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스탭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다 (6)
2015-03-31
글 : 이화정
글 : 이주현
글 : 김현수
글 : 정지혜 (객원기자)
글 : 윤혜지
글 : 이예지
사진 : 최성열

조준희 1985

CJ CGV 매니저 / 2009년 CGV 극장 매니저로 입사해 현재 CGV평촌에서 근무 중이다.

1 학창 시절 영화관 가는 게 낙이었다. 그때부터 극장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군 제대 후, CGV인천에서 고객 응대 업무인 ‘미소지기’ 아르바이트를 2년 넘게 했다. 내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꽤 좋아하더라. 그 뒤 정직원 채용에 응시해 합격했다.
2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화티켓 발권부터 매점 이용법을 알려주는 대관행사를 진행했을 때다. 발달장애를 가진 한 친구가 영화를 보고 부모님과 다시 극장을 찾았고 그때마다 발권을 도왔다. 몇달 뒤 그 친구가 혼자 영화관에 와서 티켓을 끊더라. 정말 보람됐다.
3 간혹 불만을 이야기하며 욕설을 하는 고객들이 있다. 당황스럽다.
4 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쉴 때만큼은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는다. 그게 아니라면 집에서 영화를 즐긴다. 일주일에 최소 2편은 꼭 본다.
5 성과제다. 아내도 CGV 극장에서 일한다. 맞벌이도 하고 있고 수입이 부족하지는 않다.
6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는 스탭들이 많다는 걸 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극장과 현장 스탭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안대호 1985

포스터 디자이너 / 포스터 디자인 회사 ‘빛나는’의 디자인팀장으로 <카트>(2014), <강남 1970>(2015), <트라이브>(2015) 등의 포스터를 제작했다.

1 사진과 디자인 편집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대중의 주목도도 높고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발휘할 여지도 많아 보였다. 엣나인필름에서 디자이너로 2년 정도 일하다 프리랜서 생활을 2년 가까이 했다.
2 어머니와 외출을 했는데 버스정류장 광고판에도, 버스 광고판에도 죄다 내가 작업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어머니께 ‘내가 만들었다’고 하니 뿌듯해하시더라.
3 작업량이 살인적이다. 특히 지난여름부터 가을까지는 하루 이틀 빼고는 매일 새벽까지 일했다.
4 술을 좋아한다. 영화 외의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마음도 편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5 초창기에는 저축은 생각도 못할 만큼 적은 액수를 받았다. 지금은 또래에 비해 많이 받는다. 실력이 곧 돈이다.
6 주말에 대뜸 연락해서 일하라는 현장 스탭들이 있다. 디자이너가 아무리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언제나 일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혜연 1987

기획 프로듀서 / 중앙대 영화과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CJ 영화사업부문 영화기획팀에서 인턴으로 일한 뒤, 2014년에 덱스터 스튜디오 컨텐츠 사업부에 입사했다.

1 중학생 때 이와이 슌지의 다큐멘터리였나 메이킹 필름이었나, 그가 영화 촬영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는 베일에 싸인 무엇이었는데, 너무도 자유롭게 영화 찍는 그의 모습을 보고 영화를 동경하게 됐다. 대학 땐 유럽 예술영화를 좋아했지만, 대학 졸업영화제를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2 기획 아이템 발표 끝냈을 때, 시놉시스 매듭 지었을 때 뿌듯하긴 하다. 하지만 그건 오늘 할 일을 끝냈을 때의 개운함이지 오래 가는 성취감은 아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나아졌다는 확신이 들 때 성취감이 크다.
3 없다. 지금 내 삶의 1순위는 영화다.
4 하루를 시작할 때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하루를 마감할 때 일기를 쓴다. 기록광이다.
5 입사 당시엔 증명된 게 없는 병아리라 내 연봉 수준이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매년 연봉이 오르는 게 아니고 30대가 코앞이라 거기서 좀 김이 빠진다.
6 영화계에는 영원한 제국도 없고 불변의 답도 없다. 좋은 것들을 다 모아놓아도 재미없을 수 있는 게 영화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이들도 지속적인 노력과 모험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산업이 활기차지지 않을까.

박경서 1984

제작 /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2003)을 시작으로 <역도산>(2004), <박쥐>(2009),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그리고 <파란만장>(2010)과 <고진감래>(2013)에서 제작실장을 맡았다.

