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슬로모션
<도성>(1990)
이른바 ‘주성치 신드롬’이 시작되던 위대한 순간. 특별한 신통력을 지닌 주성치가 친척을 찾아 홍콩으로 오고 오맹달은 그를 십분 활용해 일약 유명해진다. 이후 국제도박대회에 참석한 주성치는 초반의 촌뜨기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고, 올백에 롱코트 차림으로 마치 <정전자>의 주윤발처럼 멋지게 슬로모션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기의 안배로 이뤄낸, 실제로 천천히 움직이며 포착한 경이로운 발걸음이다. 어떤 기계적 조작도 없이 고도의 집중력으로 완성한 장인정신의 승리다.
맥당복 뮤지컬
<도협2>(1991)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를 활용한 도박영화 <도협2>에서 주성치는 1937년의 상하이로 간다. <도성상해탄>이라는 부제에서 보는 것처럼 인기 TV시리즈 <상해탄>의 변주이기도 하다. 시간여행은 물론 세상 모든 것을 거침없이 패러디하는 키치정신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맥도널드를 본떠 ‘맥당복’을 차린 주성치는 ‘광동빵’ 차슈파오를 팔아서 인기를 끄는데, 그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일제히 뮤지컬을 시작하며 “광동빵~”을 흥얼거릴 때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또한 이것은 마이클 잭슨의 명곡 <Smooth Criminal> 뮤직비디오에서 주크박스에 동전을 던져 시작하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기도 하다.
에펠탑 키스
<가유희사>(1992)
황백명, 장국영, 주성치가 형제로 나온 <가유희사>에서 주성치는 바람기 가득한 남자였다. 여기서 주성치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는 바로 장만옥이 연기한 ‘하리옥’, 아마도 할리우드라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사랑과 영혼>과 <터미네이터> 등 할리우드 대중영화를 거침없이 패러디했다. 특히 <사랑과 영혼>처럼 주성치와 장만옥이 함께 도자기를 빚다가 장만옥의 몸이 붕 떠올라 수직으로 고난이도의 키스를 성공시키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른바 두 사람의 애정이 극도로 고양되어야 가능한 ‘에펠탑 키스’다.
삼장법사의 <Only You> 열창
<서유기: 선리기연>(1994)
<서유기: 모험의 시작>이 과거 <서유쌍기>의 프리퀄 같은 영화라면, <서유기: 모험의 시작>의 그 점잖고도 금욕적인 삼장법사가 세월이 흘러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서유기: 선리기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단 너무 말이 많아서 손오공에게 두들겨 맞을 뿐 아니라 심지어 관세음보살도 팔을 내뻗어 그 목을 조를 정도다. 역시 압권은 가사를 개사해 손오공 주성치에게 너무나도 진지하게 <Only You>를 부르는 장면이다. “오공아, 오직 너만이 날 서역으로 데려갈 수 있단다. 오직 너만이 요괴를 무찌를 수 있단다. 다른 이들은 날 거절해도 오직 너만은 기꺼이 지켜주겠지, 오직 너만이.”
양산백으로 변한 돼지요괴
<서유기: 모험의 시작>(2013)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쇼브러더스의 <양산백과 축영태>는 1962년 이한상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고, 서극 감독에 의해 <양축>(1994)으로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다. 베이징 오페라 스타일의 뮤지컬영화인 <양산백과 축영태>에서 축영태는 남자로 변장해서 서원에 입학하고, 양산백과 깊은 우정을 나눈다. 마치 양산백처럼 천천히 경극을 하듯 카메라 앞으로 다가오는 <서유기: 모험의 시작>의 돼지요괴는, <양산백과 축영태>처럼 상대가 홀릴 수밖에 없는 ‘변장’이라는 기본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쇼브러더스에 대한 오마주를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