-03-27
글 : 송경원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세트 촬영 스튜디오 & LA 기자회견

블랙 위도우와 캡틴 아메리카가 차 안에서 애크러배틱 액션을 선보인다. 반 바퀴 뒤집혀 역주행하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 번갈아 운전을 하는 사이 어느새 적들은 나가떨어진다. 비록 그린스크린 앞에서 하는 촬영이지만 여느 액션영화 못지않게 현란하다. 2013년 여름 LA의 세트 촬영장에서 만난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와 블랙 위도우 역의 스칼렛 요한슨은 슈퍼히어로라기보다는 007 첩보요원에 가까운 육탄액션을 연습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 팀원 중에서도 유독 현실적인 영웅이다. 헐크처럼 건물을 때려부수는 괴력도 없고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나는 슈트도 없다. 목적지에 가려면 두발로 뛰어야 하고, 적을 물리치는 건 단단한 두 주먹이 전부이며, 주어진 무기라곤 달랑 방패 하나뿐이다. 하지만 캡틴의 방패는 모든 충격을 흡수하는 특별한 방패다. 제작자 케빈 파이기도 “이번 영화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사용이 될 것”이라 귀띔해줬다. 더불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이하 <윈터 솔져>)는 캡틴이 얼마나 강하고 유연하며 곡예에 능한지를 보여주는 쇼케이스가 될 것”이라며 사실감 넘치는 액션 장면에 주목할 것을 당부했다. 블랙 위도우가 파트너로 참가한 만큼 현란하고 애크러배틱한 액션도 기대된다. 아마도 “캡틴은 매우 똑똑한 사람이다. 그는 쉴드에서 일하면서 각종 결투를 통해 스스로 싸우는 법을 터득해간다”는 시나리오 작가 크리스토퍼 마커스의 말이 좋은 힌트가 될 것이다.

의외의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전작인 <퍼스트 어벤져>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중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였다. <퍼스트 어벤져>는 마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히어로영화지만 동시에 현실감 넘치는 전쟁영화이기도 했다. 이러한 장르간 결합의 연장선에서 이번 <윈터 솔져>는 정치 스릴러 장르와의 이종교배를 시도한다. <퍼스트 어벤져>에 이어 이번에도 각본을 맡은 크리스토퍼 마커스는 여타 히어로영화와 <윈터 솔져>의 변별점을 액션, 음모, 그리고 정치 스릴러로 정리했다. “몇 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로 온 캡틴이 갈등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와의 적응과 신뢰다. 그 지점에서 음모영화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때문에 그는 이번 영화가 전작에 비해 다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앤서니 루소 감독은 “최근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한 강력한 사건들을 끌어왔다. 세상에 대한 고민은 곧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라고 언급하며 이번 영화가 “그 어떤 마블 영화보다 어둡고 불쾌할 정도로 현실적”이 될 것이라 말했다. 슈퍼히어로 중에서도 인간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캡틴 아메리카이기에 실현 가능한 영리한 선택이다. <어벤져스>가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영웅들간의 능력의 격차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관건이었지만 마블은 이러한 우려를 오히려 각 영웅들의 개성으로 승화시켰다. 어벤져스의 세계관에서 리얼리티를 담당하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의 속편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긴 시간 잠에서 깨어난 캡틴 아메리카가 현대사회에 적응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과거의 인물이 현대에 적응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제작자 케빈 파이기는 “캡틴은 뛰어난 두뇌로 단번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다. 예로 들면 영화에서 그는 아이폰 사용법을 금방 익힌다. 문제는 문화적인 충격이다. 드라마적으로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비록 초인적으로 강화된 신체가 능력의 전부인 캡틴이지만 그의 진면목은 다른 곳에 있다.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 팀원 중 가장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이며 이것이야말로 캡틴의 진정한 슈퍼파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캡틴’이라는 별명처럼 어벤져스팀의 핵심이자 팀의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가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윈터 솔져>에서는 이러한 캡틴조차 버티기 힘든 시련이 연이어 등장한다. 되돌아온 강력한 빌런 ‘윈터 솔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퍼스트 어벤져>에서 캡틴의 동료로 함께 활약했던 친구 버키가 어느 날 갑자기 적이 되어 나타나자 캡틴은 그가 왜 변했는지를 알기 위해 음모 속으로 뛰어든다. 코믹북의 수많은 악당 중에서 속편의 악당으로 윈터 솔져가 선택된 이유도 그가 캡틴을 정신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최고의 악당이기 때문이다. 또한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라는 시간을 거슬러온 두 군인의 존재가 영화를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치 스릴러에 가까운 분위기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고리가 된다.

강력한 악당이 등장한 만큼 새로운 조력자도 추가됐다. <어벤져스> 때부터 익숙한 블랙위도우 이외에 코믹스 팬들에게 사랑받아온 팔콘이 캡틴을 도울 예정이다. 팔콘은 플라잉 슈트를 활용해 하늘을 나는 영웅으로, 특수장비를 활용한 그의 현란한 비행이 현실적인 액션과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사실 캡틴 아메리카는 단순한 캐릭터다.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한, 그야말로 순수한 정의의 히어로. ‘나쁜 히어로’가 대세인 요즘엔 심심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캡틴은 기발하고 젊은 감각의 가벼운 영웅이 유독 많은 마블 세계관에서 묵직한 무게감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이언맨 없는 어벤져스팀은 유머가 부족할 테고, 토르가 없는 어벤져스팀은 화려한 맛이 부족할 테지만 아마도 캡틴 아메리카가 없다면 어벤져스가 한팀으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윈터 솔져>에서는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져스의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확인시켜줄 영화다. 마커스와 함께 공동으로 각본을 맡은 스티븐 맥피리의 말처럼 “흔들림 없이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가 이번에는 어떤 매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끌어들일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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