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높아진 기대는 어느새 다음 이야기의 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되었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 이후 무려 8년, <타짜-신의 손>으로 돌아온 <타짜> 속편은 좋든 싫든 전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새롭게 메가폰을 잡은 강형철 감독은 전작의 눈치를 보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경쾌하게 자신의 길을 가며 또 다른 방식의 <타짜>를 선보인다. 제작과정에 있었던 자잘한 에피소드부터 궁금한 장면까지 강형철 감독에게 물었다. 꽃의 전쟁의 주역인 신세경, 이하늬 두 여배우의 솔직한 심경도 함께 전한다. 타짜 vs 타짜, 누가 더 낫냐는 비교가 무의미한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하시라.
앞서 간 이의 흔적이 길잡이가 될 것인지 장벽이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뒤따르는 사람의 태도에 달렸다. <타짜-신의 손>(이하 <타짜2>)의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 기대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당연한 일이다. 뛰어난 전작은 관객의 기대에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주기 마련이고 많은 속편들이 바로 이 함정에 빠져 전작을 넘지 못할 벽으로 만들어왔다. 이미 걸어간 길을 답습하든 반대로 벽을 뛰어넘으려 애를 쓰든 상관없이 전작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한계를 지정하고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타짜2>를 둘러싼 불안도 여기서 출발한다. 한껏 높아진 기대치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성패는 여기에 달렸다. 적어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작과 ‘다른’ 재미를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우려는 기우로 끝난 듯하다. <타짜2>가 뒤따르고 의식하는 건 1편이 아니다. 강형철 감독은 전작의 후광 대신 원작의 탄탄함을 길잡이로 삼아 따라간다. 8년 만에 돌아온 <타짜2>는 생각보다 훨씬 젊어졌고 지리산 작두 고니는 이미 이름조차 잘 거론되지 않는 전설의 인물이 됐다. 영화는 전작과 넉넉한 거리를 두고 대길(최승현)이라는 인물의 행보에 초점을 맞춘 채 그때그때 상황에 걸맞게 다양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그 현란한 걸음을 따라가다보면 전작의 정서는 어느새 희미해져간다.
영화는 시작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1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라는 걸 부각시킨다. 군산 바닥을 헤집고 다니는 피라미 타짜 대길은 멋을 부리려 용을 쓰는데 그 모양새가 어설퍼서 귀엽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경쾌한 코미디에 가깝고 이를 한껏 살려주는 건 대길 역의 최승현이 가지고 있는 장난기다. 유쾌한 악동처럼 보이는 그의 허세는 덜 여문 열매를 보는 것처럼 신선해 오히려 기대를 안긴다. 심지어 첫사랑 미나(신세경)를 만나고 고백하는 장면은 약간 과장하자면 거의 하이틴 로맨스라고 해도 무방할 풋풋함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까지 따라오면 대부분의 관객은 전작의 싸늘한 정서를 씻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관객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 것, <타짜2>가 초반 판을 깔고 들어가는 승부수다.
그렇다고 <타짜2>가 1편과 전혀 다른 영화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지점마다 전작의 흔적들을 슬쩍 보여주는 모양새가 1편을 의식하고 있음을 역력히 드러낸다. 단 이것은 좀더 큰 밑그림 아래에서 진행된다. 대길과 고광렬과의 만남, 마지막 승부수의 유사함 등 전작의 흔적들은 바통을 이어받는 속편으로서의 전략이라기보다는 계속 진행될 시리즈물로서의 양념에 가까운 서비스다. <타짜2>는 1편이 굳이 하려 하지 않았던 <타짜>의 시리즈화를 염두에 두고 자신을 그 중간에 위치시키려 한다.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앞으로도 계속될 <타짜>의 두 번째 작품을 맡아 계속 이어질 이야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시리즈물 안에서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는 원작 만화 <타짜>가 총 4부로 구성되어 이야기상 완전히 분리돼 있기에 가능한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원작의 2부를 각색한 이야기는 최동훈의 <타짜>보다 훨씬 원작에 충실함으로써 1편과 노선이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이미 주어진 재료 안에서 감독이 잘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타짜2>가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마다하지 않는 건 전작의 후광이 그만큼 두껍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 판을 까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짜의 현란한 손놀림 이전에 필요한 건 치밀한 설계다. 