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연쇄살인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2014-07-17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논픽션 다이어리> 정윤석 감독

-2010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범죄에 관한 전시(<죄악의 시대>)를 제안받은 것이 이 영화의 출발 지점이라고 들었다.
=그 전시에 참여하며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일종의 아카이브 같은 책을 만들었다. 당시 자료를 조사하면서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그 사건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이후에 ‘지존파 사건’에 대한 작업을 따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건 중 유독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을까.
=지존파보다 1990년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살인의 추억>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연쇄살인이라는 행위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90년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다. 지존파 사건에 특히 흥미를 느낀 건, 원한 관계 같은 이유가 아닌, ‘자본주의’를 범행 동기로 내세운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5년 전 전시 작업을 위해 한국 사회를 돌이켜보면서, 패러다임이 자꾸 80년대에 맞춰진다는 생각을 했다. 독재 대 민주화, 좌우라는 프레임. 생각해보니 이게 우리 세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더라(정윤석 감독은 81년생이다). 우리는 산업화 세대도 아니고, 민주화 세대도 아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갔는데, 비정규직이 된 그런 느낌? 처음으로 어른에게 배신당한 세대인 거지. 어른들은 그런 우리를 ‘88만원 세대’라고 프레임 관리를 하던 상황이었고. 그렇다면 지금 현재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90년대가 그 원인이 될 수 있겠더라. <논픽션 다이어리>의 배경이 88올림픽부터 1997년 IMF 금융위기를 맞기까지의 10년이다. 올림픽 이후 자본의 풍요를 한껏 누리던 사람들이 IMF가 터지고 나서 다시 넥타이를 매고 거리로 나서게 된 거다. 이처럼 소비의 즐거움과 빈곤이 공존하던, 자본주의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90년대를 잘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았기에 우리가 지금의 문제들을 맞이하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논픽션 다이어리>를 통해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거울로서의 90년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연쇄살인사건이란 소재를 다룰 때 으레 짐작할 수 있는 인터뷰이들이 있다.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까운 지인들, 가족들. 다시 말해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의 증언이 <논픽션 다이어리>에는 배제되어 있다. 그 점이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만약 내가 가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또는 지인들의 코멘트를 들으려고 했다면, 이 영화는 개봉하지 못했을 거다. 처음부터 <논픽션 다이어리>는 선악의 구도로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존파 사건을 연결고리 삼아 90년대를 재구성해보겠다는 명확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연쇄살인사건의 유가족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담지 않겠다는 의도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그렇다고 자료 리서치를 안 한 건 아니다. 조사를 많이 했다고 자부하고 있고. 그런데 정작 영화에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한컷도 쓰지 않았다. 이 작품의 방향성과 관련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나.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인터뷰이들의 대답이다. 누구를 만나,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그 기준을 어떻게 세웠나.
=이 영화의 핵심은, 등장인물이 (사건에 대해) 끝까지 갈등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갈등이 사라진 사람들은 일부러 인터뷰 대상에서 배제했다. 지존파가 검거된 뒤 그들과 가장 자주 만난 사람은 수녀님과 목사님이었다. 그럼에도 그분들의 인터뷰는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찌 됐든 지존파가 나쁜 짓을 저질렀고, 종교를 통해 그들을 교화시켜야 한다고 믿는 분들이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질문 자체가 많이 소모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병천 선생님(지존파를 검거한 전 서초경찰서 강력반 반장)께 지금도 감사드리는 것 중 하나가, 끝까지 그 사건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고 갈등하셨다는 점이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다른 한축은 90년대의 자료화면이다. 지존파 사건과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에 대한 당시의 기록 영상을 재구성하며 어떤 고민을 했나.
=센 장면,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그 사건들이 남긴 외상을 담은 장면에 주목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의 경우 사람이 파묻혀 있는 장면보다 피 묻은 치마를 입고 사고 현장에서 헤매는 누군가의 모습이 이 사건의 공포를 더 극명하게 드러내준다고 봤다.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며 보는 사람의 상상을 유도하는 컷을 많이 쓰려고 했다. 편집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다. 이 사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유가족들이 난지도에서 시체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영화를 만들다가 1년 정도 도망친 적이 있다. 가족이 왜 죽었는지 이유도 모르는 사람들이 시체를 찾겠다며 쓰레기장을 뒤지는 풍경 자체가, 90년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으로 크게 와닿은 사건임에도 난지도 장면을 아주 담백하고 건조하게 묘사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예로 들면 좋을 것 같다. 그 사건을 보면서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분노라는 감정은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영화에 ‘진숙아 보고 싶다’라고 적힌 화분이 나온다. 그 화분의 꽃이 생화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딸을 잃은 유가족이 20년 동안 매일같이 생화를 딸의 무덤에 갖다놓은 거다.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그분들의 슬픔의 깊이는 나도, 그 누구도 절대로 헤아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분노도, 슬픔도 아닌 공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세월호 사고 때문에 많이 힘든 건, 서서히 배에 물이 차오르는 그 순간의 공포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든 세월호 사고든, 우리에겐 무분별한 분노와 슬픔보다는 공포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공포의 감정을 통해 더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포라는 기시감을 주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거리 두기가 필수적이라고 봤다.

-90년대의 자료화면 중 사회지도층(국회의장, 헌법재판소 대법원장 등) 혹은 지식인(시사 토론 프로그램의 패널 등)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자막을 넣지 않았다. 의도적인 설정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가 뉴스를 볼 때,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문가들이 코멘트를 하고 자막으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소개한다. 그 자막이 일종의 권위의식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 전문가들의 이름과 직함을 넣지 않은 건, 사회적 계급과 권위라는 상징을 없애고 팩트만 봤을 때 그들의 말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우둔하고 폭력적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더불어 정보를 없애면 말에 집중하게 된다. 말에 집중한다는 건 생각을 듣는 것이고. 말이 지닌 상상력을 다시 회복시키고 싶었다.

-대학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했고,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작업을 하던 중 이 영화를 만들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당신의 첫 장편영화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설치작업도 하고, 드로잉도 하고, 책도 만들고 실험적인 단편영화도 찍었다. 내가 언젠가 장편영화를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이번 영화도 처음에는 시각예술의 한 범주로 접근했었다. 다뤄야 하는 정보와 시간의 범위가 넓었기 때문에 전시라는 형식은 처음부터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고, 일종의 소셜 아카이브 같은 개념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한 거다. 개인전 형식으로 시사를 하고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해 씨네코드 선재를 대관해 상영회를 열었는데, 당시 관객의 반응을 보면서 이 작품을 내가 가지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 필요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관통하는 관심사가 있다면.
=국가라는 시스템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국 사회가 성공적으로 거치지 못한 근대화에 대해 잘 정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논픽션 다이어리>를 만들며 삶의 방향이 변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이제는 국가의 거대 시스템보다는 더욱 미시적인 단위로 들어가서 ‘악이란 무엇인가’ 등의 본질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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