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긴 사건들 뒤에는 언제나 이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시선이 있다. 한국 최초프로파일러 표창원 박사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가 발생할 때마다 범죄자의 심리를 파고드는 예리한 분석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그는 지난 2012년 경찰대학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더 바빠졌다. 대중의 감시하는 눈, 대변하는 입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일 뿐만 아니라 오는 8월부터는 제1회 ‘CSI/Profiling 체험전’을 개최하는 등 프로파일링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대중이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 생기면 찾게 되는 한국의 셜록 홈스 표창원 박사에게 한국형 연쇄살인의 특징과 사회적 의미, 그리고 2000년 이후 영화가 연쇄살인을 다뤄온 방식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에 대해 물었다.
-연쇄살인이라는 말은 자주 쓰지만 정확히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 같진 않다. 연쇄살인의 정의가 무엇인가.
=일단 공식적인 정의라는 건 있을 수 없다. FBI 등 저마다 사용하는 정의가 달라 일률적으로 적용하긴 어렵다. 나는 개인적으로 동일범이 두건 이상의 살인을 저지르고 그 범죄 사이에 심리적 냉각기가 있는 살인을 연쇄살인이라고 본다. FBI는 동일범이 세건 이상 살인을 저지른 경우라고 보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횟수나 시간보다 심리적 냉각기란 개념이다. 살인에 이르는 동기 자체 그리고 심리적인 흥분 상태가 동일하면 사건 사이에 시간적으로 얼마나 간격이 있건 연속살인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대개의 살인사건에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절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살인을 행하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데, 연쇄살인에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연쇄살인에는 뚜렷한 동기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게 단순화할 문제는 아니다. 연쇄살인이라 하더라도 나름대로 동기가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부자들을 타깃으로 삼았던 지존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아니지만 범죄자 자신들로서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다. 다만 어떤 동기에서건 일반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엔 두려움과 불안감, 죄책감 등이 들어 추가 살인을 하기 힘든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연쇄살임범은 다르다. 어떤 이유에서건 살인을 저지른 뒤 공포와 불안감과 후회와 자책감 등이 밀려들어야 할 그 시기, 흥분이 가라앉고 쉬는 냉각기를 거치고 다시 살인을 저지른다는 게 중요하다.
-2005년 쓴 <한국의 연쇄살인>이란 책에서는 연쇄살인범을 사회적 난치병이라고 표현했는데.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 생명체라고 본다면 감기를 앓고 몸살도 앓을 수 있다. 무질서나 범죄, 예를 들면 살인, 강도, 성폭행, 사기, 절도 같은 것들은 쉬면 낫고 약 먹어서 다스릴 수 있는 증상이다. 노력을 게을리해서 그렇지 처방책에 따라 치료가 가능하고 예방책도 있다. 그런데 원인을 알 수 없어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병도 있지 않나. 그래서 심각한 거다. 연쇄살인은 대상이 누구일지 모른다. 대부분의 범죄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연쇄살인에는 그게 없다. 피해자로서는 아무 이유 없이 당하는 거고, 대처법이나 해결책이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난치병이라는 거다.
-연쇄살인사건은 시대별, 지역별로 구분되는 징후를 보이는 것 같다. 한국형 연쇄살인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범죄란 생활 범주적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개별 사건이 모두 조금씩 다르고 분류 목적과 필요에 따라 규정하기 나름이다. 한국형 연쇄살인을 구분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확연히 도드라지는 특징을 추려보자면 몇 가지 언급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일단 한국형 연쇄살인은 가족형 국가 내 소외된 한 개인이 자신의 불행의 원인, 열등감을 타인에게 돌리고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렇게 못사는데 남들은 왜 저렇게 잘살아’ 하는 비교에서 비롯된 분노와 좌절감을 다른 모든 사람에게 돌리고 그들을 공격한다. 1990년대 지존파가 대표적인 경우다. 자기와 비교되는,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복수. 반발심리, 사회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 그런데 2004년 유영철 사건부터는 좀 익명화, 개별화되었다.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대상화하고 사냥하듯이 그들을 선별적으로 공격한다. 범죄 행동 하나하나가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이뤄지면서 그 안에서 쾌락을 맛보는 서구식 연쇄살인의 경향은 유영철 때부터 나타났다.
-1990년대의 지존파와 2000년대의 유영철로 대변되는 연쇄살인의 특징에 변화가 있는 건가.
=지존파가 대변하는 것은 반항이다. 사회를 적으로 돌리고 자신이 겪는 가난 등을 부자들 탓, 사회 탓으로 돌렸다. 그 시대 서민의 상당수가 빈부격차에 대한 반감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위 위정자, 가진 자들, 수억원대 뇌물을 받은 사건에 대한 분노가 극심하던 시절인데, 지존파는 그것을 대단히 극단적, 범죄적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영철 사건은 유사성이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도 좀 다르다. 부자들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고는 있지만 실제 범행 형태를 보면 개인적인 쾌락 추구라는 면이 더 강하다.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행동에서도 대단히 병적이고 극단적인, 악마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보인다. 행동양식도 훨씬 개인화되어 있다. 지존파의 살인이 거의 삶을 포기한 상태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면 유영철은 자기 삶이나 아들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 결코 검거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연쇄살인사건은 꾸준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일단 창작물에서 범죄를 다루는 건 기본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우리 삶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런 범죄들이 사회와 연결된 삶에서 중요한 요소인 것은 틀림없다. 다루는 방식 역시 예술가의 창의성과 주관성에 맡길 일이다. 모방범죄에 대해 말하자면 영화를 봐서, 영화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없다. 영화가 범행의 교과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견해에 대해선 그 영화가 아니라도 다른 데서 범죄 수법을 배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영화를 본다고 그들이 경각심을 느끼거나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영화적인 재미, 스릴과 서스펜스를 보고 만족하면 될 것 같다.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있을까.
=긍정적인 부분은 글쎄,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부정적인 부분 중 우려되는 건 아무래도 비합리적인 공포의 확산이다. 사건을 세세하게, 그리고 좀더 극적으로 과장해서 들여다보게 되는 거니까 관객이 그걸 그대로 사실이라고 인식할 위험성이 높다. 내 주변에도 저런 사람이 있을 것 같고, 내가 그런 사건의 피해자가 될 것 같은 공포. 특히 실제 피해자와 유사성을 가진 여성들에게 지나친 두려움을 줄 수 있다는 건 문제다.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공공 영역의 실패, 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아프다. 아프지만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는 수사 과정의 무능과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부끄럽다. 영화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거친 만큼 그 모습이 전부는 아니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 부분을 부각해서 보고 싶다는 것이 영화가 대변하는 국민 정서라 볼 수도 있다. 그만큼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비난의 수위가 높다. 예를 들어 우리는 현실에서 국가 권력, 재벌, 기업 이런 곳을 엄청난 공권력이 투입돼서 지켜내는 걸 본다. 동시에 시위 상황에서 가담자나 주동자, 불법행위자를 채증해서 철저히 가려내는 것도 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생긴 이상하고 억울하다고 느끼는 정서가 영화에도 투영된 거 아니겠나. 공권력의 전문성이 왜 이렇게 끔찍한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에게는 발휘되지 않는지, 왜 힘없고 약한 민초의 억울함을 풀어주진 못하는지 답답할 수 있다. 단지 영화로만 넘겨버릴 게 아니라 힘없고 약한 서민의 분노와 불만 등을 반드시 읽어내고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