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스탭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다 (4)
2015-03-31
글 : 이화정
글 : 이주현
글 : 김현수
글 : 정지혜 (객원기자)
글 : 윤혜지
글 : 이예지
사진 : 최성열

강바다 1983

영화제 프로그래밍 / 제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했다. 9회 때는 티켓 관련 스탭이 됐고 11회 때부터 프로그램팀에서 일했다. 프로그램팀 경력 7년차다.

1 전공은 불문학이지만 원래는 연출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다닐 때 영화제 일을 주로 하는 동아리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영화제 자원활동가부터 시작해 프로그래머까지 됐다.
2 모든 프로그래밍을 완료하고 상영시간표를 짤 때와 매진작이 나왔을 때가 가장 기쁘다. 우리 영화제를 통해 발굴된, 혹은 재조명된 감독님이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는 걸 볼 때도 보람을 느낀다.
3 어떤 일을 조율할 때 내외부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정말 힘들다.
4 일단 밖으로 나간다. 사무실 밖에서 광합성도 하고 바깥공기도 쐬고 들어오면 머리끝까지 올라온 스트레스가 좀 가라앉는다.
5 공부를 많이 했거나 기업에서 일하다 온 프로그래머라면 일에 비해 급여가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자원활동가에서 팀원부터 시작한 사람이라 ‘소폭 상승’에도 그럭저럭 만족한다. 물론 더 받으면 더 좋고. (웃음)
6 생각만큼 여성감독이 많지 않더라. 단편작업은 종종 하는데 장편으로 데뷔하는 수가 월등히 적다. 유리천장이 분명 있다.

송재호 1989

조명 / 대진대학교 연극영화학부 졸업.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으로 조명 일을 시작해 현재 김경석 조명감독의 세컨드로 일하고 있다. <고지전>(2011), <화차>(2011), <하울링>(2011), <집으로 가는 길>(2013), <제보자>(2014), <강남 1970>(2014), <히말라야> 등에 참여했다.

1 학교에서 단편 작업을 할 때 밤에 낮 신을 찍는 걸 보고 놀랐다. 조명의 힘이었다.
2 처음 세컨드를 단 게 <제보자>다. 의욕이 넘쳐나 뭐든 다 하려 했다.
3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군대 전역 직후 현장으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잠시 고민했다. 고민하는 와중에도 <조명 핸드북>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자연스레 현장으로 돌아갔다. (웃음)
4 <후궁: 제왕의 첩>(2012)에 참여했을 때부터 어느 라이트를 어떻게 썼는지 데이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게 다 나의 데이터가 된다.
5 평균적으로 작품당 세컨드가 1천만원 초반쯤 받는다. 여기서 계약이 잘되면 더 받고 안 되면 덜 받는 거다.
6 예산 규모에 따라 유연하게 인력 운용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 팀이 세명이라고 치자. 블록버스터든 저예산영화든 무조건 딱 세명만 투입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어느 정도 인력 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좋지 않을까.

이성중 1981

촬영 / 한국영화아카데미 26기 출신으로 <소름>(2001), <귀향>(2009), <사랑이 무서워>(2011), <무명인>(2014), <허삼관>(2015) 등 다수의 촬영팀을 거쳤다. <소셜포비아>가 첫 장편 촬영 데뷔작이다.

1 2000년 초, 한계레영화제작학교 11기로 들어가 영화제작 전반에 대해 배웠다. 이후 많은 현장을 경험했는데 특히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이인원 촬영감독으로부터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작업방식에 대해 배웠다. 20살 때 보고 충격받았던 <매그놀리아>의 로버트 엘스윗 촬영감독을 좋아하며 꿈을 키웠다.
2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자는 마음으로 <소셜포비아>에 임했다. 35살 때는 직접 촬영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꿈을 하나 이룬 지금.
3 현장에서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때, 입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나의 재능을 탓하게 될 때 힘들었다.
4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갖거나 산에 오른다.
5 어렵다. 일단 없으면 안 쓰고 버틴다. 아직 부모님과 살고 있는 것도 약간의 도움이 됐다.
6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스탭들이 더이상 현장을 떠나지 않도록 현장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어린 친구들이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강진경 1991

