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포크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영화는 대개 예쁘고 건강하다. 예쁘고 건강해서 그 삶을 닮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연출이다. 미니멀하거나 알록달록한 식탁 세팅, 깔끔한 음식 플레이팅, 주인공들이 입고 있는 옷과 하고 있는 머리모양도 ‘후리’해 보이지만 실은 제대로 정돈돼 있다. 킨포크적 삶을 꿈꾼다 해도 그 스타일링을 일일이 따라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모양내기’를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 영화는 영화다. 킨포크적 삶의 원래 의미를 되새겨보자. 자연 친화적이고 가까운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 등 가진 것에 충만함을 느끼는 삶의 방식. 요약하자면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고인 삶이다.
일본 슬로무비의 시간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그리는 영화로는 일본 슬로무비가 대표적이다. 대체로 별 사건은 없다. 이야기는 잔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며 무언가 일이 벌어지더라도 소동이거나 내면적인 문제에 그친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강조하고 유행에 흔들리지 않으며 대개 함께 이루어가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결말을 맞이한다. 곧 개봉할 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해피 해피 와이너리>(2014)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문제를 안고 소라치 농장으로 모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아니다. 직접 농사지은 밀로 구운 팬케이크, 포도를 일궈 담은 와인, 색색의 접시와 소담한 상차림, 그리고 그 음식들을 즐기며 이웃과 나누는 대화까지. 음식과 대화를 공유하는 한가로운 시간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감독의 전작 <해피 해피 브레드>(2012)도 마찬가지다. 도시 생활을 접고 홋카이도로 돌아온 젊은 부부가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며 동네 사람들과 복닥복닥 보내는 일상이 주된 내용이다.
킨포크적 삶을 다룬 영화에서 혼란스러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는 설정은 일반적이다. <우드잡>(2014)은 도시에서의 자립에 연이어 실패한 청년이 우연히 구석진 마을에 들어와 노동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자신감을 되찾는 이야기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2014)도 쫓기듯 고향으로 내려온 젊은 여성 이치코(하시모토 아이)가 주인공이다. 자급자족하는 농촌 생활을 시작한 이치코는 흙과 땀의 향기로움을 알아가며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행복에 젖는다. <마더 워터>(2010)에선 오래된 마을에 새로 들어와 카페를 차린 여인이 카페를 찾는 주민들과 조금씩 가까워진다.
초기 설정만큼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주인공인 음식을 최대한 먹음직스럽고 건강한 모습으로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마더 워터>의 한 장면. 넘칠 듯 차오른 두부 물을 클로즈업하던 카메라는 그 두부를 먹기 좋게 잘라 옮기는 손길에 머물다 두부가 놓인 그릇에 비치는 햇살에까지 눈길을 준다. 얇고 깨끗한 숟가락으로 두부를 살짝 떠올리는 모양까지 진득하고 천천히 담는다. <하와이언 레시피>(2009)의 비이 할머니(바이쇼 지에코)는 굶주린 레오(오카다 마사키)를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를 한다. 화사하고 밝은 주방에서 비이 할머니가 나무 도마 위에 야채를 다듬는 경쾌한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하얀 접시에 예쁜 요리가 담겨 나오곤 한다.
예쁘게 잘 차려진 음식, 또는 음식을 차려내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영적 충만감까지 느끼게 만드는 것은 킨포크적 삶을 다룬 영화가 성취해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대표적인 영화로 <카모메 식당>(2006)과 <안경>(2007)이 있다. 국내에 시나몬롤이 알려진 데에 <카모메 식당>의 영향을 부정하기란 힘들다. 물론 소박하게 내놓은 주먹밥도 인상적이다. 깔끔한 차림을 한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정성스레 시나몬롤을 말아 굽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작은 행복감과 충족감을 선물받는다. 사치에의 요리는 보는 이, 먹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위한 좋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안경>에서 아침 식사로 간단히 먹는 구운 식빵과 스크럼블에그는 또 어떤가. 구운 식빵을 씹는 바삭거리는 소리를 규칙적으로 듣고 있다보면 어느새 고요한 명상에까지 빠져든다. 자신을 옥죄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떠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의 과감한 여행자를 떠올려보자. 이탈리아로 날아가 ‘잘 먹는 법’을 배우고 스파게티의 참맛에 눈뜬 촌스러운 뉴요커의 기쁨과 행복을 우린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맛깔스러운 음식만 있다면 배경이 꼭 시골이거나 한적한 동네일 필요는 없다. <타이페이 카페스토리>(2010)의 두얼(계륜미)은 분주한 도심 속에서도 월요일엔 치즈케이크, 화요일엔 티라미수, 수요일엔 에클레어, 그리고 향긋한 에스프레소를 친구삼아 건강한 삶을 개척해나갈 줄 안다.