그런 면에서 <타짜2>의 설계는 강형철이라는 오락영화의 타짜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일단 ‘전작과 다른 재미를 발견해달라’는 판을 깔고 난 후엔 중반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대길의 성장, 몰락, 복수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화투판 위에서 벌어지는 무협지인데 정서적인 뼈대는 멋에 죽고 멋에 사는 누아르다. 화투판을 뒹구는 인물들 모두 가면을 쓰고 허세 위에서 서로를 속고 속이기 위해 애쓴다. 곧 죽어도 고, 못 먹어도 고. 유령의 하우스에서 미나를 구출해 나오는 대길에게 날리는 유령의 대사, “존내이 멋있네, 씨벌놈”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정서다. 화투판 위의 환상을 멋들어지게 보여주는 것이 오락영화로서 <타짜2>가 수행하는 충실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때 인물들이 잡는 ‘가오’의 색깔은 전작과의 가장 큰 차이인데 1편이 싸늘하고 능글맞은 때깔을 뽑아냈다면 2편은 훨씬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 위에 서 있다. 강형철스러움은 (청소년 관람불가임에도 불구하고 듬뿍 묻어나는) 바로 이 ‘착한’ 분위기에 깃든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장르영화
상업영화에서 강형철 감독의 친화력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장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점에 있다. <과속스캔들>과 <써니>가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서로 공유하는 정서는 바로 이 유머 감각과 인물에 대한 따뜻한(때론 맹목적이기까지 한) 시선이다. 진지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불쑥 농담을 내뱉고 마는 인물들의 유머 감각과 따뜻한 눈빛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오락영화의 핵심이랄 수 있는 웃음과 감동이라는 원초적인 두 기둥부터 세우고 들어간 덕분에 로맨스, 코미디, 누아르, 액션 등 화려한 패션쇼처럼 옷을 갈아입는 현란한 연출에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장르는 도구일 뿐이다. 실없는 농담과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오락영화로서 <타짜2>의 본질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잃어버린 아빠를 찾건, 오래된 친구를 찾건, 도박에 미치건 강형철은 강형철이다. 적재적소에 캐릭터의 활용은 물론이고 사소한 장르적 쾌감도 놓치지 않고 살려내는 균형 감각은 <타짜2>에 또 다른 생명력을 더했다.
장르영화로서 <타짜2>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공간의 활용이다. <타짜2>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캐릭터를 소비하진 않는다. 어떤 악역이라도, 심지어 화투라는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에 가까운 아귀조차 요리라는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취향을 드러낸다. 살벌한 악역 답십리 동식도 대길이 물리쳐야 할 대상 이외의 무언가를 더 가지고 있다. 적어도 감독이 이 캐릭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만큼은 여실히 묻어난다. 각 캐릭터가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묻히는 일은 거의 없고 모두 주어진 상황에 맞춘 역할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해내며 적절한 배분과 개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타짜2>의 다채로움의 비결은 공간의 활용에 있다. 영화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장마다 다른 분위기를 선보이는 대신 대길이 활약하는 도박장의 분위기에 따라, 더 좁게는 각 도박판의 상황에 따라 해당 시퀀스의 장르를 결정짓는다. 초반 군산 하우스는 풋풋하고 소박한 정서를 드러내며, 대길의 비상이 시작되는 강남 하우스판은 그에 맞춰 고급스럽고 시끌벅적하다. 답십리 동식이의 하우스는 그의 분위기에 걸맞게 생존의 냄새가 진득하게 묻어 있고 미나를 구출해오는 유령의 하우스는 탈출하기 힘든 미로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마지막 대결 무대인 아귀의 별장은 그야말로 최종보스의 성이라는 느낌이다. 각 공간에 맞춘 각 캐릭터들, 그들과 대길이 만나는 순간마다 영화는 로맨스에서 누아르로 액션에서 휴먼 드라마로 차례차례 변모한다. 말하자면 장르를 보여주기 위해 상황을 설정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적 요소를 차용한 쪽에 가깝다.
물론 이 모든 요소들은 기본적인 만듦새가 평균 이상이라는 걸 전제로 한다. 아쉬운 점은 결정적인 한방은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타짜2>는 “한끗으로도 장땡을 이길 수 있다”는 대사처럼 한방에 의존하지 않아도 매 순간, 매 장면, 매 판을 소소하게 이겨나간다. 대박은 없어도 필요한 재미를 확실히 주고 끝내는 소소한 판들이 지루할 틈 없이 빠른 리듬으로 이어질 때 전체가 살아난다. 전작의 명성을 무리하게 뛰어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고 잘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이 성실한 오락영화는 기대 이상의, 기대 밖의 맛은 아닐지언정 다 알고 맛봐도 충분히 즐길 만한 보편적인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목숨 걸고, 인생 걸고, 돌아보지 않고 베팅하는 도박장의 긴장감 대신 명절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모여 나누는 훈훈함으로 채워진, 착한 누아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