예고편 / 누리픽쳐스를 거쳐 예고편 제작사 ‘TOMM&CLOUD’에 입사해 <도희야>(2014), <좋은 친구들>(2014),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캐릭터 예고편, <쎄시봉>(2014), <순수의 시대>(2014) 스틸 예고편 제작에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1 영상디자인학을 전공했는데 그래픽보다 편집이 적성에 맞았다. 누리픽쳐스에서 외화 예고편을 작업하다가 <몬스터> 예고편을 보고 반해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다. 면접 볼 때 한 시간 반 정도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냈고 그날 합격했다.
2 예고편만의 리듬을 만드는 매력이 굉장하다. 직접 만든 예고편을 보고 관객이 반응해줄 때.
3 솔직히 지겹거나 힘든 일은 거의 없다. 입사한 지 1년이 지난 줄도 몰랐다. 다만, 급하게 작업하느라 자막이 틀려 지적당했을 때는 힘들었다.
4 한해에 평균 13편 정도 작업하는데 스케줄 관리 잘하면 야근, 철야, 주말 근무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해외여행도 다닌다. 그럴 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5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다. 업계 평균 이상으로 받는다.
6 졸업 후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정보가 부족해서 고생했다. 젊은 영화인들에게 폭넓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주연 1984

3D 촬영 / <복면달호>(2007) 조명팀을 시작으로 <국가대표>(2009),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1), <글러브>(2011) 촬영팀을 거쳐 <미스터 고>(2013) 이후 ‘덱스터’ 촬영팀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중국 3D영화 2편과 <조이>(2015), <루시드 드림>(2015)에 참여했다.

1 뮤직비디오에 꽂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영화 현장이 좋았다. 미술, 촬영, 조명팀 등을 거쳤지만 촬영팀이 제일 좋았다. 3D 촬영은 <미스터 고>에 합류하면서 배웠다.
2 특정 영화를 꼽을 수 없을 만큼 모든 작업을 끝마치고 나면 똑같이 뿌듯하고 성취감도 느낀다.
3 <미스터 고> 끝내고 제일 허탈했다. 극장에서 4번 이상 봤다. 몇년 동안 고생한 작품이라.
4 촬영팀은 일 끝나면 손톱 밑이 새까매진다. 그 상태로 극장에 가서 좋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 힘들었던 기억을 잊게 된다.
5 연봉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직책은 과장이고 1년에 2~3작품 꾸준하게 일할 때만큼은 받고 있는 것 같다. 엑셀 잘하는 촬영팀원이 희귀하다. (웃음)
6 현장 스탭들의 처우가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정민우 1986

특수효과 / <1942>(2012), <해무>(2014), <마담뺑덕>(2014), 2015년 개봉예정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연평해전> <암살>에 참여. 데몰리션에서 일한 지 3년 조금 넘었다.

1 어릴 때부터 전쟁영화를 좋아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와 <태극기 휘날리며>(2003)를 10번 이상 봤다. 어학연수차 미국에 있을 때 구겐하임뮤지엄에서 화약예술가 싸이궈창의 전시를 보고 나도 화약으로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2 현장에선 성취감보다 안도감이 더 크다. 혹시나 실수해서 우리 팀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있다.
3 한파 속에서 일할 때. 중국에서 <1942> 찍을 때 영하 18도였나 그랬다. 진짜 집에 가고 싶더라.
4 배움에 대한 욕심은 좋지만 현장에서 지나친 성취욕을 부리는 건 위험하다.
5 첫 월급이 180만원이었다. 보너스도 꼬박꼬박 나오고, 여름휴가도 있다.
6 CG 의존도가 필요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다. 특수효과(SFX)로 구현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한데 “그냥 CG로 하면 안 돼?”라는 말을 들으면 섭섭하다.

강지현 1984

프로듀서 /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프로듀싱 전공했고 <잉투기>(2013) 프로듀서를 거쳐 정지우 감독의 <4등> 기획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한다.

