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 무녀굴>에서 차예련이 연기한 미스터리 다큐 PD 혜인은 매사에 털털하지만 궁금한 것은 절대로 못 참는 집요함을 지닌 캐릭터다. 그녀는 취재를 통해서 퇴마사이자 정신과 전문의 진명(김성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의 이면을 관객 앞에 펼쳐 보인다. 그러니까 혜인은 직접 원혼을 상대하거나 혹은 빙의되는 등 전면에 나서는 역할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반전을 담당하는 캐릭터는 더더욱 아니다. 호러퀸 차예련이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공포영화에 주연이 아닌 “리액션이 중심인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사실 차예련은 ‘한국의 호러퀸’이란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귀한 여배우다. 그건 아마도 데뷔작 <여고괴담4: 목소리>(2005)와 <므이>(2007)로 이어지는 동안, 그러니까 지금보다 한국 공포영화가 좀더 활발하게 제작되던 시기에 그녀가 대중에게 남긴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후 스크린이 아니라 TV드라마와 패션모델로서의 활동 등을 통해 차가운 도시 여성 차예련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그녀 스스로도 “고정된 이미지를 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지금도 꾸준히 섭외가 들어오는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한동안 멀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밝고 맹랑한 역할이나 부잣집 딸을 연기해도” 또 다시 벗어나고 싶은 대상이 늘어났다. 그래서 “그럴 바엔 뭐든 부딪쳐서 나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는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김상만 감독의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2014)에서 비운의 성우 배재철을 내조하는 아내 윤희는 최근 변화한 차예련으로서의 존재감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 캐릭터였다. 전편의 저조한 흥행 성적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아무튼 그녀가 후속작으로 다시 공포영화를 선택한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특정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녀가 김휘 감독의 <퇴마: 무녀굴>에 대해 가졌던 기대는 “<이웃사람>처럼 한명이 주인공인 영화가 아니라 여러 명의 주인공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끌고 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연기로는 정평이 난 선배들과 이야기로 승부하는 영화에 함께 참여한다는 기대”가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의 폭을 넓혀준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말마따나 <퇴마: 무녀굴>은 사운드와 편집으로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공포영화 특유의 기교를 남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누가 왜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그 절절한 사연이 탄탄한 설득력을 지닌다. 관객은 다큐멘터리 PD 혜인의 시선을 빌려 영화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의 근원을 캐묻게 될 것이다.
지광 역의 김혜성이 보기에 현장에서 차예련은 “어이없는 NG를 내면 동료 배우들이 자지러지는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녀가 호러퀸으로서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다.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선입견 때문인지 사람들이 선뜻 먼저 말을 못 걸던 때도 있었”음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 그녀는 “이제 말끔한 옷 갖춰 입고 나오는 부잣집 딸이 아니라 바닥에서 구를 때도 됐다”라고 말한다. “워낙 활동적이라서 남자들이 하는 웬만한 운동은 모두 소화 가능하다. (웃음)” 다만, 그녀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액션 스릴러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린 지 오래다. 최근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소탈한 사진들로 팬들을 즐겁게 하는 것도 달라진 차예련의 모습을 대중에게 더 보여주고 싶어서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망가지는 건 어떨까. 그로 인해 대중의 인식이 달라지면 배우로서도 배역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웃음)” 다리가 길어 긴 보폭을 타고난 그녀가 같지만 또 다른 배우의 매력을 성큼성큼 뽐낼 수 있는 기회가 <퇴마: 무녀굴> 이후에도 쭉쭉 이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