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먹는 것, 자는 것, 돈’을 지킨다
2015-09-22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대호> <신세계> 박민정 프로듀서

<대호>(2015) 프로듀서 <남자가 사랑할 때>(2013) 프로듀서 <신세계>(2012) 프로듀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제작실장 <부당거래>(2010) 제작실장 <전우치>(2009) 제작부장 <사과>(2008) 제작진행 <타짜>(2006) 제작팀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스크립터이

단지 일만 하고 ‘끝’이 아니라 모든 스탭들이 ‘패밀리’처럼 어우러지는 현장. 박민정 프로듀서의 페이스북에 종종 게시된 <대호>의 촬영 비하인드컷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정월대보름이라고 스탭들에게 부럼을 선물하고, 어버이날을 맞은 ‘아버지’ 스탭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잦은 부상을 달고 사는 무술팀원들을 위해 각종 파스와 스프레이, 에너지음료를 비치한 ‘무술팀 전용’ 부스를 따로 마련하는 섬세함. 이런 세심한 배려와 즐거움을 챙길 줄 아는 제작부가 있는 현장이라면 몇번이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법하다. “<대호>는 박훈정 감독님과 최민식 선배님이 계시기 때문에 영화가 산으로 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관건은 6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추운 겨울을 겪으며 100회차가 넘는 대장정을 해야 한다는 건데, 최대한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 없이 처음 멤버 그대로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탭들이 아침에 일어날 때 오늘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의 집중도를 해치지 않을 정도의 잔재미, 추운 곳에서 촬영하다가 커피 한잔 마시러 왔을 때의 잔재미. 이런 것들이 결국은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박민정 프로듀서가 <대호>의 현장에서 ‘이벤트의 여왕’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다.

<대호>는 로케이션 헌팅 기간(6개월)이 촬영 기간만큼이나 오래 소요되었던 프로젝트다. 지리산의 산군(山君)이자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조선 최고의 명포수를 둘러싼 이야기를 조명하는 작품인 만큼 이제껏 한국영화에서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진짜 산’의 모습을 담겠다는 것이 박훈정 감독과 제작진의 목표였다. “도봉산, 설악산 같은 곳이 아니다. (웃음) 청태산, 황매산, 아홉산을 들어본 적 있나. 그런 산들을 직접 타면서 헌팅을 했다. 험한 산들을 가다보니 거의 등산 동호회 수준으로 온갖 장비를 다 갖췄다.”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거의 원시 상태에 가까운, 인적 드문 산속을 배경으로 하다보니 눈속에 고립된 적도 있었다. 박민정 프로듀서는 기상청 예보와 날씨가 다른 건 예삿일이라서 제작부가 현장에 직접 나가 눈이 쌓인 높이를 매일 사진으로 전송하고 체크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카메라 프레임이 포착한 눈 덮인 산의 풍경은 이 모든 고된 과정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고 그녀는 덧붙인다. “확실히 진짜 눈과 세팅한 눈은 다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반해 자꾸만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됐던 것 같다. (웃음)”

박민정 프로듀서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스크립터로 충무로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특수효과부터 난이도가 높은 스턴트 액션까지, “상업 블록버스터영화의 중요한 요소들이 총망라된”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을 첫 영화부터 경험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류승완 감독과의 인연은 박민정 프로듀서에게 더 큰 기회를 열어줬다. “현장에서의 확실한 존재감과 선 굵은 업무 추진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의 제작실장을 찾고 있던 한재덕 프로듀서에게 그녀를 추천했고, <부당거래> 이후 박민정 프로듀서는 한재덕 프로듀서가 차린 제작사 사나이픽처스에서 <신세계>와 <남자가 사랑할 때> <대호>를 연달아 작업했다. “연출의 공정은 류승완 감독에게, 제작은 한재덕 대표에게 배웠다”고 말하는 박민정 프로듀서에게 두 사람은 중요한 영화적 선배다.

특히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함께 연출부로 일했던 한동욱 감독의 데뷔작 <남자가 사랑할 때>는 박민정 프로듀서에게 각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신세계>의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세 배우들이 워낙 잘하고, 한재덕 대표님이 A급 스탭들을 꾸려 최상의 필드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멜로 장르에 신인감독의 영화이다보니 예산이 한정되어 있었다. 28억원이라는 제한된 예산 안에서 감독이 할 수 있는 걸 다 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많이 고민한 끝에 로케이션을 한곳으로 몰자는 결심을 했다.” 시나리오상에서 서울의 달동네로 묘사됐던 <남자가 사랑할 때>의 배경은 군산이라는 매력적인 소도시를 만나 또 다른 색깔을 부여받았다. “멜로영화를 찍기에 재미있는 공간”들이 군산의 곳곳에 포진해 있었기에 한동욱 감독은 군산에 머물며 시나리오를 각색하기도 했다고. 막내 스탭부터 주연배우까지 함께 둘러앉아 과거의 연애 경험담을 나누며 태일과 호정의 사랑을 보다 보편타당하게 그리는 방법을 고민했던 과정도 박민정 프로듀서에겐 힘들지만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먹는 것, 자는 것, 돈.” 어떤 작품에 임하든 이 세 가지를 두고 장난치지 말자는 건 프로듀서로서 그녀의 신조다. 스탭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의 퀄리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있는 현장에서는 늘 스탭들을 잘 먹인다”고 웃으며 말하는 박민정 프로듀서는 가장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것의 중요함 말이다.

디토의 음악

“외지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침묵을 못 견디는 편이다. 잘 때도 TV를 틀어놔야 잠이 올 정도다. 그래서 음악도 자주 듣는 편인데, 가사가 있는 음악은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지더라. (웃음) <대호>를 촬영할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특히 리처드 용재 오닐 등 네명의 연주자들이 결성한 실내악 프로젝트 그룹 앙상블 디토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일할 때 들어도 무리가 없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 정서적 안정을 주는 음악이랄까. 디토의 음반을 듣다보니 언젠가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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