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그들’은 해피엔딩을 위해 고용됐나
2014-11-27
글 : 김상욱 (부산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과학자에게 <인터스텔라>에 대해 묻다2: <인터스텔라>가 끝났을 때 주인공 쿠퍼는 몇살일까요?

답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영화를 보면 여러 개의 시간이 등장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중력의 세기에 따라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우주탐사대가 첫 번째로 도착한 밀러의 행성은 하필 블랙홀 근처에 위치한다. 블랙홀은 중력이 어마어마하게 큰 천체다. 따라서 이곳의 1시간이 지구의 7년이 될 수도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이해한다. 격자무늬가 그려진 편평한 고무판을 상상해보자. 고무판을 휘거나 당기면 격자눈금 사이의 간격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기준이 되는 길이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시간으로 말하면 기준 시간이 늘어났다는, 즉 시간이 느리게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1시간과 7년은 엄청난 차이다. 이 정도의 차이를 만들려면 밀러의 행성이 블랙홀에 아주 가까이 있어야 한다. 지구에서 해수면과 에베레스트 산 정상의 중력 차에 의한 시간 지연은 3만5천년에 1초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중력장하에서 행성이 안정된 궤도를 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밀러의 행성에 몰아치는 거대한 해일도 블랙홀의 강한 중력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블랙홀에 가까이 있다면 해일이 아니라 행성 자체가 찢겨버릴 거다. 블랙홀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과학적인 부분이다. 보통 블랙홀이라고 하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으니 보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블랙홀은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왜 그럴까? 블랙홀 주변에서는 빛도 휜다. 따라서 빛의 입장에서 블랙홀 주위 공간은 렌즈와 비슷하다. 블랙홀 뒤에 별들이 있다면, 빛이 휘어서 앞에서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지구나 태양 같은 천체들과 마찬가지로 블랙홀도 구형(球形)이다. 이 때문에 블랙홀 주위 동심원 형태로 별빛이 보이게 된다. 동심원에 덧붙여 옆으로 가로지르는 빛의 띠도 보이는데, 이는 블랙홀의 회전과 관련 있다.

웜홀을 통한 우주여행은 가능할까? 현재 가장 빠른 우주탐사선의 속도는 시속 6만km 정도다. 지구에서 태양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려고 해도 10만년 정도 걸린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웜홀이다. 중력에 의해 공간이 뒤틀리다보면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지역이 구멍 같은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 지름길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영화 속 웜홀을 이용한 우주여행은 거의 SF소설 수준이다. 현재 웜홀은 수학적으로만 존재한다. 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곳을 통과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묻는 것은 난센스다.

이주할 행성을 찾는 탐사대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감독이 준비한 인류생존의 복안은 ‘통일장이론’과 5차원에 사는 ‘그들’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과학적으로 엉성해진다. 통일장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가상의 이론이다. 따라서 블랙홀을 양자역학적으로 다룰 때 이 이론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블랙홀 내부에 가야 단서가 있다느니, 양자정보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개드립이 다 이런 이유로 나온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아직 그 이론을 알지 못한다. 이 이론이 영화 속 인류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그들’은 또 무엇인지. 4차원 시공간에서 블랙홀을 탈출할 수 없으니 하나의 차원을 더 도입한 것인가? ‘그들’은 그냥 해피엔딩 전문작가일지 모르겠다.

물리학자의 눈에 <그래비티>는 평범한 재난영화다. 반면, <인터스텔라>는 상대성이론의 탈을 뒤집어쓴 SF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상대성이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있을까? 다 이 영화 덕분이다. 하지만 <인터스텔라>의 진짜 주인공은 블랙홀이 아니라 지구다. 영화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세입자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물리학을 깊고, 재밌게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엘러건트 유니버스> 등

첨단 물리학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과학자들은 많다. 하지만 그 깊이나 재미, 명료함에 있어 브라이언 그린을 따라갈 사람은 없다. 그의 대표작 <엘러건트 유니버스>(2002, 승산 펴냄)와 <우주의 구조>(2005, 승산 펴냄)를 적극 추천한다. 이 책들은 초끈이론, M이론에 이르는 이론물리학의 최전선까지 탐색하지만, 앞부분에서 일반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웜홀, 블랙홀과 같은 주제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미국 <PBS>에서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다.

중력은 <인터스텔라>의 주연배우 중 하나다. 사실 중력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주제다. 많은 철학자들이 “물체는 왜 땅으로 떨어지는가?”를 궁금해했다. 조진호의 <어메이징 그래비티>(2012, 궁리 펴냄)는 중력의 과학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엮은 ‘만화책’이다. 만화라고 우습게 보면 오산이다. 54회 대한민국출판문화상을 비롯해 상복이 터졌던 책이다. 한마디로 정말 어메이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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