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개밥
<무장원 소걸아>
사극을 한다고 달라질 주성치가 아니었다. <심사관>(1992)에서 주성치는 현대극에서 보여준 엉뚱한 유머를 그대로 사극의 틀 안에 옮겨왔고, <녹정기>(1992)에서는 능청스러운 캐릭터 ‘위소보’로 주성치스러움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정의해주었다. 이즈음 그는 코믹한 캐릭터에 머물지 않고 캐릭터에 휴머니즘의 정서를 가미하기 시작한다. 페이소스가 가미된 주성치 월드의 시작을 찾자면, <무장원 소걸아>(1992)의 개밥 장면을 놓칠 수 없다.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아버지(오맹달)와 아들(주성치)은 온갖 핍박 속에서도 개밥까지 함께 나눠먹으며 부자간의 정을 과시한다. 밥그릇 사이로 오가는 절박한 눈빛은 주성치 연기의 백미로 눈물 없이 보기 힘들다. 주성치를 진지한 연기자로서 호평받게 해준 명장면.
쇼 미 더 래퍼
<당백호점추향>
주성치 사극의 핵심은 그가 개입되는 순간, 사극의 시공간이 사실상 무의미해진다는 데 있다. 이력지 감독의 <당백호점추향>(1993)에서 경계 없는 주성치 사극의 실험은 극대화된다. 주성치가 연기한 당백호는 시와 그림에 능한 명왕조의 인재로 8명의 부인을 거느린 한량. 아티스트 당백호의 예술적 행위가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데, 동생의 알몸을 인간 붓에 걸거나, 맥박을 악기삼아 리믹스 연주를 하는 건 기본. 닭다리 잡고 대사를 랩으로 소화하는 건 애교 수준이다. 특히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현란한 랩으로 자신을 변명하는 장면에서 웃음의 쾌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당백호의 랩에 흠뻑 빠진 여인들의 반응은 주성치의 기예를 바라보는 관객의 심정을 대변한다. 엄지손가락이 자동으로 치켜올라가고, 머리털이 모두 거꾸로 솟아오르고 급기야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순간, 환희에 몸서리를 치던 여인들은 급기야 이렇게 외친다. “그의 창조력은 정말 끝이 없어요.”
유통기한 만년의 사랑
<서유기: 선리기연>
전편 <서유기: 월광보합>(1994)과 함께 묶어 <서유쌍기>로 불리는 두 작품에서 주성치는 무협, 판타지, CG, 멜로, 코믹 등 자신이 지금껏 구사한 모든 요소를 집대성함으로써 주성치 팬들이 인정한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낸다. <서유기: 월광보합>은 요괴들을 내쫓기 위한 지존보(주성치)와 부하들의 코믹한 장면이 주를 이룬다면, <서유기: 선리기연>(1994)은 500년 뒤의 아내(막문위)를 미래에 두고 온 지존보가 자하대선(주인)과 나누는 애틋한 감정 묘사에 충실한 작품이다. 눈물을 흘리며 <중경삼림>의 명대사인 헤어짐을 앞에 두고 “만약 기한을 정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를 읊는 주성치의 절절한 연기에 주목.
뻔뻔한 폭탄
<007 북경특급2>(1996)
국내 개봉 제목 때문에 <007 북경특급>의 속편으로 인식되지만, 별개의 영화다. 원제는 <대내밀탐영영발>로 주성치가 황제의 호위대원 영영발로 등장해 활약한다. 호위대원이란 말이 무색하게 무술에는 문외한. 황제 앞에서 말도 안 되는 발명품을 시연할 때, 주성치식 뻔뻔한 유머가 빛을 발한다. 그중 황제에게 입에서 발사되는 폭탄을 시연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웃음 폭탄이다. 환영의 입안에서 폭탄을 터뜨린 그는, “입이 없어진 것 같아”라고 말할 정도로 부풀어오른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도 태연하게 말한다. “아깝게 실패했어. (입이) 상당히 커졌지만 걱정하지 마.” 화면을 채운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보며, 눈물과 웃음이 교차한다.
요괴와의 줄타기
<서유기: 모험의 시작>(2013)
주성치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작품. 배우 주성치가 앞서 쌓아놓은 아성에 감독 주성치가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스승에게 거대한 요괴를 동요 300수로 무찌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미련하게 행하는 진현상(곽자건). 순진함, 진지함을 갖춘 진현상은 기존에 주성치가 보여준 뺀질함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다. 이토록 진지한 남자가 무너질 때 주는 소소한 웃음이 꽤 쏠쏠하다. 무엇보다 스케일 있는 장면들이 주는 쾌감이 크다. 거대 물고기 요괴가 등장하는 첫 시퀀스에서 구현한 리듬감 있는 장면은 압권. 그가 바구니에 담긴 아기를 요괴로부터 구하기 위해 목조건물들을 지지대로 고군분투하는 장면에서 긴장과 유머를 줄타기할 줄 아는 주성치의 연출적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