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첫사랑 혹은 영원한 의리
2014-09-09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신세경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면 듣는 사람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도 지치는 법이다. 언론시사회가 끝난 뒤 신세경은 이틀 동안 기자들과 마주 앉아 영화 얘기를 해야 했다. 그 두 번째 날의 늦은 오후 신세경을 만났다. 비축해둔 힘이 바닥나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애정이 큰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아요. 안 그래도 오늘 밝아 보인다는 얘기 엄청 들었는데, 이제 그만 가라앉혀야 되나? (웃음)” 2년 전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 때 보았던 신세경의 두눈은 ‘휴식이 필요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사이 그녀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난 걸까. “그때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였어요. 나를 지탱해주는 받침대가 점점 사라져서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요만큼밖에 남지 않은 기분이었달까. 지금은 다시 지반을 단단하게 다져놨어요. 그리고 다시는 그 지반을 뺏기고 싶지 않아요.” 조그만 입술을 야무지게 달싹이며 지금의 행복을 지키고 싶다고 말하는 신세경은 인터뷰 내내 건강한 기운을 한껏 내뿜었다.

“좋은 기운”은 <타짜-신의 손>을 통해서도 원없이 충전했다. 지난해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의 촬영을 끝내고 신세경은 한달 동안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 <타짜-신의 손> 시나리오를 받아 읽었고, 허미나에게 “홀딱 반했다”.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제가 강력하게 내비쳤던 작품이에요. 여배우로서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은 캐릭터라 소속사에선 신중했으면 했고요. 단순히 노출뿐만 아니라 담배 피우는 연기도 있고 욕설도 해야 했으니까요.” 한때 대길(최승현)의 새초롬한 첫사랑이었던 미나는 노름에 빠진 오빠 광철(김인권) 때문에 장동식(곽도원)에게 볼모로 팔려간다. 구질구질한 상황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미나는 신세경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제가 바라는 여성상을 그대로 가진 캐릭터였어요. 코스모스과의 여자보다는 멋있는 여자를 동경하는 편인데, 미나에겐 우직함과 강인함이 있어요. 멋지게 미션을 완수하고서도 생색내지 않는, 그런 종류의 멋짐? (웃음)”

신세경은 대길과의 관계도 “사랑을 넘어선 의리”로 설명했다. “원작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그렇고 대길을 향한 미나의 마음은 디테일하게 설명되지 않아요. 그래서 전 처음부터 올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단단한 마음으로 대길에게 올인한 거죠. 그리고 그 마음을 끝까지 지켜가는 게 중요했고요.” 대길의 첫사랑으로서 아련한 첫사랑의 판타지를 창조하는 건 그러니 애초부터 신세경의 계획에 없었다. 미나는 의리의 캐릭터고, 신세경은 그 의리를 구체화했다. 새침한 듯도 하고, 무심한 듯도 한 말투로 툭툭 “키스나 할까”, “난 뒤태가 예뻐”라 말할 때의 미나는 만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 매력적이다.

신세경은 이 모든 과정을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겼다”고 한다. 처음 배운 화투도 생각보다 빨리 손에 익었고, 아귀 하우스에서 속옷까지 모두 벗는 장면에서도 노출에 대한 걱정은 금세 휘발됐다. “너무나 밀도 높은 신이잖아요. 노출로 인한 부끄러움은 잠시뿐이었어요. 그리고 누구나 가진 팔다리고 누구나 가진 배인데…. 근데 나 너무 이상한가? 좀 창피하고 그래야 하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건가? (웃음)” 전혀. 당당하니까 신세경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꿋꿋하게 식모살이하던 세경 이후, 신세경은 늘 심지 단단한 여성으로 살았다. <푸른소금>의 세빈도, <뿌리깊은 나무>의 소이도, <패션왕>의 가영도,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의 세영도 그랬다. <타짜-신의 손>의 허미나는 지금껏 신세경이 연기한 캐릭터에서 답답함은 빼고 당당함은 더한 결과다.

요즘은 허미나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또 다른 캐릭터의 매력을 탐구 중이다. 9월10일 첫 방송되는 드라마 <아이언맨>에서 신세경은 “도덕교과서”, “순수함의 결정체”인 여주인공을 연기한다. 영화와 드라마를 사이좋게 한편씩 오가며 찍는 것 같다고 했더니 “음, 드라마에 나오면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엄청 좋아하세요”라고 답하는 그녀. 스물다섯의 신세경은 조급해하지도 느긋해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그중에서 <타짜-신의 손>은 단연 신세경의 용감한 선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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