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든지 올 수 있어. 올 수 없다고 장담 못해요. 미리미리 방지해줬으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요….”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절규한다. 눈물을 흘리고,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다. 이건 2014년의 풍경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외침이었다. <논픽션 다이어리>에 삽입된 이 장면이 올해 재현되었다.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올해 4월16일 진도 앞바다의 그 사고 현장에서, 유가족이 전 국민을 향해 외치던 절규는 20년 전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외침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앞으로 얼마든지 발생 가능하다’고 누군가가 말했던 불행은 실현되었다. 2014년의 대한민국 사회는 1994년에 예견한 불행을 막는 데 실패했다.
21세기 비극의 뿌리
정윤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는 최근 몇년간 1990년대를 소환한 뭇 영화와 드라마가 미처 다루지 못한 90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하는 영화다. 전국이 서태지와 아이들과 농구대잔치에 열광하고, 삐삐와 386 컴퓨터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추억을 쌓아가던 시절, 누군가는 가진 자들을 증오해 연쇄살인을 저질렀고(1994년 9월 지존파 사건) 누군가는 무너진 백화점에 파묻혀 실종되거나 죽어갔으며(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또 다른 누군가는 어느 날 아침 갑작스럽게 붕괴된 다리 밑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논픽션 다이어리>가 흥미로운 건,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을 이 비극적인 사건을 ’국가라는 사회적 시스템의 실패’라는 결과에서 비롯한 연속적인 불행의 산물로 본다는 점이다. 88올림픽 이후의 풍요로운 삶과 1997년의 IMF 경제위기가 공존했던, 90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양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정윤석 감독은 21세기 한국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수많은 비극과 문제의 뿌리를 90년대에서 찾는다. 당장의 사고 수습에 급급해 덮고 넘어간 근본적인 문제들이 결국 현재의 비극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일일이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현재를 반영할 수 있는 거울을 만들어 사람들의 손에 쥐어주고 싶었다. <논픽션 다이어리>에서 그 거울은, 90년대의 한국 사회다.”
이 영화가 가장 주목하는 사건은 1994년 한국 사회를 경악게 했던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이다.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다섯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지존파 일당 여섯명은 아지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탈출한 한 여성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되었다. 전라남도의 한 시골마을, 범죄 사실을 들키는 게 싫어 파스텔톤으로 칠한 화사한 집에서 살아가던 여섯명의 청년들은 머리에 ‘지존’이라고 쓴 띠를 두르고 범죄 모의를 했다. 그들의 범행 동기는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였다. 브로커에게 받은 백화점 고객 명단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을 찾아가 납치하고 감금하고 살해한 뒤, 자신들의 집 지하에 만든 소각장에서 시체를 잔인하게 훼손해 불태운 이들을 당시 언론은 “악마의 대리자들”이라고 불렀다.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혔을 뿐이에요. 꿈을 못 이뤄서요.” 언론과 전 국민을 상대로 도발적인 말을 내뱉는 이 살인범들을 긍정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논픽션 다이어리>가 인상적인 점은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을 둘러싼 자극적인 정보와 평가에 휘둘리지 않은 채, 사건과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지존파로 대변되는 ‘악’의 근원에 대해 탐구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목도할 수 있는 건 1994년 9월 검거된 시점부터 1995년 11월 사형당하기 직전까지 지존파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형사와 교도관, 수녀와 목사들의 증언이다.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지존파 단원들의 모습은 언론에 보도된 끔찍한 연쇄살인마의 초상과 다소 거리가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지존파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살던 집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대화술과 성공술>이라는 책이 보인다. 그들도 자기계발서를 읽고 논두렁에 앉아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를 즐겨듣던,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의 사람들이었던 거다. ‘악’이라는 것이 결국 개인의 산물인지, 시스템이 악을 키우는 것인지를 분명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존파의 경우 이제까지 매체와 언론이 다루지 않은 그들의 일상적인 부분에 주목했다”고 정윤석 감독은 말한다.
개인의 악행으로 치부되던 사건을 사회의 구조적인 악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논픽션 다이어리>는 90년대 중반 한국 사회가 경험한 일련의 대형사고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을 소환한다. 이 영화엔 당대의 사고를 두루 경험한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지존파 일당을 검거하고 우연히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수습에도 관여한 전 서초경찰서 강력반 반장 고병천이다. 연쇄살인범들이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들과 가까운 사이였으나, 결국 사형제는 존립해야 한다고 믿는 고 반장의 인간적인 고뇌는 이 영화의 결을 더욱 복합적으로 만드는 매력적인 지점이다. 더불어 “눈앞에서 사람을 찌르거나 돌로 쳐서 죽이는 전통적 의미의 살인은 쉽게 공분을 사지만,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관리 태만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책임은 결과론적으로 더 크다”는 그의 말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동기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죽음이 있다면, 그 죽음 또한 살인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논픽션 다이어리>는 연쇄살인의 개념을 국가적 재난과 대형사고에 이르기까지 확장하는 작품이란 점에 그 의의가 있다.
2014년, 미래 비극의 거울이 될지도
편치 않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논픽션 다이어리>의 수많은 사건사고 사이로, 보는 이들에게 유일하게 웃음을 안기는 부분은 국가적 재난에 대처하는 전문가들의 태도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90년대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하는 말들은 눈뜨고는 볼 수 없을 블랙코미디다. “국가권력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는, 무기를 사용해서라도 권력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중략) 미국은 데모하면 총으로 쏘잖아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그늘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시대의 전문가들이 사회의 문제를 진단한답시고 내리는 처방의 수준을, <논픽션 다이어리>는 수많은 90년대 자료화면을 통해 에둘러 보여준다. 그들의 사회적 직위를 보여주는 자막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장면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개선을 이끌어야 할 리더십의 부재를 암시하는 듯하다.
<논픽션 다이어리>를 보며 유독 상기되던 구절이 있다. 저서 <공범들의 도시>를 통해 프로파일러 표창원이 한 말이다. “권력형 비리가 많아서 사회 내 불신과 분노가 커진다, 빈부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 취업률이 낮아진다,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이 증가한다, 이런 것들을 연쇄살인의 사전적 인덱스로 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별도의 괴물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점이 개인적 일상의 어떤 지점과 맞물려 사회악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존파,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그리고 2014년의 세월호와 고양버스터미널과 임 병장. 시간과 장소와 정황은 다르지만 20년의 세월을 두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수많은 죽음은 어쩌면 한국 사회라는 이름의 연쇄살인마가 저지른 살인의 기록이다. ‘그놈’을 잡을 수 없다면, 2014년이 언젠가 미래의 비극을 비추는 거울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