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를 경험하는 여자, 금주. 평소에는 딸아이를 둔 다정한 엄마로, 능력을 인정받은 미술관 관장으로 평범한 삶을 꾸려간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힘에 홀리듯 빙의를 경험한 후의 금주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럴 때면 자신이 끔찍이도 아끼는 딸에게조차 매정한 엄마가 되고 그녀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자꾸만 불행이 닥친다.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증상의 원인이 자신도 미처 몰랐던 과거사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후, 신내림이라는 운명 앞에 서게 된 그녀가 정말로 두려운 건 혹여나 이 운명의 사슬이 딸에게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데 있다. 어머니로서 금주는 어떻게든 이 불행의 연쇄고리를 깨부수고 싶다.
<퇴마: 무녀굴>의 금주 역을 받아든 유선의 머릿속도 덩달아 복잡해졌다. “악귀가 씌인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생각해보면 상당히 두려운 일이다. 그걸 연기로 표현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더라. 특히나 내가 출산을 한 뒤라 아이와 함께 지내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시간과 이 영화 속 금주의 정서로 지내야 하는 시간 사이의 차이가 너무도 컸다. 영화를 준비하면 금주의 영향 아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나의 일상에 좋지 않은 기운으로 작용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 <4인용 식탁>(2003), <가발>(2005), <검은집>(2007) 등을 통해 꾸준히 공포 스릴러물의 현장을 경험해온 유선이었지만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보이지 않는 환영과의 싸움을 해내야 하는 이번만큼은 선택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녀는 “이 역할이 다른 배우에게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되게 아쉬울 것 같았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는데 욕심부터 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를 <퇴마: 무녀굴>로 이끈 건 김휘 감독이었다. “첫 미팅 때, 감독님께 내 속깊은 생각을 다 털어놨다. 빙의되는 연기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믿는 나의 걱정, 즉 빙의를 무속의 방식에만 기대어 해결하는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도 말씀드렸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되레 ‘같이 그 부분을 풀어보자’고 하며 나를 싹 누그려뜨려주시더라. 날카롭게 서 있던 내 마음이 금세 녹아내렸다. 감독님께서 악령을 퇴치하려는 강한 목표 의식을 가진 강 목사(천호진)와 무속신앙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가보자고 한 것도 내 생각을 반영해주신 것 같아 감사했다. 그러니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더라. (웃음)”
어려움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데 큰 힘을 얻은 그녀는 이후 자신이 할 일은 오직 연기에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각적 특수효과나 사운드 작업을 통해 극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공포물의 특성상, 현장에서 배우는 종종 추상적인 공포의 대상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시나리오상에는 ‘벽이 갈라지면서 뱀이 다가오고 마지막에 금주의 눈이 빨갛게 변한다’고 나와 있는데 사실 맨 벽이잖나.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며 나 혼자 호흡을 끌어올리고 두려움에 떨다 괴성까지 질러야 했다. 처음에는 정말 머쓱하더라. 또 ‘컷’ 소리가 나면 뻘쭘하고. 그러니 내가 집중하지 않으면 정말 끝이었다. 그래서인지 매번 촬영하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꼭 표현해보고 싶었던 건, 엄마로서의 금주의 마음이었다. “한국영화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점점 줄고 있다. 그런데 금주는 빙의를 통해 대물림되는 원혼과 맞닥뜨리고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성애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극을 이끈다. 금주는 자신의 고통보다는 딸이 위험해질까봐 걱정하고 딸을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어 한다. 여배우로서, 실제로 딸을 둔 엄마로서 내가 더없이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삶의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에너지를 얻은 그녀는 조금씩 더 여유를 갖고 연기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한다.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그동안 준비해온 작품들을 하나씩 선보일 계획이다. 개봉예정인 <히말라야>(2015)도 그중 하나다. 특별출연이라 역할은 작지만 그녀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엄홍길 대장 역의 황정민 선배가 같이 하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오셨다. 극단 학전 출신 선후배 사이로 <검은집> 때도 그렇고 늘 살뜰히 챙겨주신다. 심지어 내 결혼식 축가도 불러주셨다. 내 롤모델이자 살면서 끝까지 같이 가고 싶은 분이다.” 그리고 중국 진출작인 <시칠리아 햇빛아래>(2015)에도 출연해 이탈리아에서 남동생(이준기)과 함께 삶을 일궈나가는 생활력 강한 여성, 수정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생활을 건강하게 꾸려나가는 게 곧 배우로서 롱런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생각하는 유선. 그녀의 기운찬 선택들의 목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