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당신이 올가을 부산을 찾아야 할 30가지 이유(3)
2014-09-30
글 : 김성훈
글 : 윤혜지
글 : 장영엽 (편집장)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보이후드> Boyhood
리처드 링클레이터 / 미국 / 2014년 / 166분 / 월드 시네마 / 성장드라마

<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3), <비포 미드나잇>(2013) 연작을 통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같은 배우(에단 호크, 줄리 델피)를 집요하게 탐구해왔다. 그의 신작 <보이후드> 역시 배우들을 오랫동안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 간격을 두고 차례로 찍은 앞의 연작과 달리 <보이후드>는 주인공 메이슨(엘라 콜트레인)과 그의 가족 등 주요 등장인물을 12년 동안 꾸준히 담아온 ‘진짜’ 성장담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이 영화는 42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시간 나는 대로 배우와 스탭들이 만나 꾸준히 찍은 대서사시다.

메이슨은 아빠(에단 호크)와 이혼한 엄마(패트리샤 아퀘트), 누나(로렐라이 링클레이터)와 함께 사는 어린 소년이다. 일주일마다 자신을 돌보기 위해 찾아오는 아빠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메이슨은 아빠와 함께 공원에서 야구를 하고, 산으로 캠핑을 다니며 부자 관계를 돈독히 한다. 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새아버지와 생활을 하고, 엄마와 새아버지의 부부싸움 때문에 방황하고, 그러면서 첫사랑을 만나고, 대학교에 입학해 고향을 떠나기까지, 6살부터 18살의 메이슨의 나이듦이 차곡차곡 영화에 새겨져 있다. 시간 경과를 알리는 자막이나 인서트컷 하나 없이 어린 소년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이건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점에서 경이롭고,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하다. <보이후드>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경이로운 도전 덕분에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 내내 뜨거운 화제를 불러모으며 은곰상을 수상했다.

<얼간이들> The Fool
유리 비코프 / 러시아 / 2014년 / 116분 / 월드 시네마 / 드라마

배관공 디마는 800여 세대가 사는 오래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가난한 주민들은 모두가 술과 담배, 도박에 찌들어 있고 이웃을 배려할 줄도 모른다. 디마는 어느 집의 수도관이 터졌다는 얘기를 듣고 수도관을 살피러 갔다가 건물 외벽에 크게 금이 간 것을 발견한다. 디마는 자칫하면 하룻밤 새에 아파트가 무너질 수도 있으니 멀리 떠나야 한다고 주민들을 설득하지만 주민들은 모두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시장과 공무원들까지 디마의 의견을 묵살한다. 가족과 도시를 떠나던 디마는 결국 이웃들이 마음에 걸려 홀로 아파트로 돌아가지만 흥분한 아파트 주민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만다. 감독 유리 비코프는 <얼간이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라고 말했다. 정직하고 순수한 디마는 현대에 환생한 미슈킨 공작이다. <얼간이들>은 대중의 무기력함과 전체주의의 부작용, 부패한 권력까지 러시아의 현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우화이지만 어쩐지 분노보다는 슬픔이 앞선다. 디마 역의 아르템 비스트로프는 제67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 What’s the Time in Your World?
사피 야즈다니안 / 이란 / 2014년 / 101분 / 뉴 커런츠 / 작가

골리(레일라 하타미)는 20여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의 고향은 이란 북서부에 위치한 라슈트라는 도시. 다시 돌아온 고향은 여전하다. 건물들을 지날 때마다 추억이 하나씩 떠오르고, 고향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준다. 특히, 액자 장인 파하드(알리 모사파)가 그가 고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골리는 파하드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기억이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아니, 낯선 남자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닌다고 생각하니 두렵기까지 하다. 골리는 파하드의 정체를 알아가면서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는 여성 골리가 잊었던 추억을 찾아가면서 자아를 깨달아가는 영화다. 실제로 부부이기도 한 레일라 하타미와 알리 모사파의 연기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레일라 하타미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주연배우였고, 알리 모사파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에 출연한 바 있다.

