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멀쩡한 얼굴로…
<홍콩 마스크>(1995)
90년대 중반 홍콩 영화계에선 유명한 할리우드영화의 저질 패러디영화가 물밀 듯이 쏟아져나왔다. 주성치 역시 빠지면 섭섭할 이름. <홍콩 마스크>가 대표적이다. 장인정신이 엿보이는 할리우드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의 특수효과와는 무관한 마구잡이식 특수효과가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홍콩 마스크>의 과학자 장박사(서금강)는 한번 죽은 이적성(주성치)을 인조인간으로 만들어 되살려주는데 이때 등장하는 각종 실험작들이 괴이하기 짝이 없다. 아버지(오맹달)조차 얼굴이 네모가 된 채로 살아난 이적성을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
몸개그도 왕입니다요
<파괴지왕>(1994)
주성치 영화 중 최고로 유치찬란한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파괴지왕>일 것이다. 마귀근육인(오맹달)은 성룡을 제자로 두었다는 둥 중국 고권법부의 대가라는 둥 모를 소리를 지껄이며 어리숙한 하금은(주성치)을 제자로 받아들인다. 금은은 마귀근육인 아래서 진정한 강자로 거듭난다. 수련과정 중 주성치와 오맹달 콤비의 몸개그가 빛을 발하는 영화. 특수효과라 부르기엔 조금 민망한 각종 특수분장은 또 하나의 주인공. 주성치와 오맹달은 여기저기서 얻어맞고 쉴 새 없이 코피를 흘려대 둘 다 코가 빨갛게 되는데 계속 보고 있으면 그 얼굴이 귀여워 보이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전설의 시작
<서유기: 월광보합>(1994)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을 묶어 <서유쌍기>라고 부르는 주성치 최고의 걸작. 촬영 중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뻔히 짐작되는 아날로그 액션이 주성치 영화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름 <서유쌍기>는 특수분장과 액션이 모두 수준 이상인 대작이다. 실제로도 이때까지의 주성치 영화 중에선 가장 많은 제작비가 사용됐다. 화려한 와이어 액션을 주무기로 삼아 체감시간과는 무관하게 전투 중 오래도록 허공답보를 시전하는 것은 기본이요, 휘황한 무기를 자랑하거나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싸우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화면을 온통 붉고 푸르게 물들이는 강한 조명도 비범함을 더한다. 뭐니뭐니해도 우마왕과 손오공의 최후의 전투가 백미.
매끈한 장르영화로의 도약
<쿵푸허슬>(2005)
주성치 특유의 스타일과 거대 자본이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기까진 <소림축구>(2002)의 성공이 큰 힘이 됐다. 상대적으로 풍족한 상황에서 제작이 논의된 것. 컬럼비아픽처스가 제작했고, 특수효과는 홍콩의 센트로 디지털 픽처스가 맡아 역대 그 어떤 주성치 영화보다도 때깔(?)이 남다르다. 빛보다 빠른 분광경공, 소리로 바위를 깨부수는 음공권뿐만 아니라 배경에 쓰인 CG도 뛰어나다. <쿵푸허슬>의 원제는 <쿵후>(功夫)다. 그만큼 쿵후액션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뜻일 터. 과연 <와호장룡>의 원화평 무술감독과 주성치는 다채롭고 완성도 높은 쿵후 액션을 선보인다.
만듦새도 연출력도 일보전진
<서유기: 모험의 시작>(2013)
<쿵푸허슬>에서 한 단계 진보한 CG와 특수효과 기술은 <서유기: 모험의 시작>에서 한층 깔끔하고 완전해졌다. 물살을 가르고 튀어나오는 물고기 요괴는 실재하는 양 자연스럽고, 단소저(서기)의 무공을 맞고 요괴 무리가 가루가 되는 장면 역시 눈에 닿을 듯 생생하다. 여전사로 변신한 서기가 뽐내는 액션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물론 감독 주성치가 마니아만을 위한 영화를 만든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겠지만 이미 이 정도까지 이르면 그의 영화 역시 매끈한 대중 장르영화에 다름아니다. 육체를 최대치로 활용하는 슬랩스틱 유머는 그대로이지만 주성치의 오랜 팬이라면 <서유쌍기>의 어설픈 특수효과가 조금 그리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