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제는 사라진 조선 호랑이를 위하여
2014-07-08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대호> 박훈정 감독

제작 사나이픽쳐스 / 감독 박훈정 / 출연 미정 / 배급 NEW / 진행 캐스팅 중 / 개봉 2015년

사나이픽쳐스 사무실 앞. 출입문 옆에 A4 용지로 작성한 벽보가 붙어 있다. “영화 <대호> 배우 프로필은 이곳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마침표 다음엔 붉은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고, 화살표를 따라가면 프로필 보관함이 놓여 있다. 이빨을 드러내고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는 ‘종이’ 호랑이가 붙어 있는 프로필 보관함. “호랑이의 입을 벌리고 프로필을 살짝 넣어주세요”라는 문구까지, <대호> 제작진의 센스가 엿보인다.

박훈정 감독이 누가 봐도 호랑이가 주인공인 영화 <대호>를 연출한다. <혈투> <신세계>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연출작. <신세계>가 흥행이 되면 속편을 만들 수도 있다고 박훈정 감독은 얘기했었다. 아직도 유효한 얘기지만 “속편을 연달아 만들겠다는 얘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신세계> 속편은 잠시 미뤄두고 호랑이를 불러냈다. <대호>는 박훈정 감독이 아직 “무명”이던 시절인 2009년에 써둔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완성하자마자 영화사에 돌렸는데 바로 영화사와 계약이 됐다. 빨리 팔린 시나리오였다.” 그러고 5년이 흘러, “직접 연출할 마음은 전혀 없었던” <대호>가 박훈정 감독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만날 운명이라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 법이다.

“영화가 단순하다. 그리고 얘기하면 다 스포일러다. ‘호랑이 나오는 영화 만든다’ 정도만 쓰면 되지 않을까? 근데 이 내용으로 어떻게 두 페이지를 채우지? (웃음)” 캐스팅도 마무리짓기 전에 인터뷰하기가 쑥스러웠던지, 인터뷰가 끝날 즈음 박훈정 감독이 인터뷰의 효용에 대해 걱정했다. 돌아와 인터뷰를 정리해보니 정말 <대호>는 “호랑이와 호랑이를 사냥하는 사냥꾼의 이야기”로 한줄 요약 가능한 영화였다. <대호>는 “사이즈가 큰 영화”다. 호랑이의 몸집만 큰 게 아니라 제작비도 상당히 들어가는 상업영화다. 그리고 단순하지만 힘있는 이야기는 상업영화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시나리오가 일찌감치 영화사에 팔렸던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박훈정 감독의 요약대로 <대호>는 “호랑이와 호랑이 사냥꾼의 이야기”, “자연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에 갈등 요소로 “엄혹한 시대”가 끼어든다.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던 자연과 사람이 시대적 상황에 의해 변화를 강요받는 이야기다. 그 시대란 일제강점기이고 그 시대를 사람과 자연이 견뎌내는 이야기다.” <혈투>와 <신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박훈정 감독은 삼각구도의 대결을 즐긴다. <대호>에선 그 대결의 구도가 좀더 복잡해질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호랑이와 호랑이를 잡으려는 사냥꾼들의 대립이 가장 크다. 사냥꾼들 가운데에서도 맹목적으로 호랑이를 잡으려는 사람과 천만덕처럼 호랑이를 잡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거기에 일본군이 가세한다. 산은 산대로, 산군으로 군림하는 호랑이와 호랑이가 사라진 뒤 산주(山主)가 된 늑대들의 갈등이 존재한다.”