순간을 즐겨라
킨포크적 삶에 가까워지는 또 다른 방법은 ‘그저 이 순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행복의 비밀을 찾아 여행하는 정신과 의사의 모험을 담은 <꾸뻬씨의 행복여행>(2014)에서 헥터(사이먼 페그)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멋진 풍광을 벗삼는 동안 행복의 열쇠를 발견한다. 허탈하리만큼 간단하지만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비밀의 열쇠다. <에브리씽 머스트고>(2010)의 닉(윌 페렐)은 마음뿐만 아니라 집까지 시원하게 비운다. 갑작스럽게 해고된 닉은 아내에게까지 버림받아 짐과 함께 마당에 내던져진다. 수도로 샤워하고, 마당에 놓아둔 소파에서 잠을 자는 노숙 생활을 하던 닉은 짐더미를 뒤지다 옛 물건들을 발견한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물건들을 하나씩 팔아치우며 닉은 ‘무소유’의 이치를 통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여기 진정한 킨포크적 삶을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먹고, 누리는 것의 기원을 탐구하는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다. 보기 좋게 차려진 식탁 대신 흙과 땅으로부터 전해지는 싱싱한 먹거리가 있다. <농장의 금요일>(2006)은 나와 내 가족이 먹는 식료품이라면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해 주말농장에 드나들기 시작한 초보 농부의 생활을 담았다. 서툴게 농장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통해 건강한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올 인 디스티>(2007)의 호프먼(데이비드 리 호프먼)은 어릴 때 맛본 중국 차에 매료돼 그 차가 무엇인지 찾아내 미국에서 차나무를 기르려 한다. 그의 부단한 노력은 사업가들과 정부 관계자까지 감복시킨다. 마침내 호프먼은 그때 그 차와 차맛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 순간의 충족감이란 어떤 세속적인 기쁨에도 비할 바가 못 된다. <포도의 입맞춤>(2008)은 최고의 유기농 와인을 만들기 위한 농부의 정성이 열정적인 음악과 어우러져 특별한 감흥을 선사하는 영화다. 권우정 감독의 <땅의 여자>(2009)도 땀흘리는 것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농사꾼이 되고자 하는 세 여자의 씩씩한 생활기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유대를 대리 체험할 수 있다.
‘킨포크 라이프 스타일’을 낳은 잡지 <킨포크>의 고향은 미국 포틀랜드다. 우리에게 익숙한 킨포크적 삶과는 거리가 멀지만 포틀랜드를 언급하며 이 이름을 빼놓을 수도 없다. 구스 반 산트다. 그의 영화는 예쁘거나 매끄럽지 않다. 하지만 순수한 영혼과 포틀랜드의 정제되지 않은 정서가 펄떡거리며 살아 있다. 데뷔작 <말라노체>(1985)는 포틀랜드 출신의 시인 월트 커티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포틀랜드 변두리에서 촬영됐으며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들도 모두 포틀랜드 출신이다. 포틀랜드 사창가에서 자란 마이크(리버 피닉스)와 포틀랜드 시장의 아들 스캇(키아누 리브스)의 각별한 우정을 그린 <아이다호>(1991)도, 황량한 포틀랜드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비밀을 떠안게 된 소년의 고뇌를 담은 <파라노이드 파크>(2007)도 역시 포틀랜드 땅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