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는 현재 한국영화의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종빈, 나홍진, 류승완 등 선이 굵은 감독들과 한국영화의 어떤 남성성, 페르소나로서 호흡을 맞춰온 하정우가 이번에는 최동훈 감독과 만났다. 확고한 아이덴티티의 흥행배우와 대중영화의 화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감독과의 만남은 기실 ‘믿고 보는’ 그것이다. 하정우는 <암살>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했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시나리오, 캐릭터의 매력, 이 세 가지가 전부다. 애초부터 최동훈 감독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꾼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범죄의 재구성>(2004)부터 <도둑들>(2012)까지 장르적인 쾌감을 주는 작품들 아닌가.” 지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술자리에서 최동훈 감독과 작품을 함께하기로 한 하정우는 “<암살> 시나리오를 받고 배역 하와이 피스톨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하정우가 맡은 하와이 피스톨은 돈만 주면 국적과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처리해주는 상하이의 청부살인업자다. 그는 친일파 암살작전의 정보를 입수한 누군가로부터 거액의 의뢰를 받고 경성으로 건너가 암살단 안옥윤, 속사포, 황덕삼의 뒤를 쫓는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명칭으로 살아가는 이 캐릭터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하정우는 첫 번째로, “이름에 흥미가 생겼다”고 한다. 웨스턴 고전 <석양의 건맨>(1967)의 ‘이름 없는 자’처럼, 실명 대신 영화적으로 설정된 이름에 매료되었다는 것. “이름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의미가 크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캐릭터의 이름들은 <도둑들>의 뽀빠이, 예니콜 등 매력적이면서도 본질과 닿아 있다. 이름은 인물에게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암살>에서도 하와이 피스톨, 속사포 등 재미있는 이름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영화적이고, 흥미를 돋우지 않나.”
이런 근사한 이름을 지닌 하와이 피스톨의 두 번째 매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와 낭만을 잃지 않는 것”이다. <군도: 민란의 시대>(2014)의 도치는 뜨거운 에너지가 넘치는 정의의 편이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의 최형배가 폭력의 세계에 속한 ‘나쁜 놈’이라면, <암살>의 하와이 피스톨은 선도 악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의 인물이다. 또한 긴박한 상황에서도 낭만과 여유를 아는, 어찌보면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멋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정우는 연기를 함에 있어 “한번도 멋있음을 연기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멋있어 보이려는 연기를 한 적은 없다. 멋이 있다면,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멋있는 것이고, 나는 그저 캐릭터를 잘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제스처를 하기보단 캐릭터 자체를 이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하정우는, 드러나지 않은 캐릭터의 면모에 대해서도 설정을 잡고 분석을 거쳤다. “감독님과의 소통을 통해 하와이 피스톨의 감춰진 과거를 잡아나갔다. 하와이 피스톨의 곁을 지키는 ‘영감’(오달수)의 캐릭터로 유추하는 방식이다. 나는 모든 연기를 서브 텍스트에 기반해서 한다. 대사 한줄을 말해도 전부 설정에 근거하여 목적성을 갖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특별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기하지는 않는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게끔 하는 거다.”
하정우는 올해 초 연출작 <허삼관>을 개봉시켰고, 최근 LA와 뉴욕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하며 연출과 그림의 영역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이 활동들의 공통적인 목적은 보는 이에게 꿈을 주는 것이다. “관객이 극장에 와서 잠시나마 힘든 현실을 잊고 온전히 그 시간을 즐겼으면 좋겠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꿈과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으며 창작 활동을 하는 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인터뷰 후 바로 <아가씨>의 촬영을 위해 나고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는 다소 피로해 보였지만 동시에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아가씨> 촬영 후에는 김성훈 감독의 <터널>에 출연하며, 블랙코미디가 될 차기 연출작도 준비할 그는 앞으로도 공사다망할 예정. 지금도 하정우라는 세계는 넓어지고 깊어지는 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