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감독 편이 되어 찍겠다는 장면을 찍게 해준다
2015-09-22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탐정: 더 비기닝> 윤창숙 프로듀서

<탐정: 더 비기닝>(2015) 프로듀서 <상의원>(2014) 프로듀서 <남자사용설명서>(2012) 프로듀서 <심장이 뛴다>(2010) 라인 프로듀서 <시>(2010) 라인 프로듀서 <유감스러운 도시>(2009) 라인 프로듀서 <원스 어 폰 어 타임>(2007) 라인 프로듀서 <폭력써클>(2006) 제작관리 <무영검>(2005) 제작부장 <역전의 명수>(2005) 제작부장 <국화꽃 향기>(2003) 제작부 <흑수선>(2001) 제작부 <비천무>(2000) 제작부

언론 시사가 코앞이라 제작사 크리픽쳐스 사무실이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다. “<탐정: 더 비기닝> 후반작업은 다 끝났다. 내일이 기술 시사라 오늘 CG만 좀 고치면 된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두달 내리 후반작업에 매진했던 까닭에 여유가 그리 많진 않은 일정이었지만 말이다.” 윤창숙 프로듀서의 목소리는 곧 개봉을 앞둔 프로듀서라고 하기엔 차분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상의원> 크랭크인을 며칠 앞두었을 때 작은 체구의 그녀는 소처럼 일만 했고, 그 모습이 무척 듬직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윤창숙 프로듀서가 <탐정: 더 비기닝>에 합류한 건 촬영 시작하기 두달을 앞둔 시점이었다. 제작자, 감독과 함께 아이템을 개발하는 프로듀서에 비해 그녀에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당연히 많지 않았다.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님에도 그녀가 이 프로젝트를 맡은 건 시나리오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빠나 작은아빠나 남동생 같은 주변 남자들이 떠올랐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사는 남자들 말이다.” 누가 캐스팅됐는지 모른 채 주인공 대만과 노 형사에 권상우와 성동일을 각각 떠올렸다고 하니 영화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났다. 뒤늦게 합류했던 까닭에 예산에 맞춰 프로덕션을 꾸리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잡았던 예산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주어진 예산에 어떻게 맞출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도저히 그 예산으로 프로덕션을 정상적으로 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김정훈 감독과 상의해 시나리오 초반에 배치된 액션 신을 다른 장면으로 대체하고, 로케이션 공간을 약간 줄여야 했다. 프로듀서로서 3번째 참여한 영화 <탐정: 더 비기닝>은 “예산에 맞춰 장면마다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잘 구분하는 게 중요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여러 문제 때문에 감독이 찍고 싶어 하는 장면을 포기해야 할 때 감독 편이 되어 그 장면을 꼭 찍게 하는 프로듀서.” 그녀와 함께 <남자사용설명서>와 <상의원>을 연달아 작업한 이원석 감독의 말을 들어보면 윤창숙 프로듀서는 감독에게 무척이나 든든한 존재다.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오정세가 발가벗은 채로 차를 운전해 도망가다가 음주단속에 걸리는 장면이 상황이 여의치 않아 찍을 수 없게 됐다. 윤 프로듀서가 상심해 있던 이 감독의 편이 되어주었다. “감독이 찍고 싶다고 하면 쉽게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윤 프로듀서가 뒤에서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찍게 하기 위해 엄청난 일을 하는 걸 알고서 무척 고맙고, 미안했다. 그것도 남들에게 티 안 내면서 말이다”라는 게 이원석 감독의 회상이다. 윤 프로듀서는 “그 장면만큼 이원석과 오정세라는 사람의 개성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에 꼭 찍으라고 했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신뢰감을 구축한 윤창숙 프로듀서와 이원석 감독, 둘은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상의원>까지 연달아 함께했다.

프로듀서가 감독 편이 되어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산, 날씨 등 현장의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포기하거나 다른 장면으로 대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대안이 처음에 했던 구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때도 있지 않은가. 그녀 역시 여러 영화를 하면서 현장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플랜B’를 꺼낼 때도 많았다. 그런 그녀에게 라인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이창동 감독의 <시>는 영화를 대하는 자세를 다시 배울 수 있게끔 한 작품이었다. “<시>는 그전까지 경험했던 상업영화와 여러모로 다른 시스템이었다. 대안이라는 게 없었다. 이창동 감독님께서는 애초에 정한 그림을 절대 바꾸는 일이 없었다. 현장 상황이 최악이라도 그 안에서 최선을 얻기 위해 애쓰셨다. 촬영이 끝나면 감독님께서 조명팀 아시바를 직접 들고 뒷정리를 함께하시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연출부와 제작부가 함께 감독님 방에 모여 오늘 찍은 장면과 내일 찍을 장면에 대해 대화하는 자리도 좋았다. 그게 프로듀서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영화를 하는 데 많은 공부가 됐다.”

현장 프로듀서와 기획 프로듀서의 구분이 무의미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윤창숙 프로듀서의 경력은 전자에 더 가깝다. 막연하게 편집기사가 꿈이었던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선배의 추천으로 크랭크인 이틀 전에 중국 현장에 합류했던 <비천무>가 그녀의 첫 충무로 경력이었다. 그 후 <흑수선> <국화꽃 향기> <역전의 명수>를 거쳐 라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원스 어 폰 어 타임>과 <유감스러운 도시>, 최근의 <탐정: 더 비기닝>까지 지난 15년 동안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제작부 경력을 두루 거쳐온 그다. 어느 하나 애착이 가지 않는 작품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수중 촬영, 불 특수효과, 항공 촬영, 해외 로케이션, 통제하기가 어려운 서울역 촬영 등 한 작품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경험한, 스펙트럼이 넓었던 작품이다. 이태원 촬영 때는 ‘영화 촬영 중이라 통행을 방해해 죄송합니다’ 문구가 적힌 피켓을 영어, 일본어, 한국어 3개 국어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때 오토바이가 이태원 계단을 내려와 버스를 받는 사고가 나서 3일 동안 용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웃음)” 프로듀서로서 누구보다 현장을 잘 이해하고, 돌발 변수가 생겨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건 현장 경험이 그만큼 풍부한 덕분일 것이다. 현재 그녀는 시나리오작가와 함께 자신의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 “되돌아보니 영화 일을 하는 시간들이 행복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에 귀기울이면서 작품을 완성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행복하게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니 윤창숙 프로듀서는 천생 프로듀서인가보다.

밴드 혁오

“<무한도전>을 통해 알게 된 뮤지션인데 후반작업 일정이 끝난 뒤 집으로 이동할 때 주로 듣는다. 일정이 정신없다보니 음악을 듣다보면, 마음의 위안이 되고 기분이 차분해지더라. 특히 <와리가리>를 즐겨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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