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미지의 에디터 새로운 ‘리얼’을 낳다
2014-12-09
글 : 장영엽 (편집장)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노예 12년> 애덤 스톡하우젠 Adam stockhausen
<노예 12년>

Filmography


<패신저>(2015)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노예 12년>(2013) <문라이즈 킹덤>(2012) <스크림 4G>(2011) <스위치>(2010)

웨스 앤더슨

너무 차린 것이 많아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진수성찬. 총천연색 건물과 공간, 그 출처가 궁금한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한 웨스 앤더슨 왕국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이 한번쯤 초대받고 싶어 하는 꿈의 공간일 것이다. 2년 전, 이 꿈의 왕국에 사람 좋은 인상의 한 젊은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발을 디뎠다. 위스콘신 출신의 무대미술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애덤 스톡하우젠이 바로 그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슈퍼바이징 아트디렉터로 참여해 웨스 앤더슨과 처음 인연을 맺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기억할 만한 작품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애덤 스톡하우젠이 자기 영화의 프로덕션에 대해서라면 결벽에 가까운 완벽을 추구하는 웨스 앤더슨의 최근작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연달아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건 단지 친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웨스 앤더슨은 애덤 스톡하우젠과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수백 가지의 이미지를 수집해오면, 우리는 그것을 함께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 이것, 또 저것이 좋다고 애덤에게 말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내가 원하는 프로덕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애덤 스톡하우젠은 수많은 요소를 수집해 우리가 원하는 어떤 모습으로 구현해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

뛰어난 ‘에디터’

웨스 앤더슨이 말했듯, 수집하고 조합해 고유의 새로운 요소들을 만들어내는 애덤 스톡하우젠의 진가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프로덕션 디자인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웨스 앤더슨의 작품 중에서도 프로덕션 디자인의 난이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받곤 하는 이 작품에서, 스톡하우젠은 20세기 유럽 고전영화와 동독의 낡은 백화점과 체코 카를로비바리의 고색창연한 호텔 등에서 받은 영감을 뒤섞어 매력적인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중요한 과제는 “콜라주처럼 보이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다양한 레퍼런스로부터 영감을 받되 그 레퍼런스들이 부드럽게 연결되고 조화를 이뤄 궁극적으로는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일례로 애덤 스톡하우젠은 마담 D(틸다 스윈튼)가 머무르는 방의 외관은 카를로비바리의 그랜드호텔 퍼프를, 그녀의 방과 이어지는 긴 복도와 문들은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침묵>의 이미지들을 참조했고 부다페스트 호텔과 멘들스 제과점 등의 주요 공간을 구상하면서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천국의 말썽> <삶의 설계> <모퉁이 가게> <사느냐 죽느냐>, 막스 오퓔스의 <윤무>와 <마담 드…> 등의 작품에서 많은 요소들을 차용했다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목도할 수 있는 건 주브로브카라는 이름을 가진, 과거의 향수를 간직한 아름다운 하나의 왕국이다. 수많은 영감과 영향의 연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있어야 할 것들이 거기 있다고 믿게 만드는 애덤 스톡하우젠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레퍼런스를 편집하고 작품에 녹여내는 뛰어난 에디터로서 그의 능력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진짜’에 대한 관심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엔 너무 앙증맞고 예쁘고 아기자기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웨스 앤더슨 왕국이지만, 그 왕국의 골격을 만들어나가는 애덤 스톡하우젠의 신조는 “현실의 무언가를 가공하기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를 차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실존하는 현실의 아이템들은, 그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스톡하우젠의 생각이 <문라이즈 킹덤>의 프로덕션 디자인에 잘 반영되어 있다. 미국 조지아,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등지에서 촬영한 이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위해 스톡하우젠은 초기 식민지 시대(1726년 설립) 교회를 헌팅했고, 샤프 소장(브루스 윌리스)의 트레일러에 리얼리티를 덧입히기 위해 트레일러 내부의 구성 요소들을 로드아일랜드 현지에서 얻은 소품들로 채웠다. 어디에서 실제의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애덤 스톡하우젠과 웨스 앤더슨이 함께하는 현장에선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많은 결정들이 즉석에서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웨스 앤더슨은 이것을 ‘진화’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현장에서 늘 변화한다. 그것은 항상 진화한다. 우리의 여정은 장소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공유하며 영화에 반영하는 데에 있다.”

<노예 12년>

웨스 앤더슨과의 협업으로 프로덕션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애덤 스톡하우젠이지만, 그에게 또 다른 성취를 안겨준 작품은 스티브 매퀸의 <노예 12년>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올해 처음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스톡하우젠에게, <노예 12년>은 그가 정통 시대극에도 능하다는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영화의 출발점은 웨스 앤더슨의 영화와 다를 바가 없다. 수많은 레퍼런스와 로케이션 헌팅으로부터 프로덕션 디자인은 시작하는 것이니까. 다만 <노예 12년>에선 어떻게 하면 관객이 우리가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맞다고 느끼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1840년대 당시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배경,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이 자연스럽게 맞물려야 했으니까.” 의회 도서관에서 수집한 자료와 이미지들에 기반해 스톡하우젠이 만들어낸 19세기 미국의 리얼한 풍경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문라이즈 킹덤>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중요한 건 ‘디자인’이 아니라 ‘건축물의 너트와 볼트’라 믿는, 다시 말해 외관보다 프로덕션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에 늘 주목하는 애덤 스톡하우젠이기에, 더 다양한 미래의 행보를 기대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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