<도쿄 트라이브> Tokyo Tribe
소노 시온 / 일본 / 2014년 / 116분 / 아시아영화의 창 / 액션, 코미디

일단 가볍게 몸을 풀고난 뒤 관람할 것. 화려하게 이어지는 힙합 비트에 몸을 흔들며 시종일관 낄낄대느라 정신없을 테니 말이다. 이노우에 산타의 만화 <도쿄 트라이브2>를 영화화한 <도쿄 트라이브>는 모든 대사를 랩과 노래가 대신한다. 전설의 시부야 폭동이 가라앉은 지 5년이 흘렀다. 마약과 범죄,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된 가상의 미래도시 도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무사시노 SARU’의 일원인 카이와 ‘부쿠로 WU-RONZ’를 이끄는 메라는 한때 친구였으나 지금은 사이가 나쁘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부쿠로 WU-RONZ’의 손에 ‘무사시노 SARU’의 멤버 하나가 살해당하고, 이로 인해 ‘도쿄 트라이브’들의 세력 다툼에 제대로 불이 붙는다. <도쿄 트라이브2>는 소노 시온의 전작 <지옥이 뭐가 나빠>보다 더한 지옥도를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싸움의 규모는 말도 못하게 커진다. <스카페이스> <시계태엽 오렌지> <킬 빌> 등의 할리우드영화를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장면들도 압권이다. 생지옥에서 펼치는 거칠고 섹시한 활극.

<빈관> The Coffin in the Mountain
신유쿤 / 중국 / 2014년 / 119분 / 아시아영화의 창 / 미스터리, 누아르

한국영화 <끝까지 간다>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주목해야 할 중국 신인감독의 장편 데뷔작. 건조한 기후 때문에 자주 산불이 나고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한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부모에게 허락받지 못한 연인과 밀회를 즐기다가 우발적으로 마을 사람을 죽이게 되는 촌장의 아들,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에게 질려 은밀하게 마을 사람과 불륜을 저지르는 여자와 그런 그녀를 짝사랑하는 마트 주인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든다.

<빈관>에서 죽음은 도처에 존재한다. 죽은 자에 대한 예의 때문에 한번 봉인하면 애써 열지 않으려 하는 ‘관’에는 영화 속 구성원들이 감추고자 하는 비밀과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욕망이 담겨 있다. 작은 사회 안에서 들끓는 이 어둠의 에너지를 짜임새 있게 직조된 내러티브를 통해 흥미롭게 펼쳐 보이는 신유쿤 감독의 연출력은 그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A Midsummer’s Fantasia
장건재 / 한국, 일본 / 2014년 / 96분 /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 작가

두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야기다. 첫 번째 챕터는 첫사랑 요시코. 영화감독 태훈(임형국)은 통역사 미정(김새벽)과 함께 고조라는 일본의 지방 소도시를 찾는다. 영화를 찍기 전에 고조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한 목적이다. 채소 장사를 하다 파친코, 카페, 펜션을 차린 부부, 배우가 꿈이었지만 공무원이 된 고조시 직원, 장소 헌팅을 하다 골목 구석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부분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만난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펼쳐진다. 태훈은 이들의 사연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두 번째 챕터는 벚꽃 우물. 첫 번째 챕터에서 소개된 사연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새롭게 재구성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장건재 감독이 차린 제작사 모쿠슈라와 일본 나라국제영화제가 함께 제작하고, 장건재 감독과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함께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올해 나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부재하는 사람들> The Absent
니콜라스 페레다 / 멕시코 / 2014년 / 80분 / 월드 시네마 / 드라마

