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시대를 뛰어넘어 공간을 초월해
2014-12-09
글 : 이주현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프로메테우스> 아서 맥스 Arthur Max
<프로메테우스>

Filmography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 <카운슬러>(2013) <프로메테우스>(2012) <로빈 후드>(2010) <바디 오브 라이즈>(2008) <아메리칸 갱스터>(2007) <킹덤 오브 헤븐>(2005) <패닉 룸>(2002) <블랙 호크 다운>(2001) <글래디에이터>(2000) <지.아이.제인>(1997) <쎄븐>(1995)

<쎄븐>

데이비드 핀처

아서 맥스는 지금껏 단 두명의 감독하고만 작업해왔다. 한명은 리들리 스콧, 또 한명은 데이비드 핀처. 맥스는 데이비드 핀처와 <쎄븐> <패닉 룸>을 함께했는데, 두 영화 모두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 중요한 영화, 즉 촬영과 미술이 중요한 작품이었다. 엽기적인 살인이 자행된 공간, 연쇄살인마의 심리 상태를 표현한 집 등 <쎄븐>에서 그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한 세트”를 창조했다. 서머셋 형사(모건 프리먼)가 <실낙원>을 찾아 읽는 도서관 장면에서 미술팀이 수작업으로 5만권가량의 가짜 책을 만들어 채워넣은 일화, 연쇄살인범이 빼곡하게 써내려간 일기장을 두달에 걸쳐 손수 완성한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패닉 룸>에서도 맥스는 폐쇄적이고 한정된 공간을 다양하게 동선이 뻗어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데이비드 핀처와 함께한 초기 작업에서 맥스의 아기자기한 세트 미술을 확인할 수 있다.

리들리 스콧

“<글래디에이터>의 고대 로마이건 <아메리칸 갱스터>의 1970년대 뉴욕이건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고대 이집트이건 간에 리들리 스콧에게 세트 디자인의 기준은 항상 똑같다. 그는 언제나 최고를 원한다.” 그리고 맥스는 “최고”를 원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년 가까운 세월을 믿고 의지한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리들리 스콧 가는 데 아서 맥스가 있었다. <지.아이.제인>부터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까지 두 사람이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손발을 맞춰온 지 벌써 10번째. 1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생각보다 묵직하다. 리들리 스콧은 미술을 전공했고, 조명과 미술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영화에 관한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드로잉한 ‘리들리그램’(Ridleygram)은 곧 영화의 스토리보드가 되곤 하는데, 맥스는 리들리 스콧의 머릿속 그림을 현실화시키는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에 10여년간 록밴드와 재즈 아티스트들의 공연에서 조명 디자이너로 활약했고, 이후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건축을 공부한 맥스는 과학, 예술, 건축 학위를 모두 갖춘 보기 드문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맥스의 이러한 이력은 리들리 스콧과 그가 왜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지 잘 설명해준다. 작품으로 봤을 때 <글래디에이터>는 두 사람 모두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거론되기에 충분하다. 리들리 스콧은 <글래디에이터>의 성공으로 (90년대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거장 대우를 받으며) 21세기에 활발히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고, 맥스는 블록버스터 액션 사극 미술에 있어서 ‘넘사벽’ 같은 존재가 됐다. <글래디에이터>는 맥스에게 영국아카데미시상식(BAFTA) 미술상 수상의 영광도 안겨주었다.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

시대극과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영화 세트 만드는 일을 출산에 비유한다면 이번 작업은 네 쌍둥이를 낳는 것과 같았다.” 전작과 비교해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작업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맥스의 대답이다. “기둥, 동상, 바닥, 가구 등 우리가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제작진은 런던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와 스페인 알메리아, 카나리 제도의 푸에르테벤투라 섬 등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스페인 알메리아에는 고대 이집트 왕국을 재현한 대형 오픈세트가 세워졌는데, “<로빈 후드> 때 지은 마을보다 더 큰” 세트였다고 한다. 프로덕션 디자인팀은 알메리아 세트장에 30개쯤 되는 건물을 세웠고, 실제 야자수를 옮겨와 심었고, 카이로박물관 등에서 얻은 정보로 디테일한 소도구를 제작했다. 그리하여 모세와 람세스의 이야기는 기원전의 케케묵은 이야기가 아닌 생생한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로빈 후드> 그리고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까지, 맥스와 리들리 스콧이 협업한 블록버스터 액션 사극의 큰 특징 중 하나는 CGI를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CGI로 그럴듯하게’가 아니라 ‘CGI는 거들 뿐’이라는 느낌이랄까. “장소감을 살리려면 실제 건물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CGI에 크게 의존하면 영화가 만화처럼 돼버리고 장소의 특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건축물의 질감과 특징을 살린 세트는 무엇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현실감을 준다.” 시대극에서 고증은 중요하다. 그리고 맥스는 고증과 상상력을 조화롭게 버무릴 줄 아는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SF

<프로메테우스>로 SF에 처음 도전하는 맥스는 “과학적으로 혹은 기술적으로 설명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작업을 시작했다. <에이리언>보다 강력한 충격 효과를 기대한 이들에겐 실망스러웠을지 몰라도, 절제되고 고급스러운 이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영화를 깊이 있게 사유하게 해준다.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조화는 <프로메테우스>에서도 돋보인다. 우주선 프로메테우스의 설계를 들여다보면, 2089년의 미래에 우리가 정말 보게 될 것 같은 진보한 기술들이 대거 집약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글래디에이터> <로빈 후드> 등을 찍으며 대형 세트장을 설계하고 짓는 데 웬만큼 단련된 맥스는 007 시리즈의 세트장으로 유명한 런던 파인우드 스튜디오를 외계 행성으로 탈바꿈시켰고, 과거에서 미래로 타임슬립하는 데도 가뿐히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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