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나도 저들처럼 먹고 싶다
2015-03-17
글 : 장영엽 (편집장)
<삼시세끼> 시리즈 등 킨포크 라이프를 반영한 TV 프로그램

최근 ‘킨포크’라는 트렌드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는 매체는 단연 TV다.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는, ‘킨포크’적인 순간들을 포착해 소개한다.

tvN <삼시세끼-어촌편>

tvN <삼시세끼-어촌편> 5화

고단함도 고단함이지만, 당장 브라운관 속으로 숟가락을 뻗어 한 숟갈 입에 넣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어촌편>은 끼니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풍성한 먹거리들로 가득하다. 제작진으로부터 어떤 혹독한 미션을 받든, 임기응변이라기엔 너무도 훌륭한 퀄리티의 음식을 척척 내놓는 ‘차줌마’ 차승원과 그런 그를 묵묵히 돕는 ‘바깥양반’ 유해진의 어촌 생활기는 <삼시세끼-농촌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노련한 생활의 지혜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프렌치토스트와 오렌지마멀레이드를 만들어야 했던 5화다. 주부 9단의 요리 실력을 가진 차승원마저 긴장하게 만들었던 이 요리를 위해, 두 사람은 아궁이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포일에 싸인 빵을 들여다본다. “정말 안 될 줄 알았다”던 빵이 안쪽까지 고루 잘 익었음을 확인했을 때의 경이로운 마음.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해 “우하하하” 웃어넘기던 유해진의 미소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한화였다.

tvN <삼시세끼-어촌편>

tvN <삼시세끼-농촌편> 2화

키우고, 따고, 만들고, 먹은 다음 설거지까지 마치면 어느새 다음 끼니를 만들 차례다. ‘킨포크’ 예능의 선두주자라 부를 법한 tvN의 <삼시세끼-농촌편>(2014년 12월26일 방송 종료)은 매일 세번씩 밥상에 오르내리는 음식들과 먹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방송이다. 게스트에게 대접할 고기 한근을 얻기 위해 이서진과 옥택연이 죽기살기로 광활하게 펼쳐진 수수밭의 수수를 베어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일어나지만, 농촌 생활의 가장 큰 미덕은 땀 흘린 만큼 얻어낸 무언가를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순간에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출연진이 염소 잭슨으로부터 얻은 우유로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만드는 2화다. 같은 공간에서 얼굴 맞대고 살아가던, 나와 다른 존재가 만들어낸 무엇이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또 다른 형태를 지닌 먹거리로 거듭나는 과정. 그 완벽한 순환의 과정을 2화에서 목격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 삶은 결코 일방향이 될 수 없다.

SBS <모던 파머>

SBS <모던파머> 6화

배추로 대동단결! 귀농한 청년들의 좌충우돌 농촌 적응기를 다룬 SBS의 <모던파머>(2014년 12월27일 방송 종료)는 도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의 심리를 공략한 드라마였다.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물려준 1만평의 땅에 배추를 심어 팔아 빚도 갚고 앨범도 내겠다는 네 청년들의 생각은 너무 안일한 결정이었음이 금세 탄로난다(이는 실제로 큰 고민 없이 귀농한 이들이 머지않아 깨닫게 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배추 그 까짓 거 임마, 씨뿌리고, 물주고, 그러면 쑥쑥 자라고, 다 자란 거 칼로 쓱 도려내면 되는 거지”라던 민기(이홍기) 일행이 마을에서 ‘농신’이라고 불리는 만구에게 호되게 당하는 6화가 재미있다. “뒤돌아서면 또 자라는 게 풀이여!” 배추의 ‘배’자도 모르는 민기 일행을 타박하는 만구지만 “모종은 신생아 같은 존재”라는 ‘모종 신생아론’을 설파하며 초보 농부들에게 금쪽같은 조언을 설파하기도 한다. 배추밭에 그들이 심은 모종처럼, 자기도 모르는 새 성장해나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귀엽고도 짠하다.

SBS <에코빌리지 즐거운家>

SBS <에코빌리지 즐거운家> 3화

이런저런 자연의 재료들을 모아 뚝딱 지어, 며칠 동안 몸을 기거할 공간을 만들어야 했던 <정글의 법칙>과는 또 다르다. 출연진이 살고 싶은 집을 직접 짓고, 그곳에서의 생활 또한 예정되어 있는 <에코빌리지 즐거운家>는 그동안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여겨져왔던 건축의 과정을 보다 알기 쉽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분명하다. 1억원이라는 예산 아래 친환경 건축자재를 이용하고, 자연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에너지 제로하우스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집의 기초를 완성하는 과정을 조명하는 이 프로그램의 초반부는 예능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연예인들이 출연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워 보인다. 뙤약볕 아래서 기초공사에 한창인 그들의 모습을 조명하는 3화에선, 장시간의 노동에 지쳐 출연진(블락비의 민혁)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드라마틱한 순간도 존재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기에 말할 힘도 없이 작업에 임해야 하는 연예인들을 화면에 담는 예능. 그러나 그 매 순간의 고단함이 보는 이들에겐 진솔함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매력일 것이다.

MBC <사남일녀> 마지막 화

일련의 연예인들이 시골 어르신들과 며칠 동안 함께 생활한다는 설정의 예능 프로그램은 종종 있어왔다. 지난해 5월23일에 종영한 MBC의 <사남일녀>도 기본 설정은 그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출연진인 김구라와 김재원, 서장훈과 김민종, 이하늬가 어르신들의 아들과 딸 노릇을 하며 가족처럼 지낸다는 점에서 <사남일녀>는 시골 버라이어티와 가족 예능을 결합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평생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온 가상의 ‘엄마, 아빠’에게 “진짜 대단타…”라며 눈물짓는 이하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허술하게 어촌 생활을 이어오던 서장훈이 마지막 미션으로 옥수수엿을 출연진과 함께 만들며 했던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엿을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앞으로 엿이나 먹으라는 말은 절대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다. (웃음)” 새벽잠을 줄여가며 아궁이 앞을 오래 지키다가 불씨를 꺼뜨릴 뻔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소하고 담백한 생활의 발견이 거기에 있다.

올리브 채널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 13화

오늘 당장이라도 도시를 떠나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밥상을 끼니마다 차려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한 대로만 살 수 없다는 건 모든 도시인의 공통된 딜레마다. 올리브 채널의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는 당장의 변화를 꿈꾸지만 선뜻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에게 유용할 프로그램이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주목하는 건강한 식단을 소개하는 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아니다. 김치고등어볶음밥과 묵볶이, 고추짜장과 알리오올리오. 오늘 당장 퇴근 뒤에 장을 본 뒤 집에서 시도해볼 법한 레시피들이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엔 가득하다. 이 프로그램의 ‘킨포크’적인 의미는 시간과 정성에 있다기보다는 ‘나눔’에 있는 듯하다. 나만큼이나 요리에 서툰 남자들도 간장 양념을 만들어 달걀을 올린 두부조림을 만든다는 데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용기. 그게 바로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