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시간을 포착하는 두 가지 방법
2015-04-28
글 : 우혜경 (영화평론가)
스페셜 포커스- 왕빙: 관찰의 예술
<아버지와 아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스페셜 포커스 섹션에서는 왕빙의 다양한 작품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준비되어 있다. ‘왕빙: 관찰의 예술’이라는 부제하에 진행될 이번 프로그램은 왕빙의 최근작 다큐멘터리 세편과 각각의 촬영현장에서 왕빙 자신이 찍은 40점의 사진들이 함께 상영, 전시된다. 왕빙의 사진 작품들은 이미 지난해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파리-베이징 갤러리(Galerie Paris-Beijing), 스페인 등지에서 몇 차례 소개된 바 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실험영상작가 전하영이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세편의 다큐멘터리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중국의 시골 마을,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며 석공으로 일하는 아버지 카이의 일상을 담은 이 작품은 이제껏 왕빙이 주목해왔던 ‘관찰의 시선’을 좀더 극단까지 밀고 나간다. 카메라는 침대 한개가 겨우 들어갈 좁은 방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는 두 아이의 지루한 일상을 지켜본다. 아이들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쉴 새 없이 만지작거리거나 텔레비전에 텅 빈 시선을 던진다. 영화는 이들에게 더 다가가지도,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해가 저물어 방 안이 깜깜해져도 아이가 일어나 불을 켤 때까지 카메라는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그저 기다린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움직임조차 거의 없는 고정 숏들을 수분간 지켜보고 있노라면 영화에서 ‘시간’이라는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스펙트럼 섹션에 초청된 바 있다.

<흔적>

<흔적>은 왕빙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짧은’ 상영시간(29분)을 가진 다큐멘터리로, 실험적인 성격이 좀더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1957년 중국의 반우파투쟁 당시, 강제노동수용소에 교화의 명목으로 잡혀왔던 수천명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작품은 이제는 사라진 수용소 터에서 과거의 ‘흔적’들을 찾는다. 이를 위해 왕빙은 자신이 즐겨 사용해온 고정 카메라 대신 핸드헬드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끝도 없이 이어진 황량한 벌판을 이리저리 헤매며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유골들과 작은 소지품들을 화면에 담는다. 흑백으로 기록된 이 영상은 많은 부분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적이 드문 산속, 원시인처럼 동굴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담은 <이름 없는 남자>는 2010년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몇 차례 소개된 적이 있다. 영화는 어떠한 대사나 부연설명도 없이 주인공 남자의 동선을 따라 농사를 짓고, 물을 길어 밥을 하고 동굴에서 잠을 청하는 반복적 과정에 동행한다. 동굴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촬영하다 보니 카메라는 의도치 않게 종종 대상에게 가까이 다가서 있지만, 심정적으로 동요되지 않고 적정한 수준의 대상과의 거리를 찾아내는 왕빙의 직관적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름 없는 남자>

시간을 멈추어 세운 사진보다 움직이는 이미지인 영화에 훨씬 더 많이 매혹된다는 왕빙이지만, 그가 이 세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함께 촬영한 40장의 사진은 현실을 바라보는 왕빙의 시선을 영화보다 좀더 명확히 보여준다. 인스톨 형식으로도 상영될 영화와 함께 감상한다면 영화에서 왕빙이 담고 싶어 했던 시간을 사진이 어떻게 포착해내는지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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