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못생겨도 빛나는 해결사
2014-11-27
글 : 류근호 (호서대학교 로봇공학과 교수)
과학자에게 <인터스텔라>에 대해 묻다3: 네모난 로봇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인터스텔라>의 로봇 타스는 못생긴 네모다. 많은 이들이 로봇 타스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모노리스의 오마주라고 말하지만, 나는 타스가 네모난 이유가 영화 제작에 필요한 예산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그 정도로 타스의 디자인은 실제 로봇이 갖춰야 할 외형과 거리가 있다. 직육면체 네개가 연결된 로봇은 운동 자유도(degree of freedom)에 제한이 있어 복잡한 형태로 움직이기 힘들다. 정교한 우주선 조정은커녕 넘어지기라도 하면 자력으로 일어서기조차 어렵다. 물에 대한 저항이 심해 장애물이 나타나도 원활하게 구조활동을 펼치지 못한다. 첫 번째 행성에서 우주선 밖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장면에서 대충 빠르게 넘어가는 건 타스가 실제 구조에 적합한 모양이 아니기 때문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말해도 좋지 않을까. 타스는 현실에 입각한 디자인이 아니라 영화적 상상력에 기반해 편리한 대로 만든 네모난 막대기에 불과하다고. 물리학자 킵 손에게 자문을 받고 실제 논문을 작성하는 등 블랙홀의 사실적 재현을 위해 놀란 감독이 쏟은 많은 시간과 정성을 감안할 때, 로봇에 할애한 노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SF가 과학에 기반한 판타지라고 생각해봐도 허술한 네모 로봇 타스의 하드웨어에 대해서는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인터스텔라>에서 로봇 타스의 존재감은 허술한 과학적 재현에 비해 현저히 높다. 어설프게 디자인된 이 위트 넘치는 막대기는 <인터스텔라>에서 무엇을 해내는가.

기능적으로 볼 때 로봇 타스는 조용히 빛나는 조연이다. 그 존재감은 때론 주연을 뛰어넘는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인터스텔라>를 두고 “대충 구색 맞춘 팀을 짜놓고 재미있는 건 다 백인남자 주인공에게만 던져주는 스토리 구조”라고 불평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 과정에서 가장 재미나고 중요한 역할들이 로봇 타스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타스를 중심에 놓고 <인터스텔라>를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병충해와 황사로 인류의 탐욕을 거부한 지구를 떠나기 위해 인간적인 로봇 타스가 인간을 도와 외계 행성을 개척하는 데 성공하는 영웅담.”

타스는 이 영화에서 적어도 대여섯 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우선 로봇으로서의 우월한 작전 수행능력 덕분에 위기상황에서 빛나는 해결사로 활약한다. 악당이 인듀어런스호에 도킹하지 못하도록 막기도 하고 정교한 우주선 조종으로 여주인공을 돕는다. 기능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어렵고 빼어난 임무를 도맡는 초인적인 캐릭터다. 굳이 ‘초인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디자인적인 요소를 제외하곤 그의 인공지능이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감성으로 표현됐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안드로이드 로봇 데이빗(마이클 파스빈더)의 정교함과 비교하려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타스의 인간적 면모는 그 이상이다. 타스는 정신적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우주여행에서 지루함을 덜어주는 농담을 제공하는 믿을만한 동료다. 5차원 공간에서 주인공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타스는 블랙홀의 특이점(싱귤라 포인트)을 관찰한 유일한 캐릭터이며, 중력장 방정식의 완성에 핵심적인 열쇠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제 한목숨 바쳐 인류를 구하고 마지막에 다시 살아난다. 이쯤 되면 가히 주인공이 해야 할 역할의 대부분을 수행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디자인은 덜 사실적이고 덜 과학적일지 몰라도 <인터스텔라>에 타스가 없었다면 이 모험 자체가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스는 분명 못생겼다. 하지만 우리는 여느 로봇을 보고 못생겼다고 평가하진 않는다. 그만큼 타스의 인간적인 면모엔 위화감이 없다. 어쩌면 로봇 타스가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것은 이 캐릭터가 잃어버린 인간성을 모아서 만들어진 로봇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인류를 구원한 것은 비현실적인 로봇이 구현한, 우리가 잃어버렸던 인간성인 셈이다.

스티븐 호킹은 어떻게 항복했나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블랙홀 전쟁>

<블랙홀 전쟁>(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블랙홀에 관련된 과학이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기초부터 최신 이론까지 차근차근 기술한 입문서이다. 스티븐 호킹과 레너드 서스킨드가 블랙홀에서의 양자 정보 증발 현상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한 내용을 잘 정리했다. 책에서 호킹은 블랙홀에서 모든 정보가 증발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으며 서스킨드는 친구들을 규합해 블랙홀 가장자리인 사건의 지평선에서 양자 정보가 복사되어 모든 우주의 양자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혁신적인 이론을 만들고 호킹의 항복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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