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가볍고 경쾌하게 멜로드라마를
2014-07-08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장수상회>(가제) 강제규 감독

제작 빅픽쳐, CJ엔터테인먼트 / 감독 강제규 / 출연 박근형, 윤여정, 조진웅, 한지민 / 배급 CJ엔터테인먼트 / 진행 8월 예정 / 개봉 2015년

“어디까지 말씀을 드려야 하나….” 강제규 감독은 말을 아꼈다. 아직 ‘ing’인 영화이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생각이 좀더 명확해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은행나무 침대>부터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확장해온 강제규 감독이 불현듯 노년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 사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시나리오를 읽고 울컥했다. 이야기가 참 따뜻하고 푸근한 구석이 있더라.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다. 예전보다 더 편해졌다고 해야 할까. 이전에도 물론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며 준비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의 쾌감이 있었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부담감 같은 것도 있었거든. 감독이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전작들에서는 훨씬 무거웠고, 그렇다보니 준비 단계나 촬영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컸다. 이번 영화는 더 경쾌하고 가벼운 옷을 입은 느낌이라 작업하면서 재미있다.”

<마지막 첫사랑>으로 알려졌으나 <장수상회>로 가제를 변경한 강제규 감독의 신작은 블록버스터영화의 감독으로서 그동안 그가 감내해야 했던 책임과 역할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작업 중인 영화다. “한국영화가 계속 성장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어떤 역할론 같은 것들을 나 스스로 안고 있었던 지점이 있었다. 지금은 누군가가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아도 산업이 잘 성장해나가는 과정에 이르른 것 같고.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충실히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월 홍콩국제영화제의 요청으로 제작한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가늠해본 그는 <장수상회>를 통해 오랫동안 “중요한 관심의 축”이었던 멜로 장르로 돌아왔다. 서울 변두리의 재개발 지역, 장수상회라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노년의 직원 성칠이 매력적이나 미스터리한 여자 금님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음모와 소동에 휘말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20대, 30대도 아닌 무려 노년의 사랑이다. 강제규 감독을 비롯해 대다수의 관객이 경험해보지 못한 나이의 감정을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게 관건일 것이다. 강제규 감독은 <장수상회> 속 두 노인의 사랑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노년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꽃보다 할배>를 보며 왜 우리가 그분들의 모습에서 재미와 새로움을 느끼고 박수를 보내는지 생각해봤다. 그건 그분들이 실제로 그렇게 사시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미지 속에 있던 노인들의 모습에는 어떤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그분들을 주인공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했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들이 붕괴되고 파괴되면서 오는 재미들이 컸거든. 이 영화에도 그런 점들을 충분히 반영할 생각이다.”

배우 박근형이 성칠을 연기한다.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겉보기에 “무뚝뚝하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의외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잠깐, ‘마트직원’이라고? 박근형이 세련되고 당당한 풍채로 ‘회장님’ 이미지를 구축해온 배우라는 점을 고려하면 성칠은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캐릭터다. “그게 아무래도 더 재미있지 않나? 어떤 배우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고정적인 편견이나 생각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재해석되고 파괴되며 새로운 유형의 인물로 재탄생되었을 때, 맛있잖나. 선생님을 뵙고 이 인물을 통해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선생님도 무척 좋아하셨다. 박근형이라는 배우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 그런 것들이 이 영화에선 많이 없어질 거다. 의상부터 외모, 연기의 패턴을 비롯한 전반적인 설정들에 많은 변화를 줄 거다.”

반면 윤여정의 캐스팅은 금님이란 인물을 상상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다. “작고 여성스럽고 그러나 어쩐지 다른 사람을 자기의 의지대로 홀릴 것 같은, ‘여우’의 느낌”을 가진 인물이 금님이다. 노년의 사랑도 순수하게만 여길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점, 그런 양면성에서 비롯될 재미들이 모두 금님이라는 인물을 통해 구현될 예정이라고 강제규 감독은 말했다. “단색의 느낌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의 ‘콜라보레이션’을 보는 느낌이 들 거다. 윤여정 선생님이 적역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장수상회>가 성칠과 금님의 로맨스만을 조명하는 것은 아니다. 성칠이 일하는 마트를 중심으로, 그가 몸담고 있는 공간과 주변 사람들의 사연들에서 비롯되는 감정과 에너지 또한 영화의 중요한 요소가 될 예정이다. 조진웅이 마을의 재개발을 추진하는 위원장으로, 한지민이 성칠과 금님의 주변 인물로 캐스팅되었으나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서사적 미스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자세한 역할에 대해 공개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고 강 감독은 말한다. 다만 분명한 건 재개발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가 “어둡고 고단함이 묻어나는” 작품은 아닐 거라는 점이다. “재개발 지역 주민들이 겪는 삶의 고통, 그리고 개발업자의 횡포에 굉장히 현실감 있게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장수상회>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작은 행복과 기쁨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희망과 행복이라는 가치를 조금은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지점들이 이 작품을 좀더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전반적인 미술이나 촬영의 톤도 이 작품의 우화적인 정서와 조화를 이루도록 준비하고 있다.”

<장수상회>는 강제규 감독의 장편을 통틀어 ‘액션 장면’을 장전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 될 예정이다. 영화의 룩을 풍성하게 하고 서사를 드라마틱하게 고양할 수 있는 가장 수월한 장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건 스토리텔링에 승부수를 걸겠다는 강제규 감독의 다짐처럼 보인다. 영화사 빅픽쳐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던, D-58이라는 숫자가 결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장수상회>는 8월20일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장수상회>(가제)는 어떤 영화

괴팍하고 까칠한 성격을 가진 ‘할배’ 성칠(박근형)은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재개발추진위원장 장수(조진웅)를 필두로 한 마을 사람들은 유일하게 재개발을 반대하는 성칠을 설득하기 위해 미인계를 계획한다. 어느 날, 매력적인 여성 금님(윤여정)이 홀연히 성칠 앞에 나타난다. 성칠은 마을 사람들의 계획대로 금님에게 홀딱 빠져든다.

영감은 여기서

“노년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들을 레퍼런스로 찾아보고 있는데, 우리 영화와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은 없는 것 같다. 그보다도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일본 작가 시바타 도요가 쓴 <약해지지 마>라는 책을 참고하고 있다. 작가가 90대에 쓴 글을 모은 작품인데, 성칠과 금님 세대 분들의 심성이나 감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자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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