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스탭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다 (2)
2015-03-31
글 : 이화정
글 : 이주현
글 : 김현수
글 : 정지혜 (객원기자)
글 : 윤혜지
글 : 이예지
사진 : 최성열

김정섭 1985

극장개발 / 입사 3년차. 광명 롯데시네마와 동부산 롯데시네마 극장 개발에 참여했다.

1 전공은 토목공학이지만 영화를 좋아했고 서비스업에도 관심이 있어 롯데엔터테인먼트 공채에 지원했다. 처음엔 극장 매니저로 일하다 평소 흥미를 가지고 있던 극장개발팀으로 부서이동을 하게 되었다. 극장개발팀이라고 하면 생소해 보일 텐데, 극장을 만들 장소를 선정하고 최종적으로 오픈시키는 중요한 부서이다.
2 극장을 오픈할 때. 긴 공사를 마치고 롯데시네마 간판 달고 관객이 찾아오는 모습을 직접 볼 때 짜릿한 성취감을 느낀다.
3 어릴 적 건설현장 인부, 택배 상하차 등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봐서 지금의 생활엔 불만이 없다. 스스로의 업무 속도나 과정에 만족하지 못할 때 아쉽기는 하다.
4 선배들에게 깍듯이 인사 잘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메모하는 것. 사소한 지시도 무조건 메모하고 본다.
5 얼마 전 결혼을 했는데, 외벌이하고 있지만 생활에 어려움은 없다. 만족하는 편이다.
6 고칠 점은 아니고 바라는 점은 있다. 좋은 영화가 많아야 극장에 관객도 많이 온다. 스토리가 탄탄한 한국영화가 많아지길 바란다.

서윤희 1986

영화배급 / 스폰지하우스와 마운틴픽쳐스를 거쳐 2012년에 KT&G 상상마당 입사. <환상 속의 그대>(2013), <경복>(2012), <러시안 소설>(2012), <셔틀콕>(2013), <족구왕>(2013), <꿈보다 해몽>(2014) 등 배급•마케팅을 했다.

1 대학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했다. 뜻이 있어 간 게 아니라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당시 스폰지하우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이 좋아 열심히 영화를 보러 다녔다. 마침 스탭 모집 공고가 나서 지원했다. 그때 처음으로 취향에 맞는 또래들을 만났던 것 같다. 그 기억이 좋았다. 그 뒤 당시 스폰지 배급 부장이었던 현 마운틴픽쳐스 이재식 대표님이 독립하면서 배급•마케팅 일을 시작했다.
2 기대 이상의 스코어가 나온 순간 모든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처음으로 ‘흥행의 맛’을 알려준 작품은 <아마존의 눈물>(2010). 함께 일한 감독님들이 ‘배급과 마케팅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해줬을 때도 뿌듯하다.
3 갈비뼈에 염증이 생긴 적이 있다.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나’ 싶더라. 지난해엔 <족구왕>을 끝낸 뒤 긴장이 풀렸는지 대상포진에 걸렸다. 개봉주가 되면 예민해진다. 상영관이 확정될 때까지 압박감이 심하다.
4 이제는 극장의 성향, 극장 프로그래머의 성향에 맞춰 일을 처리하는 법을 경험으로 익힌 것 같다. 결국 배급은 영업이다. 보험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일을 먼저 배우고 배급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5 연봉이 높은 업계가 아니지만 솔직히 대리급이면 260만~27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본다. 보너스나 야근수당도 없으니까.
6 임금 체불. 미수금이 너무 쌓여 문 닫는 회사 얘기를 종종 듣는데, 받아야 할 돈을 못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김수민 1989

촬영 / <로맨스 조>(2011) 촬영팀, <거인>(2014) 촬영감독, <자유의 언덕>(2014) 조명팀, <암살>(2015) 촬영팀 막내로 참여. 4년째 촬영 일을 하고 있다.

1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졸업. 중•고등학생 때 사진반 활동을 했는데, 사진이 순간포착이라면 영화는 시간의 연속성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이쪽이 내겐 훨씬 흥미롭더라.
2 어머니랑 함께 극장에서 내가 촬영한 <거인>을 보는데 뿌듯하더라.
3 <암살> 작업을 통해 상업영화 시스템을 경험해봤는데, 독립영화 작업 때 감독과 논의하며 자유롭게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는 것과 달리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상업영화의 도제시스템 역시 적응이 필요하다.
4 촬영감독으로 일도 해보고, 옆에서 촬영감독님을 지켜보면서 느낀 건 촬영만 잘한다고 좋은 촬영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촬영감독의 말 한마디로 현장에서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관계를 이끌어나가는 것의 중요성이 크다.
5 상업영화는 한달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급여지만, 독립영화는 정말 차비 정도 벌이도 감내해야 한다. 합의하에 급여가 없을 때도 있지만, 이를 악용해서 전혀 미안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았을 때 결과물도 더 잘 나오지 않을까.
6 분야의 특성상 여성 비율이 적다. 얼마 전에도 들어갈 뻔한 작품이 있었는데 이미 그 팀에 여자팀원이 있어서 못 들어갔다. 여자 팀원이 한명은 용인돼도 숙소 문제 등으로 둘은 힘들다는 것이다. 점점 의식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은 개선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계속 인력이 배출되고 있는 만큼 먼저 참여한 여성 촬영인으로서 내 역할도 큰 것 같다.

