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사도세자를 ‘왜’라는 질문으로 재구성한다
2014-07-08
글 : 이주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사도> 이준익 감독

제작 타이거픽쳐스 / 감독 이준익 / 출연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 배급 쇼박스 / 진행 7월8일 크랭크인 예정 / 개봉 2015년

“와~ 송강호가 영조 의상을 입고 분장까지 했는데, 전에 없던 왕이 탄생한 느낌? 어우~ 전혀 다른 왕을 봤어. 아~ 말로는 설명이 안 돼. 나중에 영화로 확인해봐.” 영조로 변신한 송강호 얘기를 하며 이준익 감독은 문장 사이사이마다 감탄사를 집어넣었다. 이준익 감독이 <소원> 이후 차기작으로 택한 <사도>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는 사도세자의 비극을 그린다.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영화 찍었는데 영화 못 나오면 어떡하나” 싶어 “기대와 염려가 같이 상승하고 있다”는 이준익 감독을 크랭크인을 2주 앞둔 시점에 만났다.

-시나리오는 여럿이서 함께 썼다고. <사도>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과정이 궁금하다.
=조철현, 이송원, 오승현. (전문) 작가는 하나도 없다. 제작자, 기획자, PD가 썼고 나는 막판에 수정 조금했다. 몇년 전부터 사도 얘기를 하자는 말은 있었는데, 지난해 말에 조철현 작가한테 ‘그분’이 왔고 조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1962)을 봤는데, 그 구조를 모델 삼아 사도세자 이야기를 구현했다. 역사에 기록돼 있는 사실이 90% 반영됐고, 나머지 10%는 해석의 확대로 만들어진 시나리오다.

-이준익의 <사도>라면 왠지 영화적 해석의 비율이 더 클 것 같은데 의외다.
=인물, 연표, 사건의 정황은 당연히 고증에 입각했다. 기록에 충실하되 도저히 고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물들의 관계, 거기서 빚어지는 심리와 감정을 담았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사도세자 관련 서적도 많이 읽었을 텐데, 감독님에게 사도세자는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
=일단 나는 책을 안 읽었다. 사전 조사에 불성실한 감독이다. 책은 작가들이 다 읽었다. 어쨌든 사도는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굶어죽었다. 이 사실 하나만 놓고 보면 그 어떤 그리스 비극보다 비극적이다. 그런데 사도의 28년 인생 전체가 비극이냐. 그럴 수가 없지. 그럼 사도의 삶이 희극이냐. 당연히 그것도 아니지. ‘도대체 왜 사도는 뒤주에 갇히게 되었는가!’ 그 와이(why)에 대해 밀도 있게 접근한 영화가 있었던가. 사람들은 대개 영조의 아들, 정조의 아버지로 사도세자를 대상화한다. <사도>에선 사도세자가 주체화 된다. 그리고 ‘왜 뒤주에 갇혔는가’의 인과관계를 따지려면 영조와의 관계를 파고들어야 한다. 사도의 28년 삶이 있고, 그 이전에 영조의 40여년 삶이 있다. 사도의 죽음을 통해 정조라는 조선 후기 걸출한 군주가 나왔다. 헤겔의 변증법처럼 정반합을 적용하면 조선의 최장수 왕 영조와 그에 반하는 사도의 존재, 그 결과가 정조라는 존재를 만든 셈이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사도의 이야기뿐 아니라 영조에서 사도에서 정조까지, 56년의 일을 2시간 안에 운반하고 있다.

