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삼시세끼>는 한끼 밥을 지어먹는 것이 뿌듯하지만 고된 노동임을 보여준다. 직접 기른/잡은 식재료를 툭탁툭탁 손질해 한상 차려내고 나면 그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어김없이 하루 세번 반복된다. 차승원의 고무장갑엔 물 마를 날 없고, 유해진의 손에선 부채 떠날 일 없다. 그것이 인적 드문 만재도의 일상이 예능으로 승화된 자급자족적 삶이다. “한적한 어촌으로 떠나 자연의 시간에 맞춰 심플하게 살아본다”는 프로그램 소개 문구가 무색하게, 자연의 시간은 야속하기만 하다. 앞서 농촌편에서 도시 남자 이서진이 종종 ‘대체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느냐’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투덜대던 것도 다 자연의 시간에 익숙지 않아서였다. 자연의 시간은 공평하고 정직하다. 재촉한다고 술이 빨리 익는 게 아니듯, 자연에 기댄 삶은 기다림을 배우게 한다. “해가 뜨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고기가 없으면 배추와 감자로 대신하는 소박한 삼시세끼”는 또한 “평범함의 위대함”을 일깨워주었다. 함께 먹는 밥이 얼마나 따뜻한지, 밥상머리에서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잘’ 먹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2000년대 초•중반 ‘웰빙’, ‘슬로 라이프’라는 단어로 소화되던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최근엔 ‘킨포크 라이프’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 킨포크(kinfolk)는 친족, 가족을 뜻하는 영어 단어. 이 단어가 몇년 전부터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된 것은 미국 포틀랜드에서 만들어진 잡지 <킨포크> 때문이다. 2011년, 네이선 윌리엄스는 아내 케이티 설 윌리엄스와 몇몇 친구들과 함께 계간지 <킨포크>를 펴냈다. <킨포크>는 소박하게 차린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일상을 감성적인 글과 사진으로 전한다. 이 잡지는 출간 3년 만에 유럽, 호주, 일본 등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었고, 무수한 킨포크족을 양산했다. 느리고 단순하게,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킨포크족이라 부른다. 사실 킨포크 라이프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아니다. 네이선 윌리엄스가 영감을 받은 인물들로 언급한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든지, 미국의 시인이자 농부이자 문명비평가인 웬델 베리 같은 이들이 일찍이 강조한 게 바로 킨포크 라이프였다.
혼자 밥 먹는다는 것
킨포크 라이프가 새삼 주목받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관계의 단절로 고독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네이선 윌리엄스가 펴낸 푸드 스타일링북 <킨포크 테이블>의 한국어 출판을 담당한 윌북의 이주애 편집주간은 킨포크 라이프가 (한국) 대중문화의 키워드로 자리잡게 된 배경을 “소유보다 향유를 지향하는 이케아 세대”, “1인 가족의 급증” 등에서 찾았다. “마음 맞는 친구나 지인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며 그 시간을 향유하는 소박한 만남은 소위 잔치가 아니라서 스트레스가 없고, 오히려 영혼이 힐링되는 느낌을 준다. 거기에 약간의 관음이 덧붙여져 킨포크스러운 식탁과 만남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다.” 제주에 내려간 ‘소길댁’ 이효리처럼 스스로 킨포크족이 되거나, 그런 삶을 지지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킨포크‘스러운’ 삶을 흉내내는 것. 20~30대 젊은 층의 문화 향유 패턴 혹은 취향이 대중문화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요즘 TV는 이케아 세대와 1인 가족의 문화를 반영한 프로그램들로 넘쳐나고 있다. <삼시세끼>를 비롯해 <식샤를 합시다> <냉장고를 부탁해> <수요미식회>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 <한식대첩> <마스터 셰프 코리아> <집밥의 여왕> <테이스티로드> 등 최근의 예능은 ‘먹방’과 ‘쿡방’이 점령했다. “요즘은 누구나 외로운 식사를 한다. 굳이 1인 가족이 아니어도 홀로 밥먹는 일이 많다. 홀로 외롭게 인스턴트식품을 먹고 나면 사실 마음이 배고프다. 그러니 먹방을 봄으로써 함께 먹는 기분을 느끼고,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것 아닐까.” 이주애 편집주간의 얘기다. 맛집 블로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식사 풍경을 보여준 ‘1인 가구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는 <고독한 미식가> <심야식당>류의 일본 드라마가 한국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즌1, 2(4월6일 시즌2 첫 방송)의 연출을 맡은 박준화 PD 역시 “먹는 것의 즐거움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나에게 밥을 차려줬지만 어른이 되고 독립을 하면 누구도 나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 자연히 밥을 먹으며 대화할 상대도 없다. 사람들이 먹방에 열광하는 이유 중엔 따뜻한 가족애를 갈망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방송을 만드는 PD의 입장에서도 먹방은 매력적이다. “<식샤를 합시다>에서 먹방 신만 4분 정도 나간 적이 있다. 별다른 대사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지루해하지 않고 화면에 쉽게 몰입했다.”
박준화 PD의 표현처럼 “‘주말에 뭐 먹었어?’가 월요일 아침 인사말”이 된 요즘, 음식에 관해 뚜렷한 주관을 가진 싱글족과 SNS를 통해 ‘밥친구’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소셜 다이닝은 1인 가구의 증가와 SNS의 확산이 낳은 결과다. 글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는 이 모든 현상을 “외롭고 쓸쓸해서”라고 정리했다. “옛날엔 정치적인 회합이 많았고 지연과 학연의 결속력이 강했는데 최근엔 그 결속력이 약해졌다. 모여서 놀고 싶은 욕망, 그룹을 지어서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욕망은 늘 있기 마련인데 요즘 사람들은 음식으로 그 욕망을 푼다.”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쾌감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쾌감”이라고 박찬일 셰프는 설명했다. “저개발국가 아이들한테 모자를 떠줄 때 돌아오는 쾌감은 그에 비해 멀다.” 요리가 “쿨한 취미”로 자리잡고, 스타 셰프들이 방송에 출연해 팬덤을 형성하고,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골프를 잘 치는 사람보다 더 사회적 인사로 대우받는” 사회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행복, 별거 아니야
<카모메 식당>(2006)의 주인공들은 핀란드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먹으며 소박한 행복을 누린다. 일본에서나 핀란드에서나 사람들은 외롭다. 그 외로움은 함께 먹는 식사 한끼로 수그러들 수 있다고 <카모메 식당>은 얘기한다. 저 혼자 오롯이 행복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것. 초대의 기쁨을 발견하는 것. 킨포크 라이프가 말하는 것도 바로 그거다. 따지고 보면, 때맞춰 찾아와 밥만 먹고 가버리는 어촌계장의 모습이 담긴 <삼시세끼>의 담장 낮은 ‘만재도식 라이프 스타일’과 ‘포틀랜드식 라이프 스타일’이 별반 다를 게 없다. 서로의 레시피, 서로의 음식,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행위를 보며 우리는 외로움을 달랜다. 차승원의 말처럼 “행복, 그거 참 별거 아니”란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