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는 그간 미완의 대기들이 창조적 역량을 발산할 수 있는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현실의 표현 제약에서 벗어나 순수한 충동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 전주영화제가 기대하는 유형의 도전은 올해도 젊은 감독들의 영화에서 발견된다. 이들의 작품은 영화예술의 새로운 미학을 탐구하려는 소명을 가진 전주영화제의 성격과 호응하는 지점에 서 있다.
‘국제경쟁’에 포함된 작품들에 먼저 눈길이 간다. 빙햄 브라이언트와 카일 몰잔의 <포 더 플라즈마>는 슈퍼 16mm 포맷의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유목민적인 영화이다. 인터넷 모금을 통해 제작비를 변통한 이 영화는 영화비평지 <필름 코멘트>가 선정한 2014년 베스트영화 목록에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는 외딴 숲에서 산불 감시원으로 만난 두 친구의 괴이한 동거담이다. SF와 재난영화, 호러의 기운을 비관습적으로 사용한 이 영화는 컴퓨터 모니터 이미지, 최면적인 음악을 사용하여 괴상한 공동체의 무드를 잡아낸다. <자상>은 근래에 나온 가장 혁신적인 영화 중 하나이다. 멕시코의 신예 리카르도 실바는 마약과 섹스, 폭력이 만연한 멕시코 비주류 세계의 실상을 믿을 수 없이 대담한 방식으로 묘사한다. 생존을 위해 거리에서 육박전을 벌이는 거친 남자들과 삶을 포기한 듯 마약과 섹스에 몰두하는 홈리스 커플, 포르노 여배우를 인터뷰하면서 남자친구와의 섹스를 카메라에 담는 미국인 감독 등 연결점이 불분명한 사람들을 하나로 엮는다. 예측을 불허하는 돌발적인 장면들이 분출하는 영화를 통해 우리는 날카로운 칼날로 베인 것 같은 아픔을 절감하게 된다.
마리안느 타르티외의 데뷔작 <불안>(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스펙트럼’)은 유럽통합이 야기한 문제와 통합의 이상이 지닌 불구성에 대해 문답한다. 상가 안전요원에서 간호사로 전직을 고려 중인 이민자 청년이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소년 갱들과 대립하면서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아델로 알려진 아델 엑사르코풀로스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이민자들의 공동체를 감싼 편집증의 기운을 잡아내면서 이방인들 사이의 반목과 불안한 사회 시스템의 중심을 겨냥한다. 2014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칸 뮈제시의 데뷔작 <시바스>(‘스펙트럼’)는 투견장에서 빈사 상태가 된 개 시바스와 그를 데려다 키우는 소년 아슬란의 이야기이다. 아슬란과 시바스의 대당관계는 승자독식의 냉혹한 생리에 대한 비정한 성찰을 담고 있다.
비르질 베르니에의 <머큐리얼스>(익스팬디드 시네마)는 하나의 장르와 스타일로 요약하기 힘든 새로운 영화 체험을 선사한다. 쌍둥이 빌딩 머큐리얼스를 축으로 그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 흑인 경비원과 루마니아에서 온 이민자 소녀, 그녀와 친교를 맺는 또 다른 소녀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엮어놓는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정서를 짐작하기 힘든 이 영화는 어떤 논리적 추정도 허용하지 않은 채 추상적으로 반향하도록 만든다. 장 뤽 고다르나 장 루슈,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적 유산을 계승하고 있는 작품이다. <빈센트>(‘스펙트럼’)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슈퍼히어로영화이다. 물에 몸이 닿으면 초인적인 능력을 얻게 되는 남자 빈센트가 주인공이다. 슈퍼히어로영화의 관습을 뭉개버리는 이 영화의 대담한 화술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인간의 진짜 능력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토마스 살바도르는 장르를 창조적으로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