1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독립영화의 매력을 알게 됐고 학업 욕구도 강해져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과정(28기)을 밟았다.
2 함께 고생했던 배우들이 인정받을 때 뿌듯하다.
3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을 잃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힘들다. 정신력을 단단하게 단련시켜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4 힘들 땐 어린 친구들을 만난다. 어려서부터 영상에 친숙한 아이들에게 자극받는다. 영화과 출신에 교직이수자라면 기간제 교사를 적극 추천한다.
5 일이 없을 때는 기간제 교사를 한다.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계약하며 월급을 받으니 아무래도 안정적이다. 학교에서 젊은 교사를 선호하다 보니 오래 하기는 힘들 것 같다.
6 영화를 찍는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전여빈 1989

배우 / 2014년 LGBT영화제 트레일러, 민규동 감독의 <간신>(2015)에 출연했고 박수연 감독의 독립장편 <인류! 사랑해 울지마!>에서 주연을 맡았다.

1 의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피터 위어의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배우의 길로 선회, 어머니와 오빠를 설득시켰고 방송연예과에 진학했다. 무대 일을 하다가 인연이 닿아 필름있수다에 들어가게 됐다.
2 타인 앞에 서서 마음을 꺼내 보일 때, 내가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그 시선을 즐기게 되는 순간 역시 그렇다.
3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다양한 사람들 틈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을 때.
4 다른 영화나 영상 공연 혹은 인터뷰를 접하며 자극받는다. 타인에게서 받는 에너지는 나 스스로에게 살고 싶은, 활동하고 싶은 동기를 부여해준다. 조용히 기도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5 연극영화과 입시 레슨과 모델 일로 용돈벌이를 조금 하고 있는데 일반 회사원의 최저 월급에 해당할 것 같다. 아직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고 있다.
6 배우들의 몸값에 비해 현장 스탭에게 돌아가는 수혜가 공정하지 않다. 또 수면 아래 있는 독립영화들이 빛을 발할 수 있게 영화 상영의 기회가 많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안유미 1983

의상 / <혈의 누>(2005), <형사: Duelist>(2005), <음란서생>(2006)의 의상팀을 거쳐 <날아라 펭귄>(2009), <혜화, 동>(2011),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우아한 거짓말>(2014), <손님>(2015), <장수상회>(2015)의 의상팀장으로 일했다.

1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던 중, 친구 소개로 <혈의 누> 의상팀 면접을 봤다.
2 <혈의 누> 시사회에서 크레딧에 올라간 이름을 확인했을 때, 영화 보면서 ‘저 장면 찍을 때 어디 숨어 있었지, 저때 엄청 혼났지’ 등의 에피소드가 생각날 때.
3 만날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막내 시절,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추위에 취약해 겨울 야외 촬영은 완전 쥐약이다.
4 쉴 때만큼은 스스로에게 상을 주듯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쉰다. 그렇게 일주일만 쉬면 일하러 가고 싶어진다. (웃음)
5 영화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 수익은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작품 쉴 때면 생활비 걱정이 앞선다. 아껴야 한다.
6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자리잡기 전만 해도 프리 프로덕션 때 아예 돈 한 푼 못 받고 일부터 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기술 파트에 비해 의상 파트는 경력 인정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10년차 의상팀장이 5년차 기술팀원보다 적은 액수를 받기도 하니까.

허철녕 1986

다큐멘터리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및 전문사 과정 중에 <옥화의 집>(2013), 옴니버스 다큐 <밀양, 반가운 손님>(2014)을 작업했고 지금은 밀양에 내려가 <말해의 4계절>이란 후속작을 준비 중이다.

1 공부하다 보니 극영화보다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확신할 수 없는 다큐멘터리에 매료됐다. 영상 아카이브 기획 의뢰를 받아 밀양에 내려갔다가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삶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말해 할머니를 만났다. 일종의 영상 일기를 작업 중이다.
2 현장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면 극영화 작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기확신이 올 때가 있다. 물론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3 작업에 확신이 생기지 않을 때와 생활고를 겪을 때.
4 인도 ‘닥엣지’ 다큐 피칭 마켓에서 만난 중국의 장난(Zhang Nan) 감독이 “작업의 위기를 다른 작업으로 극복한다”기에 가슴에 새기고 있다.
5 일반 노동자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칠 수익으로 산다. 다큐멘터리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서 홍보 영상 아르바이트 등을 한다. 지출을 줄이며 사는 수밖에.
6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정치 논리를 떠나 인디다큐페스티발과 같은 영화제는 꼭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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