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내 시나리오를 영화로 제작하는 그날까지
2015-09-22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무뢰한> <검사외전> 국수란 프로듀서

<검사외전>(2015) 프로듀서 <무뢰한>(2014) 프로듀서 <무서운 이야기2>(2013) 프로듀서 <베를린>(2012) 프로듀서 <다섯개의 시선>(2005) 제작실장 <주먹이 운다>(2005) 제작실장 <야수와 미녀>(2005) 제작실장 <올드보이>(2003) 제작부장 <광복절특사>(2002) 제작부장 <공공의 적>(2002) 제작부 <휴머니스트>(2001) 제작부 <가위>(2000) 조명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조명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 조명부 <이재수의 난>(1999) 조명부 <거짓말>(1999) 조명부 <짱>(1998) 조명부 <퇴마록>(1998) 조명부

“프로듀서가 주접떠는 것 같아서 이거 참.” 사나이픽처스의 국수란 프로듀서가 인터뷰 내내 멋쩍어한다. “잘난 것도 없는데 남들 앞에 나서는 게 영 쑥스럽다. 영화 개봉 때 무대 인사도 잘 안 나간다. 묵묵히 뒤에서 일하는 게 프로듀서의 역할 같기도 하고.” <퇴마록>의 조명부로 영화 일을 시작해 <휴머니스트>의 연출부를 거쳐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의 <베를린>에 합류하며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이지만 웬만해서는 앞에 나서는 법이 없다. 스탭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워낙에 많은 스탭들이 일하는 곳이다보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연출에 집중해야 할 감독님이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쓰지 않도록 미리 정리하는 것도 프로듀서의 몫이다. 되도록 스탭들과는 일대일로 만나서 ‘네 마음을 알고 있다’고 다독인다. 대신 으스대는 사람은 절대 그냥 못 본다. (웃음)” “영화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그녀의 소신에 지침이 돼준 건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다. 그녀가 “형님, 형님” 하며 따랐던 한재덕 대표와는 <올드보이>의 제작실장과 제작부장으로 처음 만났다. 이어서 각각 <주먹이 운다>의 프로듀서와 제작실장, <베를린>의 총괄 프로듀서와 프로듀서로 합을 맞췄다. 사나이픽처스가 문을 연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함께 작업 중이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우직하다.”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국수란 프로듀서를 지켜봐온 한재덕 대표가 말하는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번 꽂히면 주변에서 아무리 뜯어말려도 끝까지 가고야 만다. 그런 그녀의 기질이 제대로 발휘된 작품이 <무뢰한>이다. “19년째 영화 일을 해오고 있는데 <무뢰한>만큼 내 능력, 애정, 노력을 쏟아부은 적이 없다. 자랑스러운 작품이다.” 그녀가 <무뢰한>에 흠뻑 빠져 산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다시 봐도 전율이 느껴진다”고 말할 만큼 오승욱 감독의 전작 <킬리만자로>(2000)의 팬인 데다 밝고 경쾌한 드라마보다는 어둠과 아픔을 간직한 인물들의 서사에 눈길이 먼저 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로듀서로서의 길잡이가 돼준 한재덕 대표의 의중을 읽게 된 것도 크다. “사실 <무뢰한>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는 내가 반대했다. 상업적으로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볼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사나이픽처스가 <신세계>(2012) 딱 한 작품을 끝낸 상태라 좀더 돈이 되는 작품을 한 뒤에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대표님이 ‘나는 이 영화로 돈 벌 생각이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 <킬리만자로>를 만든 오승욱 감독님이 계속 필드에서 뛰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돈이 아니라 작품을 보고 가자는 대표님의 생각을 확실히 알게 되면서 나도 확신이 생겼다.”

그때부터 오승욱 감독과 함께 1년여간 시나리오를 고쳐나갔다. “감독님이 ‘여성을 잘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건 정말 몰라서라기보다는 프로듀서로서 내가 좀더 작품을 연구해와주길 바라셔서 한 말씀이다. 여성 프로듀서라고 여성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프로듀서로서 이 캐릭터가 어떠해야지만 좀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지, 설득력 있게 보일지를 연구하고 신과 신의 연결이 어떠해야 인물의 감정이 끊김 없이 이어질지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여자주인공인 김혜경(전도연)만 좋아지겠나. 자연스레 남자주인공인 정재곤(김남길)도 좋아진다.” 정재곤 역에 김남길을 캐스팅하자고 제안한 것도 그녀다. “알랭 들롱처럼 어딘가 상처받은 듯한 얼굴의 정재곤에 연민과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김남길이 제격이겠다 싶었다.” 신별로 레퍼런스가 될 만한 영화들도 죄다 찾아와 촬영감독과 공유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오승욱 감독은 “스스로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작품에 몰입하는 사람”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무뢰한>을 만들면서 프로듀서로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고 말하지만 국수란 프로듀서는 자신에게만큼은 만족이라는 단어를 허락하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를 개발해 투자를 받고 배우를 섭외해 영화를 만들어 개봉에까지 이르게 하는 게” 프로듀서의 역량이라면, 자신은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말한다. “시놉시스 단계부터 참여해 해외 로케이션 경험을 한 <베를린> 때도 예산 운영과 현장 진행에 칼 같은 류승완 감독님을 보면서 나의 부족함을 느꼈다. <무뢰한> 때도 열심히는 했지만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을 다 발휘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지금 촬영 중인 <검사외전>은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무뢰한>의 후반작업과 겹쳐서 신경을 많이 못 쓴 게 못내 미안하다.” 그래서인지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진 상태다. “내가 좋아하는 진하고 어둑한 이야기의 영화에 참여할 때면 흥이 나서 움직인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 아이디어가 하나도 안 떠오른다. 프로듀서로서의 한계일 수 있다. 늘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으니까. 좀더 신중히 작품을 골라야겠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직접 쓴 시나리오로 작품을 제작하는 게 목표다. “시나리오는 계속 쓰고 있다. 한 대표님께 보여드리긴 했는데 다 싫다고 하신다. 제대로 잘 써서 ‘네가 웬일이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나. 부지런히 써내려가야겠다.”

할런 코벤의 세계

“제대로 놀 줄 모른다. 일을 안 할 때면 ‘내가 왜 일을 안 하고 있지?’라며 불안해한다. (웃음)” 그런 국수란 프로듀서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때, 복잡한 마음을 잊고 싶을 때 꺼내 보는 책이 있다. 서스펜스와 유머를 교묘히 넘나드는 소설가 할런 코벤의 책들이다. 그중 <영원히 사라지다> <단 한번의 시선>은 읽을 때마다 새로워 특히 아낀다. <용서할 수 없는> <숲> <결백>도 이미 읽었다. <검사외전> 촬영을 마치는 대로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은 <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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