-56년이란 시간을 모두 담는 게 중요했던 이유는 뭔가.
=한 인물이 온전하게 그 개인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사도를 잉태한 영조의 운명이 있고, 영조가 아버지일 수밖에 없는 사도의 숙명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 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것으로 이 비극은 끝났을까. 그 반대일 수도 있었는데. 그게 숙명과 운명의 차이다. ‘숙명’의 ‘숙’ 자가 한자로 ‘잘 숙’(宿)이다. 자면서 받은 생명인 거지.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고,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다. 앞에서 화살이 날아오면 피해도 되고 막아도 되지만 숙명은 거역이 안 된다. 영조가 사도를 죽인 것은 아버지의 선택, 운명이었다. 그리고 영조의 선택에 명분을 제공한 것이 사도의 아들 정조다. 정조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사도를 죽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도를 온전히 설명하려면 영조와 정조를 함께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극적이기만 한 작품은 아닐 거라고 했다. 희극과 비극을 어떻게 조화시킬 건가.
=사도가 처음 영화에 등장할 때의 나이는 4살이다. 4살 사도를 바라보는 영조의 마음은 어땠을까. 첫아들 효장세자가 일찍 죽었다. 마흔이 넘어 얻은 둘째아들에게 얼마나 기대감이 컸겠나. 영조는 2살 때 사도를 세자에 책봉하고, 사도는 그때부터 동궁에서 혼자 잠을 잔다. 두살부터 세자 교육을 받았으니 정상적인 성장이 가능했겠냐고. 영조의 기대감이 어린 사도에게 불행의 씨앗을 심은 거라고 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읽으라는 책은 안 읽고 잡서만 읽고 창칼이나 좋아하니 기대를 저버린 아들에 대한 분노가 일겠지. 분노의 끝은 뭔가. 증오다. 증오의 끝은? 없애는 거지. 영조와 사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과 분노와 증오의 끝으로 이어진 과정이었다고 본다. 심지어 영조는 83살에 죽었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40살 초/중반인데. 영조와 사도의 관계는 세대간의 갈등으로도 볼 수 있다. 세자 생활만 26년이었으니까.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고, 부엌은 모녀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하잖나. 아버지가 죽든 아들이 죽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데, 결국은 아들이 죽은 얘기인 거지.

-송강호가 영조를, 유아인이 사도세자를, 문근영이 혜경궁 홍씨를 연기한다. 초호화 캐스팅이다.
=원래 스타 캐스팅을 추구하는 감독도 아니고 호화 캐스팅은 꿈꿔본 적도 없는데, 타이밍이 잘 맞았다. 그동안 송강호란 배우와 같이 작업하고 싶어도 당최 스케줄이 안 맞아 함께 못했다. 난 무조건 스케줄 우선이다.

-배우들과는 다들 첫 작업이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얘기는 많이 나눴나.
=얘기 별로 안 했다. 송강호하고 무슨 연기 얘길 하겠나. 대한민국 연기 대통령인데. 어제까지 세번 만났나. 만나도 연기 얘기 안 한다. 유아인도 두번, 문근영도 두번 만났다. 유아인은 지금 <베테랑> 찍고 있는데, 다들 딴 데서 열심히 연기하고 있는데 내가 왜 연기 걱정하나.

-촬영감독, 미술감독과 영화의 비주얼에 대해 합의한 지점은.
=미술은 <황산벌> 때부터 사극을 쭉 같이 해온 강승용 미술감독이고, 촬영은 <소원> 때 함께한 김태경 촬영감독이다. 일단 미술도 의상도 최대한 ‘하지 말자’ 주의다. 우린 조금씩 모자라게 하려고. 과도한 소품 배치, 거창한 세트, 강한 색감의 의상은 자제할 거다. 영조라는 인물 자체가 검소한 생활을 실천한 사람이다. 심지어 여자들에게 가채도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 우리도 당연히 가채를 안 써야지. 촬영도 인물들의 심리와 내면을 끝까지 따라가는 데 중점을 둘 거다. 우리는 절제에 욕심내기로 했다.

<사도>는 어떤 영화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죽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도세자의 현재와 이러한 비극이 잉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영조, 사도세자, 정조 3대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영감은 여기서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의 시나리오 구조에 영감받았다. 그 구조란, 현재 시점의 결과와 그 이전의 과정을 병렬 형태로 보여주는 거다. 도치법과 연역법의 병렬이다. 3대에 걸친 이야기를 2시간 안에 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구조였다. 연역법으로 신을 구성했다면 영화화하기 불가능했을 거다. 영화의 시작이 뒤주에 갇힌 현재의 사도 모습이다. 기록에 의하면 뒤주에 갇힌 날이 총 8일인데, 할리우드 상업영화 시나리오 구조의 기본인 3장 8시퀀스 구조에 적합한 날짜이기도 하다. 첫쨋날, 둘쨋날, 날짜별 시퀀스 안에 짧은 현재와 긴 과거의 이야기가 병렬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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