<부재하는 사람들>은 멕시코의 대표적인 젊은 감독 니콜라스 페레다의 작품이다. 서사보다는 이미지 직조술에 능한 그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조그맣고 허름한 멕시코의 한 마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초반부에 우리가 보게 되는 건 한가롭게 풀 씹는 나귀, 등 굽은 노인의 식사 모습과 느린 걸음걸이, 나귀와의 한바탕 몸 씨름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낡은 집과 그 집 주변의 심심한 풍경들이다. 마을의 노인들이 다같이 모여 침통한 표정으로 재개발에 대한 통보를 듣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우린 사태를 짐작한다. 노인은 집을 잃을 처지다. 한 젊은이가 나타나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와 노인은 무슨 관계일까. 영화는 그렇게 애매함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 장면도 같이 등장하는 법이 없었던 두 인물이 라스트신에서 서로 술에 취해 동석해 있을 때, 그들의 파악되지 않은 관계와 무관하게, 여기엔 무한한 교감과 상실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다.

<팀북투> Timbuktu
압데라만 시사코 / 프랑스, 모리타니아 / 2014년 / 97분 / 월드 시네마 / 작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시네아스트, 압데라만 시사코가 <바마코> 이후 8년 만에 만든 장편. 말리에 실존하는 지역인 팀북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들로 가득하다.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팀북투에선 운동을 하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금지다. 억압적인 환경에 저항하는 자들은 불합리한 이유로 처형되는데, 우연히 단란하게 살아가던 가족의 가장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이들 가족의 불행이 시작된다. 시사코는 아프리카의 압도적인 풍경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저항을 누구도 담아내지 못했던 방식으로 조명하는 법을 알고 있다. 이웃의 죄를 보듬는 관용조차 허용되지 않는, 진흙탕 같은 사회 속에서 이 거장이 건져올린 인생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켜보는 것이 <팀북투>의 관전 포인트다. 더불어 이 영화에는 근래 본 가장 인상적인 축구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스톰 메이커> The Storm Makers
기욤 수온 / 캄보디아, 프랑스 / 2014년 / 66분 / 와이드 앵글 / 다큐멘터리

환향녀는 조선시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정절을 잃고 돌아온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환향녀 이야기는 돈을 벌기 위해 타국에 팔려갔다가 상처를 입고 돌아온 다큐멘터리 속 캄보디아 여성들의 이야기와 그대로 포개진다. 피해 여성들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 타이, 말레이시아 등에서 돈도 받지 못한 채 노예처럼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다. 돌아와도 가족들은 여전히 가난 속에 살며 그들을 안아주지 못한다. 반면 이들을 중간에서 팔아넘기는 일을 했던 대리인들은 과거를 잊은 채 태연자약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피해를 입고 돌아온 여성에게 그것은 절대 씻을 수 없는 기억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중심이 되는 한 여성은 강간으로 생긴 아이를 낳아 돌아온 참이다. 카메라는 종종 여성의 멍한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 얼굴 위에 털어놓을 길 없는 그녀의 끔찍한 기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캄보디아의 거장 리티 판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초우>
<국경 아닌 국경선>

영원한 영화인, 정진우 감독

한국영화 회고전

올해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은 정진우 감독이다. 정진우 감독은 유현목 감독의 <잃어버린 청춘>에서 촬영부 스탭으로 일을 시작해 정창화 감독의 조감독을 거쳤다. <외아들>(1961)로 영화 연출을 시작했는데 당시로선 최연소 감독 데뷔였다. 이후 50여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제작자로는 110여편을 만들었다. 자신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걸 계기로 배우로도 활동했다. 1969년엔 영화사 우진필름을 설립해 수입, 배급, 극장 운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영원한 영화인, 정진우 감독’전에서는 대표작 <초우>를 비롯해 8편을 상영한다. 이번 회고전은 60년대 중반부터 활발하게 제작된 그의 사회파 멜로드라마와 여성들의 생을 섬세하게 담아낸 70, 80년대 영화 위주로 구성됐다. <국경 아닌 국경선>은 국내 버전 프린트가 소실돼 어렵사리 발굴한 중국어 더빙 프린트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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