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의 수상 결과가 전해지자 한층 관심이 쏠린 영화들이 있다. 베니스 남녀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쥔 <헝그리 하츠>도 그중 하나였다. 뉴욕에서 만난 미국 남자와 이탈리아 여자는 결혼과 임신을 거치며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아이를 과잉보호하며 위험에 빠트리는 엄마 미나 역을 맡은 알바 로르와처의 섬뜩한 연기에 토론토에서도 박수가 쏟아졌다. 남편 주드 역의 애덤 드라이버는 <While We’re Young> <This Is Where I Leave You> 등 3편의 영화가 동시에 초청되며 토론토영화제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베니스가 끝난 지 3일 뒤인 9월9일 오후 <헝그리 하츠>의 사베리오 코스탄조 감독을 만나 채 식지 않은 수상의 흥분을 전해 들었다.
-엊그제 베니스에서의 수상 소식을 들었다. 토론토에는 언제 왔나.
=베니스영화제가 끝나자마자 출발해 7일 일요일에 도착했다. 토론토는 관객의 열기를 코앞에서 느낄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말 그대로였다. 행복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애덤 드라이버와 알바 로르와처가 각각 남우,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기분이 어떤가.
=<헝그리 하츠>는 작은 아파트 안에서 두 연기자가 부딪치는 이야기다. 배우들의 표현력에 온전히 기대야 하는 영화인 만큼 가장 적합하고 의미 있는 상이다. 영화의 핵심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황금사자상보다 만족스럽다.
-아기를 과보호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뼈대로 최근 친환경에 집착하는 도시인들의 새로운 생활패턴, 육아를 둘러싼 갈등 등 독특한 설정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출발한 이야기인가.
=유기농 생활을 소재로 한 짧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1년 반이 지난 뒤 그 이야기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써보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아내와 별거를 마치고 이혼을 준비 중이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내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 스스로를 돕기 위해 쓴 글이다. 영화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똑바로 보고 싶었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영화 속 미나의 행동까지도 품어보고 싶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이 흐르는 대로 쓰다보니 7일 만에 각본이 완성됐다.
-이야기의 무대를 뉴욕으로 옮겨온 이유가 무엇인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많은 음식을 나눠먹는 로마의 분위기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큰 세상에서 격리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대도시여야 할 필요가 있었고 철저한 이방인인 미나가 사방의 위협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질 수 있는 고립된 공간이 필요했다. 나도 3년 정도 뉴욕에 혼자 살아본 적이 있어서 그 경험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작은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가 연상되는 이탈리아 정서가 강한 영화였던 데 반해 이번 작품에선 존 카사베츠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악마의 씨>(1968)가 연상된다는 평가는 숱하게 들었다. (웃음) 카사베츠의 철학은 늘 나의 관심사였지만 이 영화와 기술적인 유사점은 없다. 전작들에서는 특정 레퍼런스를 의식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말 그대로 느낌대로 찍었다. 적은 예산,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을 선택한 것도 모방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의도를 살리고 싶어서였다. 특정 테크닉에 집착하지 않고 적절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줄 안다는 점에서 존 카사베츠는 위대한 감독이다. 일상의 요소를 활용해 사실감을 높인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헝그리 하츠>가 <악마의 씨>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면 분위기나 특정 장면보다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꼭 애덤 드라이버와 함께하길 원했다고 하던데.
=애덤에겐 사랑을 할 줄 아는 남자의 모습이 있다.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첫 번째로 시나리오를 보냈지만 다른 촬영이 잡혀 있어 적어도 몇 개월은 함께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할 수 없이 다른 배우들을 오디션해봤지만(그중엔 톱스타도 몇명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엔 아예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로마로 돌아가려 했는데 귀국 이틀 전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곧바로 열흘 만에 촬영준비를 마치고 딱 4주 만에 촬영을 마쳤다. 잘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웃음)
-올해 부산영화제도 방문한다고 들었다.
=이 영화의 정서는 동양의 문화에서 더 잘 이해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중국은 가봤지만 한국은 처음이다. 부산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를 가질 수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