1 <몽정기>(2002) 오디션 보러 가는 친구 따라 네오아카데미에 갔다가 스탭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현장에 뛰어들었는데 <2424>(2002)의 김삼진 프로듀서가 이끌어줬다.
2 <파란만장>은 재능기부에 가까운 수준으로 스탭들이 고생했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어보자’는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완성되니 스탭들이 기뻐하더라. 그때가 제일 짜릿했다.
3 제작실장도 을인데 마치 갑인 것처럼 스탭들이 바라볼 때 상처받는다.
4 사생활이 없을 정도로 현장에 매진하다 보면 위기가 찾아올 여유도 없다.
5 제작 스탭들이 기술 스탭보다 수익이 적다. 프리 프로덕션부터 후반작업까지 관여할 때는 그 기간의 중요성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6 스탭들이 정상적으로 일하는 시간, 혹은 쉬는 시간이 개선되길 바란다.

박상희 1986

수입 및 마케팅 / <마린>(2012), <나에게서 온 편지>(2013) 등을 수입하고 <아무르>(2012),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4) 등 마케팅 업무를 진행했다.

1 영화 보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좋았다. 대학 졸업 후 2010년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영화 수입과 홍보 대행 업무를 시작했다. 3년 정도 일하다 영화 수입을 본격적으로 하고자 지난해 영화사 찬란으로 옮겼다.
2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고 수입해 마케팅까지 진행한 <나에게서 온 편지>가 국내에서 1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를 꼽겠다. 찬란에 새 둥지를 틀고 처음으로 마케팅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흥행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3 해외 감독님의 서면 인터뷰 답변이 끝끝내 오지 않아 기자들에게 사과 전화를 돌리기 직전이나 마켓 준비를 충분히 못했는데 출국 시간이 다가왔을 때면 끝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4 작은 실수는 바로 인정하고 사태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일을 하다 허무함이 찾아올 때면 새벽기도를 간다.
5 많은 수입을 내는 게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만족한다.
6 등급 심의 일정이 명확하게 고지되지 않아 개봉일을 맞추기 힘들 때가 많다. 심의의 기준과 진행 과정이 조금 더 명확했으면 좋겠다.

전우열 1982

3D 스테레오그래퍼 / EBS 3D다큐멘터리 <불멸의 마야>(2014) 입체 슈퍼바이저, <터널 3D>(2014) 입체 슈퍼바이저 및 3D 스토리보드 작가로 일했다. 최근에는 360 VR S3D 단편 <Time Parradox VR>의 제작 및 VR 슈퍼바이저를 맡았다.

1 영화, 방송 타이틀 제작 1인 기업을 운영하다가 <아바타>(2009)를 보고는 ‘아, 3D가 내 길이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입체 연출 과정을 수료, 스테레오그래퍼, 입체 드라마 제작, 3D 애프터이펙츠(After Effects) 강사로 활동 중이다.
2 제작 기획서가 통과되어 UHD 3D 단편 <Stain3D>(2013)를 만들 때 정말 보람을 느꼈다. S3D영화의 끝판왕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완성시켰다.
3 <Stain3D>를 열심히 찍어놓고는 백업 자료를 잃었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손실된 데이터가 많았다.
4 일이 없을 때가 위기다. 그럴 때는 정부지원사업제도나 강의, 다른 일을 수주받아서 위기 탈출을 하곤 한다. 3D 스토리보드 제작도 그 같은 일 중 하나다.
5 다양한 입체 관련 일을 진행하는 덕분에 대기업 과장급 수준을 벌고 있다.
6 바람이라기보다는, 입체 시장이 죽었다며 위기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입체 기술은 현재 확고한 시장이 형성됐다.

임혜진 1989

편집 / <최종병기 활>(2011), <끝까지 간다>(2013), <명량>(2014), <내 심장을 쏴라>(2014) 등에 참여. C47 포스트 스튜디오 소속. 4년차.

1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서 영상연출을 공부했다. 당시 영화 수업을 맡았던 선생님께서 수업의 끝자락 즈음 ‘훗날 우리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셨다. 그러면서 칠판에 ‘12월28일 그랑까페’라고 적으셨다.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 상영일과 장소였다. 아마도 그때의 설렘으로 영화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2 내가 참여한 첫 상업영화 <최종병기 활>의 티켓을 부모님께 선물한 날.
3 일을 배우며 시간이 쌓이고 책임감이 늘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고민도 는다. 점점 더 욕심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4 포스트 프로덕션의 첫 단계가 편집이다. 처음부터 그림을 하나하나 짜맞춰간다는 마음으로, 편견 없이 데일리 소스 영상을 보려 한다.
5 1∼2년차 땐 부족하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런데 점점 비영화계 친구들과 비교가 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6 열정페이.