신건수 1986

사운드 / C47스튜디오 입사 4년차. <회사원>(2012), <끝까지 간다>(2014), <내 심장을 쏴라>(2015) 등의 사운드 작업을 했다.

1 대학에서 음향제작을 전공했다. 그때 들은 영상음향디자인 수업에서, 교수님이 영화에 맞게 소리를 디자인하고 믹싱하는 모습을 본 게 계기였다. 졸업 후 C47스튜디오에 입사해 인턴을 거쳐 현재는 다이얼로그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2 어느 날 친구가 <끝까지 간다>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며 크레딧의 내 이름 인증사진을 보내줬을 때.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크레딧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이 계속 영화를 하게 해주는 것 같다. 또, C47스튜디오는 또래의 젊은 영화인들이 많다. 단합이 잘돼서 즐겁게 일하는 것도 성취감의 일부다.
3 어릴 땐 바빠서 사생활을 갖기 힘들다고 느낄 때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실수를 할 때가 그렇다.
4 그저 업무를 차근차근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 과정을 나누어 순차적으로 작업하다보면 영화를 3∼4번 이상 보게 된다.
5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일하다 보면 만족스러운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6 스탭들의 전반적인 처우 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태우 1985

배급 / 쇼박스 배급팀. 영화의 저작권이나 판권, 디지털 서비스, 온라인 뉴미디어 서비스, 저작권 관련 판권 업무를 담당한다. IPTV, 뉴미디어 시장이 커지면서 마케팅, 프로모션 등 매니징하는 일의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1 전공은 원래 지리학인데, 콘텐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한국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어서 쇼박스 공채로 2012년 입사했다.
2 제작하는 사람들이 작품 한편에 집중한다면 이 일은 좀더 넓게 보게 되는 업무다. 라인업, 경쟁상황, 타깃층을 분석하고, 시장의 트렌드를 익히고 하이브리드하게 일을 해나가면 액티브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특히 <신의 한 수>(2014)는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와 경쟁해서 잘되어 회자된 작품이라 뿌듯하더라.
3 자사영화가 안 됐을 때는 타격이 있다. 기대작이 예상외로 너무 외면받을 때, 내 포지션의 실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4 상업영화의 배급팀은 비즈니스와 가장 맞닿아 있다보니 수치화가 체득된 것 같다. 각 회사 배급팀끼리 실시간 스코어를 공유하는 ‘밴드’가 있는데 오전 10시, 12시, 오후 2시, 5시가 되면 자연스레 휴대폰을 체크한다.
5 회사원이니 주는대로 받는다.
6 불법 다운로드가 근절됐으면 한다.

오수현 1990

투자배급 / CJ E&M 중국투자 배급팀의 팀원으로 한•중 합작영화 <이별계약>(2013), <20세여 다시 한번>(2014), <평안도>(2015,개봉예정) 등의 투자배급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대학교 교직원으로 일했다. 반복적인 일상이 답답하더라. 좀더 다이내믹한 일을 하고 싶었다. 중국에서 11년간 살고 국제학교를 나와 영어, 중국어에 특기가 있다. 2013년 CJ E&M 배급팀에 공채로 입사했다.
2 <20세여 다시 한번> 중국 개봉 때 소도시 개봉 마케팅을 지원했다. 그곳 관객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처럼 영화 관람 환경에 많이 노출되지 않았던 터라 호응이 컸다.
3 육체적으로 힘들 때가 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개봉 지원 투어를 하는데, 지난해 겨울은 평균 영하 20도였다.
4 중국에서 살면서 습득한 중국 문화, 영화, 사람들이 나에겐 큰 자산이다. 지금 중국 영화 시장에서 통용되는 트렌드, 중국 영화 시장의 현재를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5 일반 대기업에 비해 영화쪽은 낮은 편이다. 그래도 80%는 저축하고 있다.
6 한국 영화계가 중국을 바라는 시선에 변화가 필요하다. 중국에 가면 무조건 흥행한다거나, 발전이 늦다는 건 옛말이다. 지난 1년 동안에도 중국 영화계가 기술이나 스토리 면에서 크게 발전했다.

김미라 1980

영화제 자막 / 여성, 환경, 아시아나, 제천, 충무로, 부천영화제 등 다수 국내 영화제 자막팀장 및 기술팀장을 거쳐 현재는 예비 사회적 기업 ‘21세기 자막단’ 팀장. 주로 영화제 기술자막운영 업무 등 대외 업무 및 총무, 회계를 담당한다.