주인공은 천만덕과 호랑이. 천만덕은 젊은 시절 명포수로 이름깨나 떨친 늙은 사냥꾼이다. 현재는 은퇴해 총을 내려놓고, 늘그막에 얻은 늦둥이 아들을 애지중지 키우며 산막에서 산다. “사냥꾼들끼리 지키는 기본 룰이란 게 있다. 잡아야 할 것만 잡고 그 외에 살상은 하지 않는다는 규칙인데 천만덕은 그러한 규칙을 꼭 지키는 사람이다. 산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사람. 그런데 시대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사람뿐 아니라 자연마저 철저히 괴롭혔다. 땅을 헤집고 산을 파헤쳤다. “산이 됐건 자연이 됐건 욕망의 대상이 돼버린 시대”였다. 그때 조선 호랑이 역시 멸종됐다. 일본인들은 호피 중에서도 조선 호랑이 호피를 최고로 쳤고, 조선호랑이 호피는 당시 일본 고위 관료들의 최고 전리품 중 하나였다. 심지어 일본인들은 호랑이 고기까지 먹었다고 한다. 조선인들이 영물로 여기는, 산군(山君)으로 모시는 호랑이를 먹음으로써 호랑이 역시 한낱 짐승에 불과하다는 멸시적 태도를 취했던 거다. 박훈정 감독은 특정한 시공간에 매료돼서가 아니라 “조선 호랑이가 마지막으로 잡힌 게 1920년대였고, 조선 호랑이 이야기를 하려면 그 시대로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또다시) 시대극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그 시대적 배경은 <대호>의 중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와 사냥꾼 그리고 일본군이 캐릭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대호>에서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지점은 호랑이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가, 일 것이다. 박훈정 감독은 그 부분에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시나리오를 처음 썼던 2009년보다 기술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나. 해외 사례에서도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들 중) 좋은 사례가 없지 않았으니까. 기술적 구현이 관건인데, 잘될 것 같다.” 아직 함께 작업할 CG업체는 확정되지 않았다. 몸길이 3~4m, 몸무게 400kg쯤 나간다는 ‘대호’는 그 자체로 압도적 존재감을 발하지만, 박훈정 감독은 조선 호랑이의 이미지보다 조선 호랑이의 특성에 더 매료됐다고 한다. 조선 호랑이는 호랑이 중에서도 자존심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호랑이이며, 맹수 중에서도 특히나 기질이 사나운 동물이라고. “조선 호랑이를 직접 봤어야 떠오르지. 우리 애들도 어떻게 생긴 호랑이인지 다들 궁금해한다. (웃음) 어쨌든 현재는 조선 호랑이가 멸종된 상태니까 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더 있겠다고 생각했고, 기질과 특성을 잘 살리면 좋은 영화적 캐릭터가 될 것 같았다.”

장르는 액션이 가미된 휴먼 드라마. “액션이 좀 있긴 한데, 액션 드라마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다. 일단 무조건 재밌게 만들려고 한다.” 호랑이의 급소를 정조준해 한방에 호랑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포수들, 반대로 정조준에 실패해 호랑이의 먹잇감이 되는 포수들의 모습도 흥미롭게 구현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 <대호>는 배우 캐스팅을 진행 중이며, 최민식이 사냥꾼 천만덕 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캐스팅, 최종 각색 작업 등이 마무리되면 10월 혹은 11월경 크랭크인해 겨울 내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호랑이와의 겨울나기 준비로 여념이 없는 박훈정 감독이 <대호>로 홈런을 칠 수 있을지는 내년 이후에나 확인 가능할 것 같다.

<대호>는 어떤 영화

일제강점기, 젊은 시절 명포수로 이름 떨쳤으나 이제는 사냥에서 손을 뗀 천만덕은 늦둥이 아들을 키우며 산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흉흉한 시대는 마구잡이 호랑이 사냥을 부추기고 천만덕은 시대와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다.

영감은 여기서

“러시아 작가인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이란 책이 있다. 시놉시스를 쓰던 당시에 야후 사이트를 서핑하다가 어느 블로그를 통해서 그 책의 내용을 접했다. 조선 호랑이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들이 있었고, 일제시대 때 조선 호랑이가 멸종됐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조선 호랑이 그리고 호랑이 잡는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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