김혜경 1982

편집 / <신기전>(2008) 현장편집을 시작으로 다큐멘터리 <아유레디?>(2013), 개봉을 앞둔 <블랙가스펠2> <돌연변이> 편집을 했다. 편집업체에서 근무하다 불합리한 문화를 체감하고, 직접 편집업체 ‘mpeg’를 운영하고 있다.

1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학과에서 전문사 과정으로 편집을 전공했다. 현장 편집이 막 도입되던 2003년 즈음 선배의 권유로 일을 시작했다.
2 편집자는 최초의 관객이자 감독을 도와주는 서포터다. 내 의견을 제시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재밌다.
3 아직 포기할 정도로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4 본질을 잊지 않는다. 좌절의 순간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되새긴다.
5 주변인들에게 인간된 도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은 된다. 과외로 대학에서 편집 강의를 해서 얻는 수익도 있다.
6 한국영화 예산이 커지면서 안정적으로 가려다보니 현장에서 너무 많은 앵글과 컷을 찍는 추세다. 예전 영화들이 러프하지만 힘이 있었다면 요즘은 컷마다 평균치의 결과가 나와 아쉽다.

김현우 1983

스크립터 / <청담보살>(2009), <헤드>(2011), <돈 크라이 마미>(2012), <런닝맨>(2012)에 이어 올해 개봉할 <무뢰한>에 스크립터로 참여했다.

1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7급 공무원>(2009)에서 연출부 막내로 일을 시작했다. 그 뒤 스크립터 자리를 소개 받았는데 ‘스크립터를 하면 모니터는 원없이 볼 수 있겠구나’ 싶더라. 나를 영화로 이끈 작품은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 고등학생 때 <세친구>를 보고 ‘이런 영화가 진짜구나’ 싶었다.
2 <무뢰한>을 통해 전도연 선배님을 만났을 때. <무뢰한>의 캐스팅이 이루어지기 전, 이 좋은 작품을 하기엔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 같아서 스크립터 일을 고사했었다. 그런데 도연 선배님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염치없이 다시 연락해 최선을 다하겠으니 시켜달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전도연이다.
3 스탭들의 얘기를 듣지 않는 일방통행식 감독을 만났을 때.
4 스크립터는 감독의 보좌관이라고 생각한다. 스탭이나 배우도 스크립터를 붙잡고 이런저런 불만을 많이 토로한다. 결국 스크립터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5 연출부 막내 때 받은 돈에서 지금 40만원 더 받는다. 스크립터로 일할 때 월 평균 150만~170만원을 받았다.
6 결과만큼 과정도 중시됐으면 좋겠다. 스탭과 단역배우들이 부당하게 다치고 욕먹는 일이 생겨도 흥행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예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하나 더, 직급과 포지션이 아니라 능력과 경력에 맞는 페이가 지급됐으면 좋겠다. 현재 영화판의 페이는 한마디로 ‘관례’다. 연출팀과 제작팀 막내가 촬영팀 막내보다 페이가 적은 건 어디서 시작된 관례인지 모르겠다.

이정은 1988

투자제작 / 2012년 오퍼스 픽쳐스(유나이티드 픽쳐스)에 입사해 <감시자들>(2013), <황제를 위하여>(2014), <좋은 친구들>(2014), <빅매치>(2014) 투자를 진행했다. 현재는 리틀빅픽쳐스 투자제작팀에서 투자, 제작관리를 맡고 있다.

1 고등학생 때 <씨네21>에 실린 여성기획자 소개 기사를 읽고 기획자의 꿈을 키웠다. 일찍 현장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2 영화제 피칭 행사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회사에 강력 추천해 결국 <좋은 친구들>로 관객과 만났다. 그때의 기분이란!
3 좋은 영화를 알아주길 바라며 개봉시켰지만 시장에서 외면받았을 때.
4 무기력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꿈을 좇는 열정적인 사람들을 만나 에너지를 얻는다.
5 월급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현장 영화인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 일반 중소기업 회사원 수준으로 받고 있다.
6 인센티브 제도 등의 효율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임금 해결 방안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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