1 7년 정도 영화제 자막팀 업무를 하다가 정당한 스탭 처우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들과 ‘영화계의 애플을 만들자’며 회사를 차렸다.
2 지난해 12월 정선군에서 ‘영화 만드는 이들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자’는 취지로 메이킹필름영화제를 개최해 초청 게스트와 관객이 정말 즐거워했을 때.
3 자막가에게 반복 관람 및 야근, 철야는 필수지만 의지를 꺾는 주요인이다. 더불어 생전 처음 해보는 각종 회사 업무를 해야 할 때 이걸 왜 하고 있나 싶다.
4 복싱을 시작했다. 샌드백을 치면 생각도 정리되고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5 영화제 이후 3개월은 지나야 임금을 받을 수 있었던 때보다는 안정적이지만 액수는 별 차이 없다. 최저임금보다는 조금 더 받는 정도. 회사의 미래를 위해 직책 관계 없이 모두가 같은 월급을 받는다.
6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투자, 즉 스탭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전영석 1984

조명 / <방울토마토>(2007)를 시작으로 <심야의 FM>(2010), <회사원>(2012), <런닝맨>(2013), <인간중독>(2014), <맨홀>(2014) 등 30여편의 영화 조명팀을 거쳐 <돌연변이>(2015)로 감독 데뷔했다.

1 영화과 재학 시절 미디액트에서 다양한 촬영 파트 업무를 접했는데 조명이 적성에 맞더라. 이후 제대하자마자 현장 조명팀에 들어갔다.
2 <돌연변이>가 첫 장편 상업영화 작업이다. 촬영감독과 함께 기획 단계에서 논의했던 대로 조명을 구현해냈고 감독님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벅찼다.
3 내 처지를 동정하는 외부의 시선에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더 자극받아서 사진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공부하게 됐다.
4 막내들이 하루 종일 쇳덩이만 옮길 때도 꼭 모니터를 보라고 권한다. 어떤 조명 설치에 일조했는지 알게 되면 보람을 느끼니까.
5 1년에 평균 두 작품하고 아르바이트 좀 하면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은 없는 정도였다. 그런데 결혼하고는 여유가 없어졌다.
6 돈도 못 벌고 힘드니까 막내들이 한 작품 하고 나간다. 충무로 인력난이 심각하다. 보다 즐거운 현장이 되기를 바란다.

곽진아 1988

애니메이터 / 한성대 애니메이션학과 졸업 후, 2012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에 입사.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 <소나기>(2015 개봉예정), <무녀도>(2015 개봉예정) 등의 캐릭터, 콘티, 레이아웃 작업을 진행했다.

1 애니메이션광이다. 특히 ‘한국적 정서’를 그림으로 옮기는 데 공을 들이는 ‘연필로 명상하기’의 지향에 공감한다. 안재훈 감독님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내 이것저것 여쭤보다 입사까지 했다.
2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의 개봉 전, 네이버에서 온라인 시사를 할 때다. 관객의 뜨거운 반응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데 정말 뿌듯했다. 캐릭터의 움직임이 잘 구현됐을 때도 기분이 최고다.
3 수백장의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리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공들인 그림이 마음에 안 들 때도 속상하다.
4 동료들이 그린 그림을 보며 자극받는다. 재미있고 오래도록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내 꿈을 되새긴다.
5 적은 액수지만 지금에 만족한다.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적금도 들 수 있으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웃음)
6 입사 전, ‘연필로 명상하기’의 작품 <소중한 날의 꿈>(2011)을 보려고 했는데 상영관이 없더라. 극장에 보다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길. 예술영화전용관이 건강하게 살아남길 바란다.

문진경 1984

제작 / 사나이픽쳐스 제작부 막내로 곧 크랭크인하게 될 이일형 감독의 <검사외전>에 참여하고 있다.

1 미술을 전공하고 희망제작소 인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홍보팀을 거쳐, 명필름 문화재단에서 아트센터 기획업무를 하다 올해부터 제작팀으로 전향했다. 현장 경험이 없어서 지원했다가 몇곳은 떨어졌는데, 올해 초 사나이픽쳐스 제작부에 합류했다. 최종 목표는 프로듀서다. 늦게 시작한 만큼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2 영화제 일할 때는 폐막식 때 벅차더라. 곧 극장에서 <검사외전>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걸 보는 순간 해냈다는 기분이 들 것 같다.
3 아직까지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 영화계에서 일한 지 4년차인데 지칠 때마다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줘서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
4 친화력, 공감 형성이 좋은 편이다. 영화쪽 일을 늦게 시작한 만큼 빠른 시간에 어필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컸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 두려움이 없다. 업무에 완벽을 기하는 만큼 이런 강점도 일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본다.
5 내 또래 영화인들 모두 느끼는 것처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다. 결정적으로 제작부는 밤 12시 넘어 퇴근하니 돈 쓸 시간이 없다. (웃음)
6 표준계약서를 기반으로 한 스탭들의 처우 개선 문제가 가장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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